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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문제점 1조회수 : 1205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3월 20일 15시 55분 31초
  •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1

    성경을 각 나라 말로 번역하려면 번역의 대본인 본문(Text)이 필요하다. 아무리 번역자들과 번역 기법이 우수해도 대본이 나쁘면 거기서 번역된 역본 역시 필연적으로 나쁠 수밖에 없다. NIV, NASB, 개역성경(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 등의 모든 현대역본들은 기본적으로 웨스트코트(Brooke Foss Westcott, 1825-1903년)와 호르트(Fenton John Anthony Hort, 1828-1892년)의 그리스어 ‘비평본문’을 사용한다. 도자기를 만들면 기술자의 지문이 그 안에 남게 마련이다. 이와 동일하게 저술에도 저자의 사상이 배어 있다. 이 장에서는 이 중요한 두 사람의 행적을 통해 이들의 부패된 사상을 살펴보고 그런 사상이 그들의 그리스어 본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관련해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만큼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그리스어 본문 연구에 지대한 발전을 이룬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선전해 왔으나 이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단, 불신앙, 배교 등의 여러 죄목으로 이들을 고소했으며 참으로 이들이야말로 성경의 참 본문에 극심한 손상을 입힌 배도자라고 주장해 왔다.

    근거 없이 어떤 사람을 중상모략 하거나 혹은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사람들과 또 성경 본문에 대한 그들의 이론들에 대해 알려진 바를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학자가 성경과 그 안의 교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연구해 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그의 발견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때때로 학식이라는 것이 적합하지 않고 또 위험한 권위를 만들어 내기에 이 사람들의 삶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웨스트코트의 아들이 지은 「웨스트코트의 삶과 서신들」과 호르트의 아들이 지은 「호르트의 삶과 서신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본 장에서 사용한 대부분의 자료는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 책들로부터 직접 인용한 것들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본문 비평학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인물이다. 이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보편적 본문’을 이집트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국지적 본문’으로 대체시켜 버렸다. 또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킹제임스 성경과 그것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어 공인본문’이 지닌 우월성에 대해 매우 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들은 속임수에 넘어가 로마 카톨릭 산물인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가장 오래 되었기 때문에 가장 좋은 사본이라고 믿었다. 비록 호르트가 ‘안디옥 본문’ 즉 ‘보편적 본문’의 연대가 그 사본들의 연대와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카톨릭 사본들을 신뢰했다.

    ‘보편적 본문’이 로마 카톨릭 사본들만큼이나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고서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성경 역사에서 이 본문이 차지한 높은 권위를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애를 많이 썼으며 종종 호르트는 자기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는 그 야비한 공인본문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그리스어 성경을 거의 읽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본문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전적으로 후대 사본들에 기초를 둔 그 비열한 공인본문을 생각하면 그런 초기의 것들 [역자 주: 로마 카톨릭 사본들] 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복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국지적 본문’인 소수의 엉셜(대문자) 사본들을 기초로 하여 ‘수정 그리스어 본문’을 만들어 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왜곡된 로마 카톨릭 사본들은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자기들의 본문을 만들 때 이미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이 성경의 주요 교리들을 희석시키고 공격한 역사를 지닌 사본 계열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은 이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도 성경을 대하면서 그것을 이미 사라진 역사가나 철학자의 글과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성경과 고문서의 평가 방법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호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 번 베껴 쓴 모든 산문에서 거의 발견되는 것처럼 신약성경 본문 안에도 생략에 의한 본문의 부패보다 삽입에 의한 부패가 훨씬 더 많다.

    우리는 이런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의 책이 셰익스피어나 플라톤의 글과 비교하여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사용하시겠는가? 성경이 여느 사람들의 글과 다르다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신앙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인가?

    사실 날이 갈수록 그들의 의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이 두 사람은 성경의 진리를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명해졌으며 바로 그것 때문에 아직까지도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성경의 권위자로 치켜세워지고 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그리스도인의 기본 신앙에 있어서 너무도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근본 교리를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

    호르트의 문제점

    호르트는 에덴동산의 실재를 부인한다.

