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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그래도 킹제임스 성경보다는 원어 성경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47>조회수 : 901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1일 14시 11분 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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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그리스어 사본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금 덩어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47>

    대답: 금광 전체를 소유할 수 있는데도 왜 고작 ‘금 덩어리’만으로 만족하려 하십니까?

    목회자들이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같은 원어에서 찾아내려 하는 ‘금 덩어리’의 대부분은 사실 그들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임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성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조차 못합니다. ‘금덩어리’를 찾아내려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동안 그리스어에서 아무도 찾아낸 적이 없는 대단한 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만 보여 주시리라고 믿는 매우 오만한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금덩어리’를 찾아낸 뒤 자기들만이 가진 매우 놀랄 만한 그리스어 ‘실력’으로 동료 목회자나 성도들을 감화시키려고 합니다.

    비록 그들이 설교단에 서서 성경을 들고는 “이 성경은 완전합니다.”라고 외치지만 사실 그들은 영어 성경이든 그리스어 성경이든 세상에 있는 성경은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을 읽을 때에 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면서 읽는 적이 별로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분께서 그리스어를 좀 더 낫게 번역할 방법을 자신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시기에 그들은 대개 학교에서 배운 ‘그리스어 게임’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게임은 그리스어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그리스어 게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거짓 학자나 우쭐대려는 설교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란 단순히 「스트롱의 성구용어색인」(Strong's Concordance)이나 혹은 「영의 성구용어색인」(Young's Concordance) 등을 구입하는 일입니다. 이런 ‘성구용어색인’의 뒤에는 성경에서 사용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목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단어의 아래에는 그 단어가 킹제임스 성경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번역된 예와 목록이 있습니다. 이제 원어에서 ‘금 덩어리’를 캐려고 열심을 내는 학자나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이란 단지 거기에서 번역된 영어 용례를 서로 바꾸어 놓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하플로테스’(haplotes)라는 그리스어를 하나 택합시다. 이 단어는 흠정역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스어 ‘하플로테스’(haplotes)의 번역 용례

    그리스어 ‘하플로테스’(haplotes)의 번역 용례

     

    구절

    번역 예

    1

    고후9:11

    Bountifulness(풍부함)

    2

    고후9:13

    Liberal(너그러운)

    3

    고후8:2

    Liberality(너그러움)

    4

    롬12:8, 고후1:12

    Simplicity(단순함)

    5

    엡6:5, 골3:22

    Singleness(단일함)

    자, 이제 우리의 열심 있는 학자가 자신의 뛰어난 지성을 과시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플로테스’가 번역된 다른 구절을 찾는 일입니다. 예를 들기 위해 먼저 에베소서 6장 5절을 택하겠습니다(위 표의 5번 용례).

    종들아,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단일한 마음(in singleness of heart)으로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6:5).

    그는 설교 시간에 자신이 미리 준비한 ‘희생물’ 즉 위의 구절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이 구절을 서투르게 번역했다고 몇 마디 혹평을 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달리 번역될 수 있는 단어들 중 하나를 취해 - 예를 들어 위 표의 3번이나 혹은 4번 - 그 구절에 집어넣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그는 게거품을 물고 흠정역 성경역자들이 원어를 매우 서투르게 번역했다고 여러 차례나 지적하면서 자기가 선택한 단어에 대한 장점들을 장장 10-15분에 걸쳐 상세히 설명합니다. 물론 그가 나중에 로마서 12장 8절의 말씀을 설명할 때는 즉 같은 그리스어가 위 표의 4번처럼 ‘단순함’(Simplicity)으로 번역된 곳에서는 역으로 5번 용례를 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장점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권면하는 자는 권면하는 일로 섬기며, 주는 자는 단순함으로(simplicity) 그 일을 하고,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8).

    물론 이때에도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 말씀의 번역자들이 이 구절을 서투르게 번역했다고 혹독하게 그들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의 말을 듣는 청중들은 이 일이 이처럼 손쉽게 이루어진 줄도 모르고 그의 지성과 그리스어에 대한 놀라운 이해력으로 인해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를 우러러 쳐다봅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의 오류를 지적해 줄 재능 있는 목회자나 교수를 만난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얄팍한 ‘그리스어 게임’의 속임수에 걸려 넘어가게 되고 결국은 자신들같이 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설교자가 소유한 그리스어에 관련된 도구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존경받을 만한 스승만큼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시나리오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자칭 성경학자라 하는 사람이 설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그가 너무도 쉽게 청중을 속이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로마서 8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한 절을 읽으며 그는 어떤 특별한 단어에 이르자 거기서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어를 잘못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선택한 단어의 장점에 대해 10-12분 동안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중들은 어리석게도 이 사람의 ‘원어 실력’으로 인해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설교 경연대회’에서 14살짜리 소년이 그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런 일은 사실 15달러짜리 ‘성구용어색인’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저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또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열심 있는 설교자 역시 로마서 8장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도 같은 절을 읽고는, 그 전 날 다른 전문가가 끄집어냈던 똑같은 단어에 다다르자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프게도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를 적절하게 번역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가 전 날 저녁에 제가 들은 적이 있는 그 설명을 재탕하는가 보려고 재빨리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지는 않더군요. 이 유별난 학자는 문제시되는 단어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어야만 한다고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 그는 전 날 저녁의 판매원처럼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선택한 단어나 혹은 전 날 저녁 제가 들은 적이 있는 그 전문가가 선택한 단어보다 자신이 선택한 단어가 갖는 장점들에 대해 장황히 설명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놀랐습니다! 두 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두 개의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유일하게 일치한 점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오역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존경받는 견해를 재빨리 학문 쓰레기 더미 위로 내던져 버리고 하나님께서 1611년에 선택하사 자신의 책에 기록하신 단어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원어에서 ‘금 덩어리’를 찾는 두 번째 방법은 그리스어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 위와 같은 일을 할 때 줄곧 사용하곤 하는 방법인데 이 경우에 그들은 ‘성구용어색인’ 대신 ‘그리스어 사전’에서 단어를 선택합니다. 이 경우에도 결과는 항상 동일하여 킹제임스 성경은 오역 투성이로 매도당하고 청중들은 설교자의 원어 실력과 지성의 깊이에 압도당합니다. 그들은 성경 교사들의 그리스어 실력과 겨루어 보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성경에 대한 이해력이 그보다 훨씬 못하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세 번째 형태의 ‘금 덩어리’는 원어 성경학자들이 만들어낸 완전 허위 진술에서 발견됩니다. 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예로 그리스어 ‘아가페’(agape)와 ‘필레오’(phileo)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두 단어는 킹제임스 성경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서 모두 ‘사랑’(love)으로 번역되었습니다.

