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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 이유조회수 : 1281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12월 23일 15시 35분 13초
  • 신실한 한 형제님께서 좋은 글을 주셔서 킹제임스 성경 입문서에 넣었습니다.
    이 글을 PDF 파일로 만들어 올립니다.
     
    보시고 다른 분들에게 파일을 보내 주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킹제임스 흠정역을 약 3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름대로 흠정역 성경을 알리는 일에 힘쓰며 이 사역에 적게나마 합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이미 저와 같이 흠정역을 쓰시는 분들이겠지만, 흠정역이 무엇인지 찾아보다가 오시게 되는 분들도 있는 줄 압니다. 이곳에는 흠정역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지만 개인 사용자 입장에서 느낀 점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다음 글은 처음 흠정역을 쓰고 나서 정리한 것으로, 홍보를 위해 개인 홈페이지에 실었던 것을 최근에 추가, 수정한 것입니다. 이 사이트에 있는 내용들과 덜 중복되는 내용 위주로 올립니다. 예전의 저처럼 흠정역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사용을 고려중인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가 명확한 성경

    킹 제임스 영어성경을 번역한 한글판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국내에서는 두 세곳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미 많은 번역상의 실수를 드러낸 <한글 킹제임스>(말씀보존학회)는 공신력 면에서 믿을 수가 없고, 또 한 곳은 번역의 완성도 문제로 판매를 중지한 후 개정작업을 거치고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안에'에서 발행한 <킹제임스 흠정역>만이 믿을 수 있는 번역을 하고 있다. 이렇게 누군가 바른 번역을 하고 있으면 합력해서 그것을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자기의 이름을 건 자기식의 번역을 위해 많은 비용과 힘을 낭비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성경을 보면 반복되는 소유격이나 주어 등을 있는 그대로 나오는 횟수만큼 다 번역하고 복수와 단수를 명확히 하며, 의미전달상 어쩔 수 없이 추가된 단어까지 구분해 놓고 있다. 또한 권위 있는 표현이나 기존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지만 어려운 말은 모두 쉬운 말로 교체했다.
    그러나 기존 성경에 익은 독자들의 혼돈을 우려하여 대부분의 고유명사와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적용했다.
     우리가 쓰는 한글 개역개정판 성경은 축약과 한자어가 많아 문장이 그리 길지는 않은데, 한글로 번역된 킹 제임스 흠정역은 축약된 부분을 복원시키고, 단어 대 단어로 모두 번역했기 때문에 개역개정판보다는 약간 길어진 듯한 느낌이다. 개역성경은 간결함의 장점 이전에 정확성을 먼저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오래전에 번역됐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획득한 '간결함'이다. 그러나 어떤 장점도 명확함과 바꿀 수는 없다.

    말을 줄이다 보니 한자가 등장하고. 많은 어려운 말들이 나온다. 어린 아이들은 뜻도 모르면서 무작정 외워 암송대회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외워 놓으면 다 도움이 되고 마음밭에 새겨지기도 하겠지만, 말씀은 그 외형을 아는 것보다 거기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선 아닐까.