    나는 에덴동산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또한 아담의 타락도 영국의 시인 코울릿지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그의 후손들의 타락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한 성경에 오류가 없음을 믿지 않은 호르트의 불신앙을 직시해야 한다.

    만일 당신의 협조를 얻기 위해 신약성경의 절대 무오류성을 믿어야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한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이 성경의 절대 무오류성을 지지하는 한 나는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소.

    호르트는 비록 그 시대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감명을 받지 않았지만 비성경적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C. Darwin)에 대해서는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동료인 웨스트코트에게 매우 흥분된 어조로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다윈에 대해 읽어 봤소? 그 이론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소. 어찌 됐든 그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오.

    그리고 엘러톤(J. Ellerton)에게는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그러나 나의 주의를 가장 많이 끈 책은 다윈의 것이요. 비록 그것에 대해 남들이 무어라 할지는 몰라도 그 책은 우리가 동시대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 책이오. 만일 그렇다면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오.

    어떤 때 보면 호르트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완전히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 예로서 근본적인 성경 진리에 대한 그의 관점을 들 수 있다. 인격적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만일 마귀가 있다면 그는 단순히 부패되고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전적으로 사악해야만 하며 또한 그의 이름과 그의 에너지와 행동이 다 사악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 것을 지지한다면 말씀의 거룩한 특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호르트 목사는 또한 글자 그대로의 영원한 지옥을 믿지 않았다.

    모리스의 편지는 우리가 미래의 처벌 기간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과 또한 '영원한'이란 단어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굉장히 긴 기간이라기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나는 생각하며 또한 항상 불가능하게 생각되어 내 마음과 상치되는 것이 소멸되는 것과 비슷한 어떤 것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고등 교육을 받은 호르트의 마음속에 글자 그대로의 마귀와 지옥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연옥에 대한 거짓 교리는 그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그는 1854년 엘러톤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나는 모리스가 말로써 연옥을 부인했다는 것에 대해 당신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의 세 가지 주요한 논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확고부동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1) 영원이 기간과는 상관없다; (2) 회개의 힘은 현생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3)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회개하든지 회개하지 않든지 영원은 드러나지 않는다. 현 시대 사람들이 이 중 두 번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즉 연옥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신학을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젊은 학생을 지도하는 동안 그는 아래와 같이 편지했다.

    나는 불로 깨끗하게 되는 연옥에서의 정화라는 개념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벌과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래의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의 성격도 역시 변해야만 한다는 이 교리는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그 저주받은 연옥 교리가 크고 중요한 진리를 믿는 믿음 즉 카톨릭 믿음을 유지시켜 주었으므로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조항에 모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호르트 박사의 의견들은 확실히 정통 교리에 의해 제지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고집불통이며 제멋대로 행하려는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호르트 박사 자신의 글이 보여 주듯이 그는 몇몇 다른 기본적 진리에 있어서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죽음을 거부했다.

    나는 각 사람이 자기의 죄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호르트는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가르침을 이단으로 생각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기까지 고통 당하셨다는 것보다 더 성경적이지 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로 그것은 거의 보편적 이단 교리의 한 측면인 것이다.

    사실 호르트는 하나님보다는 사탄이 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값을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즉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에게 속죄 값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불했다고 믿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탄에게 지불한 속죄 값이라는 그 원시적 교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혐오하지도 않는다. 또한 그것 말고는 속죄 값에 대한 교리를 조리 있게 변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다른 형태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어떤 것도 예수의 죽음이 아버지에게 속죄 값을 드린 것이라는 개념보다는 더 낫다.

