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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조회수 : 1408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년 12월 10일 9시 42분 59초
  • 안녕하세요?

    요즘 나라가 심히 어렵습니다.
    교회와 목사가 크게 타락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 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각하며 삽시다.

     

    샬롬

     

    패스터

     

    ------

    ♡ 생각이 무능한 자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특별법정에서 유명한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이었다. 아이히만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의 정예로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마지막 해결책’, 즉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다.

     

    그는 유럽 각지에 있던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이송시키는 임무를 맡았었으며, 자신이 무려 500만 명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동시켰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재판 소식을 듣고 단번에 예루살렘으로 날아간 사람이 있다. 한나 아렌트였다.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나치의 탄압에 의해 갖은 고생을 하다 미국에 자리를 잡았고, 정치철학자로서 인정받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집필 활동을 통해 전체주의를 맹렬히 비판해오던 그녀는 아이히만의 소식을 듣고 뉴요커 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전범재판에 참관하게 된다.

    악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인물을 기대했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그녀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인물이 피고석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아니 평범함 그 이상의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부하들에게 친절한 상사로 알려져 있었고,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재판 과정에서 칸트의 의무론을 인용하여 자신을 변호할 만큼 지적 교양을 갖춘 이였다.

     

    그의 정신 상태를 분석한 정신과 의사들은, “이 사람은 나보다도 건강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아이히만이 “정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정했다.

     

    아이히만에게는 심지어 유대인 친구들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내 친구들 중 유대인을 미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단지 명령 받은 일을 성실히 실행했을 뿐이다.” 어째서 그러한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느냐고 묻자, 그는 그 일이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자신의 의지로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였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테지만, 이는 상관의 명령이었고,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공직자의 서약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 의무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명령을 받든 것이므로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은, 국제적 관심 속에 7개월 동안 이어졌고, 결국 1962년 5월 31일, 아이히만에게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마무리된다.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그녀가 관찰한 아이히만의 모습을 담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역작을 탄생시킨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그녀가 관찰한 것에 대해 서술한다.

     

    아이히만은 파괴적인 사상에 젖어있는 악마적 나치 광신도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와 같은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들은, 정신병자나 미치광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등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 순응함으로써 타성에 젖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선악구분이 무뎌진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하는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거대한 악을 행하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무려 500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의 끔찍한 행위는 그의 내면에 있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악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타성에 젖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은 ‘생각의 무능’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려는 의지를 잃는 순간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속에서, 집단 속에서, 군중 속에서 거대한 여론이라는 타성에 젖어 스스로 사고하는 것을 멈춘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 실제 사건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모두가 욕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 전문가들이 크게 걱정할 병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온 사회가 공유하는 미신적 공포에 더욱 신뢰를 가지는 사람들.

     

    기억하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만든 것은 그 어떤 특별한 악이 아닌, ‘생각의 무능’이었다.

    생각의 무능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나.
    북한을 찬양하는 너무나 많은 생각의 무능한 자들.
    위 역사의 교훈이 얼마나 참담한 현실을 가져 오는지를
    모르는, 대한민국의 종북 세력들에게 경고의 메시지일 것이다.

     

    Brain이 있고 thinking을 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이 혼란한 세상을 버티며 살 수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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