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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드보라와 여자 목사조회수 : 1002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년 1월 7일 11시 13분 3초
  • 드보라와 여자 목사
     
    신약성경은 논쟁의 여지 없이 한 지역 교회의 목사와 집사는 남자만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딤전3:2, 12).
    그 이유는 딤전 2장에 있듯이 창조 질서와 여자의 범법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권위를 행사해서는 안 됨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2:12).
     
    이 성경 기록은 결코 여자들이 말을 해서는 안 됨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교회에서 남자들 위에 군림하여 권위를 행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절대로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가리는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남자와 여자는 똑같이 존귀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가르침을 지켜 행하고 교회를 운영할 때 모두가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며 교회 안의 질서가 견고하게 유지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지식이 넘쳐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바른 교리입니다. 
     
    이런 교리에도 불구하고 여자 목사/집사/장로를 세워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인물이 바로 드보라입니다.
     
    드보라는 사사기 4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여대언자이자 재판관(사사)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끔 하나님의 말씀(직통 계시)을 전달하는 여자 대언자들이 있었습니다. 미리암(출15:20), 드보라(삿4:4), 훌다(왕하22:14), 안나(눅2:36) 등이 이에 속합니다. 또한 신약시대에도 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기 전에는 대언자들이 있었고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된 여자들로는 복음 전도자 빌립의 두 딸이 대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행21:8-9). 같은 맥락에서 고린도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자매들이 있었습니다(고전11:5).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들은 신구약 성경 전체가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대신 전한 대언자들이며 지금 이 시대에는 이런 대언자가 남자든 여자든 없습니다.
     
    또한, 여자 대언자들이 여럿 있었고 드보라도 그중의 하나이므로 드보라만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드보라가 주목을 받는 것은 그녀가 이스라엘에서 유일한 여자 재판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사(재판관) 시대에 재판관은 거의 왕이나 다름없는 권위를 가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과거 신정 정치하의 이스라엘은 남자들 중심의 사회였고 그래서 여자와 아이들은 심지어 사람의 수에도 들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여인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는 것은 실로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사 시대 이후 왕정 시대가 열렸지만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에서는 공식적으로 여왕이 통치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아달랴가 잠시 유다를 통치하였으나 그것은 왕권을 찬탈한 것이었으며 아무도 그녀를 왕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녀는 곧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의 문화를 이해할 때 드보라라는 여인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드보라 당시(전반적으로 사사들의 시대 전체에 걸쳐)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심히 타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배분한 이후 세월이 흘러 그의 세대 사람들이 생을 마치고 죽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음행의 길로 갔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모든 날 동안과 여호수아보다 더 오래 산 장로들 곧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그분의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주}를 섬겼더라(삿2:7).
     
    사사기 4장에 보면 가나안의 왕 야빈과 그의 군대 대장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고 바로 이때에 드보라가 재판관으로 등장합니다.
     
    바빌론 포로 생활하기 바로 전의 유다의 상태도 이때와 비슷하였습니다. 이렇게 극심하게 타락한 시대에 마땅히 들고 일어나 부패한 사회를 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코흘리개 아이처럼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꾸짖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이들과 여인들을 사용하십니다.
     
    이사야서 3장을 봅시다.
     
    1 보라, [주] 곧 만군의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로부터 의지하는 것과 의뢰하는 것 즉 모든 의지하는 빵과 모든 의지하는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대언자와 분별 있는 자와 원로와
    3 오십인 대장과 존귀한 자와 조언자와 솜씨 좋은 장인과 달변의 연설가를 제거하시느니라.
    4 내가 아이들을 주어 그들의 통치자가 되게 하며 아기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리니
    12 ¶ 내 백성으로 말하건대 아이들이 그들을 학대하며 여자들이 그들을 다스리는도다. 오 내 백성아, 너를 인도하는 자들이 너로 하여금 잘못하게 하며 네 행로들의 길을 무너뜨리느니라.
     
    1-3절은 이런 악한 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있는 남자들을 제거하심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4절과 12절에 있듯이 아이들과 여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며 남자들을 조롱합니다.
     
    바로 이런 일이 드보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사사기 4장 6-9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남자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6 그녀(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게데스납달리에서 불러 그에게 이르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말씀하시기를, 가서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중에서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다가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대장 시스라와 그의 병거와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느니라.
    8 바락이 그녀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매
    9 그녀가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여정이 네게 명예가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기 때문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그 당시 바락이라는 남자가 가장 강하였음에도 그는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드보라의 치마폭에서 움직입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여자 재판관이 등장하여 나라를 구하며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남자들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영국 같은 나라에 여왕이 있고 우리나라는 지금 여자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것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드보라 이야기는 신정 정치하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뜻대로 재판관을 세우셨습니다. 영국 등은 왕위가 계승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 독일 등은 백성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므로 드보라의 경우를 확대해서 이방인 세상 정부에 적용하고는 그 나라의 영적 상태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드보라의 사례를 들어 여자 목사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 역시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교회의 두 직무 수행자인 목사나 집사는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딤전3: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딤전3:12).
     
    여기의 감독은 지역 교회를 감독하는 목사를 말합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침례 성도들은 결코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미국의 침례교회들이 실행하고 있는 원칙입니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고 창조 질서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여인이 목사가 되기를 원해 실제로 목사가 되어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다루거나 참견할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의 모든 행적을 일일이 회계 보고할 때가 있고 그때에 우리 모두가 답변해야 합니다. 여자로서 목사의 직무를 담당했던 본인이나 그런 여자 목사가 목회하는 지역교회에 출석했던 성도들이나 모두 각자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개별적으로 회계 보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에게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롬14:11-12).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자가 지역교회를 이끄는 목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가리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상과 지식이 넘쳐나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잘 지킬 때 교회가 평안하고 질서정연하게 운영되며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지키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마땅히 그에 대한 회계 보고를 해야 함과 더불어 이 땅에서도 그에 따른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교회가 성경에 기록된 바른 교리대로 운영되지 않았을 때 어떠한 악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한국 땅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신 분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자 목사를 만나더라도 한 사람으로서 그를 존중하며 은혜롭게 대하기 바랍니다.
    상대방이 굳이 묻지도 않는데 이런 문제를 꺼내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다만 누가 물으면 은혜롭게 부드러운 태도로 바른 교리를 알려 주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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