    개역성경과 현대역본들이 변개한 내용들

    예수님이 마시지 않겠다던 것을 마셨다? :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이 포도나무에서 난 것(포도즙)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새롭게 마시는 그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복음서를 계속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에게 해융(스펀지 같은 것)에 적신 '신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고 나온다. 어떤 해설성경에서는 이것을 신 포도주와 계란과 물을 섞은 로마병정의 음료라고도 했고,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값싼 포도주'로도 번역하고 있는데, NIV에서는 wine vinegar, 즉 '포도 식초'나 '신 포도주'로 번역할 수 있는 말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어기고 돌아가시기 전에 포도주를 마셨다는 말씀인가? 이들은 단어를 추가해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 KJV에 보면 이것을 그냥 '식초(vinegar)'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KJV 번역자들이 말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부분에서 그렇게 조율할 수도 없다. 변개되지 않는 본문에서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는 뜻이다. 오히려 왜곡을 위해 천주교 역본이 손질된 것이다.
    또 성경에는 예수님이 맛 보시고 거절하신 일종의 진통제인 '쓸개 탄 포도즙'도 나오는데, 이것도 '식초'로 같은 단어이다. 마가복음 15장 23절에서도 예수님은 몰약을 섞은 포도즙을 거절하신다.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도 포도주를 드신 것이 아니라 포도즙을 드신 것임을 알게 된다. 예수님이 어디에도 '와인'을 드셨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니와, 당시의 언어로 '와인'은 포도주와 포도즙에 동시에 쓰인 단어이므로 문맥을 분간해서 번역해야 한다고 한다.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유월절에 누룩이 든 술을 마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의 흠없이 완전한 희생양이 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 : 개역성경의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원래는 '요한'이 아닌 '요나'의 아들이다. 이것은 단순히 고유명사가 틀린 것이므로 치명적인 부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유대인들에게 아버지는 매우 중요한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그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며 분노했던 것이다. 성경의 인물을 구분할 때 그의 아비를 자주 소개하는 것은 동명이인의 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보면 개역개정에서도 '바요나 시몬아'라고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바요나의 '바'란 '아들'이라는 의미이므로 '요나의 아들'을 뜻하는 것이다.

    복음성가 중에 즐겨 부르곤 했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는 곡이 있는데 여태껏 잘못 불렀다니... 왜 이런 단순한 실수가 있는지 더더욱 개역성경을 신뢰하지 못하는 계기가 된다. 

     역자가 이해 못하는 단어의 변경 : 성경에는 우리의 이성이나 과학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말도 나온다. 예컨대 유니콘이라든지 용(dragon, 공룡)에 대한 언급은, 유니콘이 전설의 동물이라는 잘못된 지식과 사람이 살던 시대에 공룡이 안 살았다는 진화론적 선입견을 바탕으로, 유니콘은 들소로, 용은 뱀이나 시랑 등으로 독자를 위해(?) 알아서 변경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더욱 모호하게 되고 진화론에 대해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동물에게 영이 있다는 부분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혼'으로 바꾸는 등 많은 부분에서 변개를 통한 의미의 왜곡을 가져왔다. 

    종교성과 미신주의의 차이 :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아덴(아테네) 사람들에게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종교심)이 많도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NIV 등의 영어성경이 religious로 쓰고 있기 때문에 '종교성'이 된 것 같다. KJV에서는 superstitious, 즉 '미신적'이라는 말로 쓰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전체를 번역하고 있다.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것에서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
    이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바울은 그들의 우상숭배 실태를 알고 영이 격동했다고 나온다. 또한 위의 미신적이라는 책망 뒤에 이어지는 바울의 이야기를 보면 우상숭배에 관한 이야기와 훈계가 계속 나오므로 더욱 확실한 증거라 하겠다. 그런데도 일부 목사들은 이 말씀을 들어서, 사람들을 훈계할 때는 우선 그들을 칭찬해야 한다면서 바울의 말을 그들에게 종교심이 많아서 하나님도 잘 섬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치켜 세우고 있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이래서 번역은 작은 실수 때문에 큰 개념이나 교리의 오해까지 불러올 수 있는 것 같다.