    호르트 박사는 또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즉 유아세례에 의해 거듭난다는 가르침이 복음주의자들의 가르침보다 옳다고 믿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유아세례를 통한 중생’을 가장 중요한 교리로 지킨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관점이 복음주의자들의 관점보다 더욱더 나를 진리로 가깝게 인도하는 것 같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와 그의 몸의 일원으로서 하늘나라의 상속자임을 보장해 준다.

    호르트는 자기의 맏아들 아더에게 그가 유아세례로 인해 구원받았음을 확신시켰다.

    너는 단지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 왕국의 크리스천 부모에게 태어났다. 하나님은 네가 아직 유아였을 때 세례를 통해서 너를 자신의 교회 즉 사도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위대한 성회의 ‘무의식적인 한 일원’으로 만들어 주셨다. 너는 크리스천 영향권 내에서 자라났다. 즉 눈을 들어 네 자신의 아버지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보도록 교육을 받았고 또한 이상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에게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한 부분 또는 일원으로서의 놀라운 감격을 느끼도록 교육을 받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너의 타고난 권리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네 몫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호르트는 사실 공산주의와의 접촉을 통해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대략 1850년경 그와 엘러톤 목사와의 계속적인 편지 왕래에서 잘 드러난다.

    내가 여기서 앞으로 3, 4년간 공산주의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꽤 잘한 일입니다.

    내 자신이 공산주의를 연구한 것은 바로 정치 분야를 통해서였습니다.

    확실히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로 예정을 받아 자기 이웃의 유익을 위해 그분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복과 탤런트 즉 권력, 부, 영향력, 지위, 출신 등을 공산주의자들처럼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호르트는 그의 좋은 친구였던 웨스트코트와 또 소위 유령 길드(Ghostly Guild)라는 단체에 속한 다른 이들과 같이 초자연적인 것에 깊이 몰두했다.

    웨스트코트, 고햄, 스코트, 벤슨, 브래드쇼우, 루아드 등과 나는 유령과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과 그 결과들이 정말로 존재하며 또한 그것들이 속임수나 단순한 주관적 망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그런 것들을 연구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우리는 실제로 진리를 입증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들을 얻게 되어 행복해 할 것이다. 웨스트코트는 질문들의 목록을 짜고 있다. 코우프는 우리를 암탉과 수소 클럽이라고 불렀지만 우리는 이 그룹의 이름을 잠정적으로 유령 길드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정도로 비성경적이며 무신론적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설교자나 전문가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은 권위를 그런 사람에게 부여한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호르트 박사가 뛰어난 그리스어 학자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지식인이라 해도 스스로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그는 절대로 성경의 권위자가 될 수 없다(고전2:14).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지식인이었지만 성경을 거부했고 그래서 그가 성경 문제에 대해 말할 때 아무도 그의 말을 권위 있는 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대한 심성이나 능력을 소유한 것이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되는 보증 수표는 아닌 것이다. 비록 호르트 박사가 뛰어난 학자였지만 그의 뛰어난 학벌이나 학식 때문에 우리가 성경에 관한 그의 이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보수적인 교회의 어떤 목사가 복음 전도자들의 집회에 참가했는데 이 복음 전도자들이 호르트의 비기독교적 신앙에 버금가는 불신앙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면 당장에 그 모임을 취소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목사가 호르트의 신앙관이 매우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를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그리스어 학자’로 옹호하며 자기가 믿는 킹제임스 성경을 그에게 건네주어 악의에 찬 그로 하여금 그것을 절개하고 내던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물론 이런 과정 속에서 호르트는 한때 성경이 차지했던 권위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목사들의 무분별한 신앙 때문이며 또한 신학교 시절의 인본주의 교육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신학교들 또한 알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개 그들은 영국을 다시 한 번 로마 카톨릭화하려는 예수회의 운동 아래 부각된 두 사람 즉 호르트와 웨스트코트의 권위를 단순하게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윌켄슨은 실제로 호르트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호르트 박사는 본문 비평학의 아버지인 천주교도 시몬의 글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공인본문과 같은 계열에 속한 사본들과 및 성경들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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