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질문 :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차이
대답 : "전에 사로잡혀 간 자들 곧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간 자들 중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올라가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각 자기 도시에 이른 유다 지방의 자손들이 이제 이러하니라. 이들이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왔더라. 이스라엘 백성 사람들의 수가 이러하니"(스2:1-2)
"전에 사로잡혀 간 자들 곧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자들 중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올라가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각 자기 도시에 이른 유다 지방의 자손들이 이러하니라. 이들이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미야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왔더라. 내가 말하거니와 이스라엘 백성 사람들의 수가 이러하니"(느7:6-7)
에스라와 느헤미야에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있는데 이 명단은 서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 에2:2와 느7:7을 비교해 보면 아주 다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 제 일 년에 내린 칙령에 따라 성전을 재건하려고 돌아갔습니다(스1:1). 에스라 2장에 기록된 명단은 그때에 그와 함께 간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제 칠 년에도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스7:7).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로부터 13년 뒤인 아닥사스와 왕 제 이십 년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거기 도착했습니다(느2:1). 이 13년 동안에 두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먼저 또 다른 그룹이 나하마니와 함께 포로 생활에서 돌아 왔습니다(느7:7). 둘째로 에스라 10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방 아내를 쫓아내지 않은 자들을 제거했으며 바로 이때에 이런 변화와 그 중간 기간에 죽은 자와 태어난 자를 반영하기 위해 명단을 고쳤음이 분명합니다. 느헤미야는 7장 5절에 기록된 대로 바로 이 수정된 명단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 하나님께서 귀족들과 치리자들과 백성을 함께 모아 계보대로 그들의 수를 셀 것을 내 마음에 넣어 주셨으므로 내가 처음에 돌아온 자들의 계보 등록부를 찾았고 그 안에서 기록된 것을 찾으니"(느7:5)
이렇게 되어 이 문제는 간단히 풀립니다.
한편 보고에 바친 예물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들의 능력에 따라 그 일을 위하여 금 육만 천 다릭과 은 오천 마네와 제사장들의 의복 백 벌을 보고(寶庫)에 드렸더라."(스2:69)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 중에서 몇 사람이 그 일을 위해 예물을 드렸고 디르사다는 금 천 다릭과 대야 오십 개와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고(寶庫)에 드렸으며 또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 중에서 몇 사람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이백 마네를 그 일을 위해 보고에 드렸고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더라."(느7:70-72)
에스라에 따르면 우두머리 원로들 중에서 몇 사람이 금 61,000 다릭, 은 5,000 마네, 제사장의 옷 100 벌을 드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에 따르면 우두머리 원로들과 백성들이 금 40,000 다릭, 은 4,200 마네, 제사장의 옷 67 벌을 드린 것으로 되어있고 또 총독과 같은 역할을 하던 디르사다 - 이 경우에는 느헤미야를 가리키지 않음(느8:9)- 가 금 1,000 다릭, 대야 - 아마도 은으로 된 대야일 것임 - 50개, 제사장의 옷 530 벌을 드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 구절이 바로 앞에 있는 등록부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방 아내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예물은 명단에서 제거된 것 같으며 그 당시의 디르사다가 이런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그런 예물을 준 것 같습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