     
    뜻이 모호하고 어려운 단어와 고유명사들이 개정된 예
     
    개역성경 킹제임스 흠정역 (그리스도 예수안에 刊) 성경위치
    구스 에티오피아 창세기 2:13
    들소 (오역) 유니콘 민수기 23:22 등
    시랑과 타조 용들과 올빼미들 이사야 23:20
    발등상 발받침 이사야 66:1
    기묘자 놀라우신 이 이사야 9:6
    모사 계획자 이사야 9:6
    묘성 플레이아데스 별무리 욥기 38:31
    삼성 오리온 별자리 욥기 38:31
    룻(나라 이름) 루디아(Lydia :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Luth임) 에스겔 27:10
    복술자 점쟁이 사무엘상 6:2
    방백 통치자 에스더 1:21
    감람 올리브 마태복음 24:3
    분봉왕 사분(四分)영주 마태복음 14:1
    참람한 말 신성모독하는 말 마태복음 26:65
    쓰스 주피터 사도행전 14:12
    허메 머큐리 사도행전 14:12
    자주 장사 자주색 옷감 장수 사도행전 16:14
    에비구레오 에피쿠루스 학파 사도행전 17:18
    스도이고 스토아 학파 사도행전 17:18
    아덴 아테네 사도행전 17:16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히브리서 5:10
    진설병 보여 주는 빵 히브리서 9:2
    양심에 화인 맞은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디모데전서 4:2
    구리장색 구리 세공업자 디모데후서 4:14
    무저갱 바닥없는 구덩이 요한계시록 9:1
    황충 메뚜기 요한계시록 9:2
     

     국어 표현상의 문제점을 보완

    성경을 읽으면서 뜻을 여러번 생각하다가 결국 그냥 넘어간다든지, 다른 뜻으로 오해한다든지, 사전이나 쉬운 성경을 찾아본다든지 하는 일이 있는데, 킹제임스 흠정역을 보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의 말씀과 거기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나와는 관계가 먼 옛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고 가슴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내용이 더 많이 이해되기 때문.
    한 예로, 다음의 베드로 전서 2장 13~15절 말씀을 보자.

    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이 문장들의 의미를 단번에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음은 같은 부분의 흠정역이다.

    13... 너희는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14...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잘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해 그분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라.
    15... 그리함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

    좀 길긴 하지만 훨씬 쉽다. 아니, 이제야 말이 된다. 흠정역으로 읽으면 뜻이 이해가 되고 마음에 더 와닿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 모호한 표현이 모호한 개념을 낳고 모호한 개념이 어중띤 신앙자세와 미신적 신념 등을 가져오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잘못된 번역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져온다

    읽기 어렵고 뜻이 변질된 성경을 고수할 것인가? 지금까지 그 성경을 보고도 성령님은 역사하셨고 한국교회는 부흥했는데, 이제 와서 그것들이 다 무효라는 말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헛일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개역성경은 오랜 세월 보존된 성경의 권위를 잘 표현했고 또 간결하면서 복음도 담겨 있어서 한국교회의 발전과 신앙인들의 영적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지 우리는 완전치 못한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실수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거대한 오류의 개념들과 신앙행태를 낳고 점점 커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개역 한글판 성경은 애초부터 천주교에서 쓰는 (공인 본문이 아닌) 이집트 본문을 기초로 한 미국표준역에서 번역되었고, NIV 등의 일반적 현대역본들을 참고하여 수정되어 왔다.
    예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마치 박정희 시대에 발표된 김민기의 음반에 '아침이슬' 같은 중요한 곡들이 빠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저항을 위한 노래로 만든 중요한 의미를 지닌 노래들이 빠진 김민기의 음반은 그 나름으로 역할이 있고 감동이 있다지만 그의 핵심사상은 빠져 있다. 평론가들은 그 음반이 난도질 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원본이 들어있는 음반을 찾는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말하려면 원래의 음반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은 본래 연극 대본이므로 독서용으로는 마땅치 않아 영국의 찰스 램 남매에 의해 소설로 재구성된 것들이다. 어떤 번역서는 아예 저자를 '램'이라고 명기한 세익스피어의 책들도 있을 정도로 완전히 재창조된 것이 셰익스피어의 소설이지만 원래는 모두 희곡들이다. 그러나 세익스피어를 연구하려면 그의 희곡을 읽어야지, 재구성된 소설만을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일개 가수의 음반과 작가의 책도 이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원래의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또 마땅한 일 아닌가.

    우리는 또한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다며 흥분한다. 그런 교과서는 많은 부분이 변조됐지만 아마도 성경이 변개된 양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또한 동북공정의 음모가 담긴 중국의 역사책은 어떤가. 그런데 이런 책들은 아무리 폐기하고 또 새롭게 바꾸는 노력이 있어도 어딘가에서 읽히고 있다. 독도가 일본땅이며 동해가 일본해라는 표기는 아무리 오류라고 목청껏 외쳐도 어딘가에서 변질되어 계속 책으로 발행되며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다.