    15 이처럼 그들이 식사를 한 뒤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16 다시 두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17 세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자기에게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웬만큼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이라면 아마도 거짓 학자들이 이 구절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한두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어에서 ‘아가페’(agape)라는 단어가 ‘깊고 은밀하며 자기를 돌보지 않는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필레오’(phileo)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친구 사이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뒤 우리의 설교자는 영어 단어(혹은 한국어 단어)의 제한된 표현에 대해 거의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한탄을 하며 자기의 주장을 폅니다. 다시 말해 영어로는 이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님께서 사실은 이렇게 물어 보신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아가페’(agape, 즉 깊고 은밀하며 자기를 돌보지 않는 사랑)로 사랑하느냐?

    이에 대해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필레오’(phileo, 즉 일상적인 친구간의 사랑)로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 뒤 원어 성경 추종자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던 대답을 듣지 못하셨기에 베드로에게 다시 물어 보셨다고 말합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아가페’(agape)로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그런 깊은 관계에 자신을 맡기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다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필레오’(phileo)로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이제 이쯤에서 우리의 성경 교정자는 큰 슬픔에 잠기신 주님께서 베드로의 헌신이 부족함을 이해하시고 ‘아가페’ 대신 ‘필레오’라는 그리스어 단어로 질문을 바꾸셨다고 말합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필레오’(phileo)로 사랑하느냐?

    그러자 이같이 갑작스런 변화에 베드로는 깜짝 놀라 자신이 주님께 영적으로 성실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설교자는 자신 있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슬픔에 잠긴 베드로가 마침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필레오’(phileo)로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우리의 거짓 교사는 의미가 빈약한 영어나 한국어를 사용해서는 이 구절의 깊은 뜻을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다고 확신 있게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또 다시 저 신뢰할 만한 ‘그리스어’는 영어나 한국어가 전달해 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준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됩니다!

    참으로 위의 예는 ‘원어 찬양’을 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그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하나의 큰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단점이란 다름이 아니라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한 위의 정의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저의 선입견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견해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아가페’와 ‘필레오’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 성경 기자들이 신앙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의 최종 권위가 되는 성경에서 사용한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한 세밀하고 정직한 연구에 근거하여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야기인즉 이렇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아가페’와 ‘필레오’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 성경 기자들은 이 두 단어를 늘 바꾸어가며 사용했습니다. 그리스어 문법책이나 그리스어 교사들 그리고 그리스어 설교자들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속한 신학 대학의 교수나 혹은 목사가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해 잘못 가르쳐서 이 같은 속임수에 빠지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즉시 여러분의 선입견을 가지고 저의 주장을 반박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그렇게 경건하고 지식이 많은 교수들이 틀릴 수 있겠는가?”

    저는 이 사실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 바울,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제가 대조를 위해 택할 수 있었던 신약 성경의 다른 기자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결코 그들만이 저를 지지하는 최후의 증인들은 아닙니다. 최종적이고도 가장 확실하게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분은 바로 독자 여러분입니다.

    수년 동안 저는 제가 말씀을 전하는 성경 사경회에서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한 거짓 가르침에 관하여 성도들에게 한 가지 시험을 치르게 했습니다. 그 시험지는 다음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용기가 있다면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과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다면 자유롭게 그 시험 문제에 대답을 해 보십시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제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1부에서는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가페’와 ‘필레오’를 사용하신 용례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스어 신약 성경」이나 「스트롱의 성구용어색인」혹은 다른 어떤 도움에 의지하지 마시고 단지 영어 성경 비평 학자들이 제시한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한 정의를 사용하십시오.

    자, 이제 인용문을 읽으십시오. 그 뒤 예수님께서 그 구절에서 ‘아가페’를 말씀하셨을지 혹은 ‘필레오’를 말씀하셨을지 깊이 생각해 보시고 결정을 내리십시오. 그런 다음 ‘아가페’라고 생각되면 ‘A’를, ‘필레오’라고 생각되면 ‘P’를 인용 구절 옆에 있는 공란에 적어 넣으십시오.

    제2부도 제1부와 동일한데 단지 신약 성경의 다른 기자들이 기록한 용례들을 사용했다는 것만 다릅니다. 제1부와 마찬가지로 ‘아가페’에 해당되면 ‘A’를, ‘필레오’에 해당되면 ‘P’를 적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단지 원어 성경학자들이 이 단어에 내린 정의를 사용해서 시험을 치러야만 합니다. 결코 추측으로나 예감으로도 하지 말고 그들의 정의를 따라 시험 문제에 정직하게 답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끝마쳤으면 이 글의 뒤에 있는 해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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