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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흠정역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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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편 12편 7절)

  • 흠정역 성경은 시제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조회수 : 374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년 3월 28일 14시 26분 1초
  • 흠정역 성경은 시제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문제를 제기하려거든 먼저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는 흠정역 성경을 비판하면 그것은 성경 신자들을 특히 연약한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흠정역 성경을 보는 분들 가운데 시제를 문제로 삼아 혼란을 일으키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4절을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이런 분들은 1절의 ‘창조하시니라’, 2절의 ‘움직이시니라’, 그리고 5절의 ‘부르시니라’가 영어로는 ‘created’, ‘moved’, ‘called’로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는데 왜 흠정역은 이것들을 현재로 번역했느냐고 꼬투리를 잡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으로 흠정역 성경의 번역을 비난하는 분들은 한국말을 쓰는 성경 신자 중에 자기만 독보적으로 영어를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설익은 주장에 미혹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우, 번역의 의도와 사실을 잘 알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위의 세 단어를 현재로 표현하려면 각각 ‘창조하시느니라’, ‘움직이시느니라’, ‘부르시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흠정역은 각각 ‘창조하시니라’, ‘움직이시니라’, ‘부르시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흠정역 성경은 ‘하느니라’체라는 고어체의 예스러운 표현을 수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문체를 웅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면으로만 보자면 개역성경은 뛰어난 번역입니다. 우리말의 웅장한 표현을 성경에 잘 녹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을 현대인에게 익숙한 문체로 바꾸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얼마나 조잡하고 가볍게 읽힐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물론 시중에는 이미 이런 식의 번역으로 출간된 성경이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이 당장 읽기에는 친숙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심과 장중한 경륜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바로 그 놀라운 성경 기록의 격이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더불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 불가한 최고의 경전이라는 성경의 독보적 위상과 가치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번역은 일단 현대인에게 친숙하고 또 어법상 틀린 번역은 아니겠지만, 성경 번역으로는 합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읽는 창작 동화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이제 독자 스스로 두 번역을 비교하며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시제를 잘 살려야겠다고 다음과 같이 번역하면 어떨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더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더라…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더라.
     
    이렇게 모든 구절을 ‘하셨더라’로 해 놓으면 웅장하게 선언하는 분위기가 전혀 살아나지 않고 그 표현이 조잡해집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독자께서 스스로 읽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는 예스러운 표현인 ‘하느니라’체를 도입하여 웅장하게 선언하는 표현기법을 써야 합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것을 잘 표현하였고 개역개정을 내면서도 이런 부분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음은 개역개정 위원회의 번역 원칙입니다.
     
    1. 개역 성경의 옛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하다’체를 사용하여 현대화하지 않고, ‘하느니라’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고어체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1-4절에서 보듯이 ‘하시니라’ ‘좋았더라’ 등의 표현을 ‘하셨다’ ‘좋았다’ 등으로 고치지 않았다. http://www.bskorea.or.kr/kbs_gae/change/change2.html
      http://pcouncil.net/jboard/?code=ilban-aa002&id=1781&p=detail&page=48
      (번역의 원칙만 참조하기 바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의 뜻은 현재 평균적인 교양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현시대에 쓰고 있는 말이 아닌 지금 실생활에서 쓰고 있지 않은 예스러운 고어체의 글에서 경전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흠정역 성경 창세기 1장 1절은 과거를 현재로 오역한 것이 아니라 ‘하느니라’체로 과거의 사건을 웅장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고어체로 유려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굳이 이 부분을 집요하게 따지는 이유는 1장 1절은 오래전에 마친 일이고, 2절부터는 재창조임이 나타나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도 흠정역 성경은 3, 4, 5절 끝에는 ‘빛이 있었고’, ‘좋았더라’, ‘첫째 날이더라.’라는 말로 과거 시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조합을 거쳐서 성경이 웅장한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입다의 이야기를 하나 더 예로 들겠습니다.
     
    사사기 11장 34-40절을 읽으시면서 각 절의 어미 처리를 유심히 보시면 ‘하느니라’와 ‘하였더라’가 조합으로 나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9절의 ‘돌아오니라’와 ‘아니하니라’는 현재 시제가 아니라 고어체로 과거 시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로 표현하려면 ‘돌아오느니라’와 ‘아니하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35 그가 그녀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심히 참담하게 하였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도다.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매
    3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그러므로 이런 부분을 지적한 뒤 줄을 긋고는 흠정역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자가 번역 과정에서 시제도 못 맞추었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시제를 고쳤다고 한다면, 그것은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저는 흠정역 성경에서 제가 알면서 고의적으로 시제 등을 고친 곳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미처 알지 못한 채 시제 등이 잘못 표기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데를 발견하시면 언제라도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마치 제가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으로 개인 블로그 등에 발표하면 결국 킹제임스 성경 자체의 위상이 약화됩니다. 특히 목사나 교사가 이런 일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며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더불어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다. 한국말을 쓰는 한국 사람에게 목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려면 한국어와 영어 중에 어느 언어를 우선해서 잘 이해하고 구사해야 할까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어입니다. 물론 목회자나 성경 교사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아직도 많은 자료와 좋은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못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한국어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고 품위 있게 구사할 줄 알아야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신장이 크지 않은, 즉 다리가 길지 않아 큰 보폭으로 움직일 수 없는 육상 선수와 한쪽 다리만 비정상적으로 긴 육상 선수가 있다면 실제 경기에서 누가 더 유리할까요? 물어볼 것도 없이 비록 짧지만, 정상적인 다리를 지니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처럼 영어에 관해서는 비교적 정통하지만 정작 한국어에 대한 교양과 이해가 부족하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설익은 문제를 제기하고 어설픈 주장을 하게도 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영어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면 우리말로 된 흠정역 성경과 기타 자료들만 충실하게 공부하고 연구한 그리스도인보다 어느 부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독자 여러분! 
     
    흠정역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거든 아직 양심이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먼저 제게 이메일 등을 통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지체들을 위한 이러한 배려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잘 헤아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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