    그런 것처럼 변질된 성경도 계속 어딘가에서 영향을 미치며 그야말로 그들만의 진화를 거듭하여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은 많은 중대 오류와 자잘한 실수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흠정역에서 뜻이 올바로 전달되는 예

    삼위일체에 관한 명확한 번역 : 디모데전서 2장 5절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도>"한 하나님이 계시느니라"고>

    '영'에 관한 무속적 표현의 정정 : '하나님의 신' 또는 '여호와의 신', '내가 주의 신을 떠나' 등에서 쓰인 신(神 : god)이라는 용어도 '신내림' 등으로 쓰이듯 무속적인 개념의 번역이므로 적절치 않다. Spirit of God은 '하나님의 영'으로 해야 한다.

    정확한 성별 표기로 오해를 없앰 : 성경에는 성별을 명확히 번역해 놓아야 신학적, 교리적 오해가 싹트지 않는다. 성경의 천사는 모두 남자로 man이다. 이것을 '사람'으로 번역하면 천주교와 뉴 에이지에서 말하는 아기천사와 여자천사 등을 모두 인정하게 된다. 또한 디모데전서 3장 1절의 감독(목사)직의 요건에 대한 말씀에 나오는 man도 '사람'이 아닌 '남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 뒤에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뉴 에이지 역본들이 한 '아들'을 주셨다는 말씀을 한 '아이'로 바꾸기도 하는데 작은 차이 같으나 큰 변질이다.

    천사의 소속 : 개역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주의 천사'와 타락한 루시퍼의 명령을 따르는 '마귀의 천사'를 구분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으나 흠정역은 원문 그대로 표기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오해를 없앴다.

    형통하게 하는 뇌물이 아니라 '선물' : 개역개정의 잠언에도 엉뚱한 번역이 많다. 그 일례로 잠언 17장 8절을 보면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뇌물을 이용하라는 것인가? 아무리 봐도 이상한 가르침이다. 동류라고 할 수 있는 NIV를 보면 분명히 bribe(뇌물, 미끼, 유혹물)을 쓰고 있다. 그러나 킹제임스 흠정역을 보면 "선물은 그것을 가진 자의 눈에 보석 같은즉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로 나온다.

    영어 킹제임스도 bribe가 아닌 gift를 쓰고 있다. 이것은 NIV 번역자들의 특성인 자의적으로 다시 해석하는 습관에 따라, 누군가에게 주어 일을 성사시키는 선물이므로 뇌물로 본 것이다. 개역개정은 이런 성경들을 참고로 하기 때문에 같은 과오를 저지른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으로 준 선물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이는 반드시 대가성의 뇌물이 아닐 수 있다. 

    열두 '영'은 열두 '군단'이다 : 개역개정판에는 예수님이 순순히 잡히실 때 제자 중 하나가 분노하여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는 경솔한 행동을 하자 꾸짖으시며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태복음 26장 53절)고 하셨다고 되어 있다.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인데, 내가 성경 지식이 없어서인지 해설을 보기 전에는 '열두 영'의 영(營)이 그냥 영(靈)인 줄만 알았지, 로마 병영(兵營)의 군단 편제를 뜻하는 것인 줄 몰랐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니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말은 KJV에서 legion인데, '열두 군단'으로 번역해야 한다. 만일 나처럼 오해한다면 '열두 군단'과 '열두 영(靈)'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논할 때 큰 차이이다.

    사탄의 말 바꾸기 수법, 흠정역으로만 알 수 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말 바꾸기를 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지만 마귀는 '반드시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또 그것을 먹으면 눈이 열리고, ('하나님과 같이'가 아닌)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속였다.

