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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조회수 : 575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년 12월 31일 18시 29분 48초
  •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요한복음 11장에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죽음으로 인해 고통당하면서 우는 것을 보시고 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다가 마침내 우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3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녀가 우는 것과 또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우는 것을 보시고 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고 34 이르시되, 너희가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와서 보시옵소서, 하매 35 예수님께서 우시더라.
     
    그런데 개역성경을 보는 분들 중에는 잘못 번역된 성경으로 인해 예수님이 우시는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사사로운 해석을 펴는 분들이 있습니다.
     
    개역성경으로 33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역성경 33절: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통분하다.’는 말의 사전적 뜻은 '원통하고 분하다.'입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속으로 억울하고 분해서 화를 내셨다. 또한, '민망하다.'는 말의 뜻은 '답답하고 딱하다.'이므로 '예수님은 이들을 답답하게 여기고 안타까워하셨다.'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성경을 완전히 오역한 것입니다. 이런 오역을 가지고 성경을 무리하게 풀자면 할 수 없이 영해(靈解)를 해야만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화를 내고 답답히 여기셨을까?”(개역성경)
     
    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11-15절에 있는 말씀 즉 예수님이 죽어 있는 나사로를 살리러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께서 분을 내고 답답해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오역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사로운 해석에 지나지 않습니다. 11~15절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를 살리러 간다고 말씀하셨지 마리아의 집에 온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때문에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집에 온 유대인들은(19절) 사실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화를 내고 너무 답답한 나머지 우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억지 주장을 펴는 목사들과 그들의 말을 따르면서 올바로 된 해석 즉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죽음의 고통과 아픔으로 보시고 괴로워하시고는 우셨다는 해석을 오히려 사적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오셔서 인간의 모든 연약한 감정을 몸소 느끼신 분이라는 진리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우시는 모습이 기록된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이 천지 만물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사람의 모든 연약함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라는, 하늘의 천사들도 심히 놀랄 만한 진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이런 심오한 의미가 담긴 말씀을 대단히 잘못된 해석으로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주장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까지도 실족하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시되,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둘 다 도랑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눅6:39)
     
    올바른 해석을 오히려 영해라고 하니 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실 유대인들이 믿지 않아서 예수님이 화를 내고 답답해했다는 해석이 바로 영해입니다.
    이런 문제는 다 개역성경의 오역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오역이 영해를 생산해 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바른 성경을 가지고 앞뒤 문맥을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요11장에서 예수님이 우신 유일한 이유는 인간들이 죽음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괴로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앞뒤 문맥으로 볼 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부디 바른 성경을 맑고 깨끗한 정신과 마음으로 바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더욱 많아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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