    그 열매를 먹고 싶은 인간 이브의 욕심은 사탄의 질문에 들은 대로 답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라고 했다고 말을 바꾸어 전한다. 왜곡과 변질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사탄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교묘히 성경을 이용했다. 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며 그는 시편 91편 11~12절을 써 먹는다. 개역개정으로 마태복음과 시편을 비교해 보자.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장 6절, 사탄이 시편 91편 11~12절을 인용한 부분. 개역개정)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시 91:11~12, 개역개정)
     
    배열만 좀 다를뿐 같은 내용이다. 이번엔 흠정역으로 두 곳을 비교해 본다.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시리니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언제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마태복음 4장 6절, 사탄이 시편 91편 11~12절을 인용한 부분. 흠정역)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시편 91편 11~12절, 흠정역)

    어디가 다른지 언더라인이 보이는가? 시편 91편을 살펴보면 피난처 되시는 주 하나님의 날개 아래를 네 거처로 삼으면 이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다가 만난 모든 길에서 피하게 해 주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귀는 여기에 한 마디를 살짝 끼워 넣었다. 바로 시편에 없는 말 '언제라도(any time)'이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든지 말든지 모든 길에 천사가 '언제라도' 너를 보호한다고 교묘히 바꾼 것이다.

    이 부분은 KJV에는 명확히 차이가 드러나 있지만 가장 많은 변개와 삭제를 한 NIV나 NASB 의 두 영어성경을 찾아 보면 이 차이가 없다. 시편의 말을 마귀가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옮기고 있다. 성경을 그대로 인용하는 '대언자(?) 마귀'라니.....!! 

    인간의 논리 전개를 위해 다양한 역본을 참조? 

    현대의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이 여러 가지의 변개된 성경을 인용하여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여러 성경의 번역들을 예시하면서 자신들의 설득력을 더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개탄스럽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인데, 여기저기 다양하게 번역된 예를 들어 부연설명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미국의 유명한 사역자 T의 책을 예로 들어 보자. T가 자기 메시지의 신빙성을 주장하기 위해 여러 역본들을 인용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왜냐하면 말씀은 한 가지이고 사실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목회자들도 이런 영향을 받아 한 구절로도 한 편의 설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한 정황을 상상해 내는데 이것은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T의 책에서 옮긴 내용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에피소드에 관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앰플리파이드 성경에서는 다윗이 돌을 도시락 주머니에 넣었다고 말씀한다! 다윗은 싸우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소풍을 가는 중이었다. 골리앗은 "내가 네 도시락을 먹겠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정작 그는 다윗의 도시락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몰랐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에 맡겼고, 기적이 일어났다(어떤 면에서, 다윗은 '록앤롤'의 선구자(?)였다. 그가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자 거인이 넘어져 굴렀기 때문이다).

    이건 그가 인정한 대로 '특이한' 소설이다. 다윗은 도시락이 아닌 양치기의 자루에 물맷돌을 가져갔고, 골리앗은 다윗의 도시락을 본인이 먹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너(다윗)의 살을 날짐승과 들짐승에게 주겠다!"고 했다. 또한 다윗은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간 것도, 소풍을 가는 마음 자세로 임한 것도 사실무근이다.

    그는 왜 앰플리파이드 성경을 인용했을까? 이것은 의역성경이다. 말하자면, 벌써 노인이 됐을 다니엘이 사자굴에 빠진 이야기를 아이들용이라 해서 어이없이 꼬마 소년으로 삽화를 그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성경이야기'에 가깝다.

    그가 조크로 덧붙인 '록앤롤'에 관한 이야기도 뜬금없다. '바위(물맷돌)'와 '구르다'라는 뜻의 Rock and roll을 말한 것인데, 20세기 중반에 디제이 알란 프리드에 의해 처음 사용된 이 말은 퇴폐적이고 강렬한 음악을 이르는 말로 남성의 성기와 차의 바퀴를 뜻하는 것으로, 카섹스를 의미하는 비속어라고 한다.

    자신이 의도한 결론이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여러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그것들을 주장과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골라 쓰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쉽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는 양심없는 과학자들이 잘 쓰는 수법으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이에 합치되지 않는 결과들은 모두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들을 말씀에 비추어, 그리고 다른 성경적 정황이나 예표 등을 통해 유추해 내는 통찰력과 다른 내용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는 소설적인 전개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T는 계속 써내려 간다. 예수님께서 배로 가다라(거라사) 지방에 내리셨을 때, 부정한 영 들린 자가 멀리서 보고 달려와 경배했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를 지배하고 있던 2천 마리의 마귀들은 그의 찬양(경배)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에 예수님을 본 적도 없었지만 '무언가가 그를 주님께로 끌어당겼고', '필사적으로 주님을 찾았으며', '필시 1마일은 달렸을 것'이라고 전혀 성경에 없는 말들을 써 놓았다. 이런 상상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책의 페이지를 늘이거나 1년 내내 해야 하는 설교 시간을 늘이기 위함일까?

    그는 부정한 영 들린 광인(狂人)이 2천의 마귀들로 꽉 차 있었음에도 찬양할 수 있었고, 마귀들도 한 사람의 찬양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찬양의 힘은 위대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광인이 와서 '경배하고 부르짖으며' 예수님께 자기들을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대화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과 마귀들의 대화로 보이며 2천의 더러운 영들이 굴복한 것은 광인의 찬양 때문이라기 보다 예수님의 나오라는 '명령'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정확히 말씀하고 있다. 귀신들이 돼지 떼로 옮겨간 것도 예수님의 허락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전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이었다. 그분의 권한과 능력을 간과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물론 T를 포함한 유명한 사역자들의 가르침에는 훌륭한 부분도 있고 위대한 통찰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말씀을 멋대로 부풀리거나 편리한 대로 추측하여 연결시키면 안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있지도 않은 수만 년 전(?)의 말 뼈다귀나 원시인의 진화 체계를 맞추기 위해 엉뚱한 시대의 것을 끼워 넣거나 원숭이뼈를 깎고 색칠까지 하는 일처럼 자칫 큰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역자라도 말씀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한다. 이 책에 국내의 인기있는 저명한 사역자들이 극찬의 추천사를 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이밖에도 릭 워렌 등 많은 이들이 여러 역본을 인용하며 자기 논리를 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성경 하나로 이단 교리부터 모든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을 다루는 일, 두려움으로 임해야

    지금의 성경이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기존 교단의 사람들이다. 더구나 더욱 개악된 새 성경을 기존 성경의 저작권 만료시점이 오기 전에 억지로 배포하여 의무 사용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들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기득권층이었던 사제들처럼 이젠 교단이라는 이름 때문에 바른 성경에 대한 자기 소신이 있다 해도 이제와서 바꿀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목사가 천국 가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이래서 나오는 것 같다. 교단 조직이란 곧 밥줄이며 하나님보다 무서운 것이 되었다.

    바로 이런 때 바른 소리를 할 수 없다면 진리에서 떠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왜곡된 역사교과서로도 어느 정도 역사를 알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사실도 나와 있다. 그런데 그런 침략이 근대화에 도움을 주고 문호개방에 순기능을 했다는 주장이 황당한 것 아닌가. 지금의 성경도 모든 부분이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성경은, 읽으면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 듣는 통로가 돼야 한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철저히 말씀을 보존하고 전해오셨는지, 왜 그토록 작은 부분의 차이를 명확히 하라고 하셨는지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끝에는

    "이 대언의 말씀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거기 기록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고, 빼면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시리라' 고 했다. 계시록뿐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은 지켜져야 하고 누구라도 마음대로 고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사탄을 본받는 짓이다.

    결론적으로 기존 성경의 문제점은 약간의 물을 섞으면서 전체적으로 흐려지는 문제 정도가 아니라, 소량의 독을 타 넣음으로써 습관적으로 마시는 동안은 모르지만 그 독, 즉 함정적인 메시지에 면역이 된다는 것이다.

     
    글이 좀 길었죠?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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