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디모데전서 3장 16절의 godliness는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경건인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godly, ungodly 같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것들은 참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입니다. godly는 15회(시4:3-요삼6), godliness도 15회(딤전2:2-벧후3:11), 총 30회 ungodly는 27회(삼하22:5-유18), ungodliness는 4회(롬1:18-딛2:12), 총31회 이렇게 이 단어들은 형용사나 명사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총 61회 나옵니다. 기존 성경(개역 등)에는 이것들이 경건하다, 불경건하다, 악인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들에 god이 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것들이 하나님의 성품 혹은 속성과 관계가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성경에는 몇 군데에만 하나님의 뜻대로 등으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에서 godly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Of or pertaining to God; coming from God; divine; spiritual. Obs. exc. arch.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에게서 오는, 신적인...) 한영사전은 이 말을 '신을 공경하는, 고어: 하나님에게 속한, 신성한'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원래대로 하면 godly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흠정역 성경은 이미 61회의 반 수 이상을 그렇게 번역하였고 개역성경도 몇 군데 그렇게 하였습니다. 고후7:10은 그 예를 보여 줍니다. For godly sorrow worketh repentance to salvation not to be repented of: but the sorrow of the world worketh death.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개역성경도 마찬가지로 번역하였습니다. 자,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딤전3:16에서 발생합니다. KJB: And without controversy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 God was manifest in the flesh, justified in the Spirit, seen of angels, preached unto the Gentiles, believed on in the world, received up into glory. 킹제임스 흠정역: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분이 되시고 들려서 영광으로 들어가셨느니라. 개역: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모든 것을 마치고 승천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 모든 일을 한 마디로 ‘the mystery of godliness’라고 말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여기서 the mystery of godliness를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라고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성품이란 됨됨이를 뜻합니다. 즉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이런 됨됨이가 큰 신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은 이것을 경건의 비밀이 크다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경건은 경건하다의 어근이지 경건 자체가 명사가 아닙니다. 거룩하다의 거룩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거룩이 명사인 줄로 착각하고 하나님의 거룩을 추구하라고 외칩니다. 이게 한국 교회의 슬픈 현실입니다. 문법이나 한국어 용례도 모르는 목사들이 수두룩합니다. 거룩은 거룩하다의 어근이지 거룩 자체가 명사가 아닙니다. 자, 여러분은 경건(혹은 경건함)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합니까? 경건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를 뜻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엄숙함이 위대한 신비일까요? 대체 무엇이 엄숙하다는 말인가요? 이렇게 말이 안 되는 번역을 가지고 100년 이상 지내다 보니 이 위대한 말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한국에는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 처형, 구원자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것, 승천하신 것 등을 총괄하는 말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 말이 바로 godliness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됨됨이입니다. 이 중요한 말을 경건으로 번역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개역성경은 그렇다 쳐도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는 성경들은 바르게 이것을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킹: 경건의 신비 표킹: 경건의 신비 근킹: 경건의 신비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는 것들이 어쩌면 다 개역성경을 그대로 복사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표킹은 고후7:10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니라 ‘경건한 슬픔’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람이 경건하게 슬퍼하면 구원을 받을까요? 이런 데는 godly를 하나님을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번역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뒤의 세상 근심과 대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sorrow는 슬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옥스퍼드 사전을 가서 그 뜻을 보면 다양합니다. 고통 고통의 원인 근심 슬픔 우리는 godly를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시편1:1을 보도록 합시다. Blessed is the man that walketh not in the counsel of the ungodly, nor standeth in the way of sinners, nor sitteth in the seat of the scornful. 킹제임스 흠정역: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여기의 ungodly를 단순히 악인, 불경건한 자들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는 사람만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능한 한 영어의 뉘앙스를 살려서 번역하지 않으면 godly, ungodly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딤전6:5를 보면 gain is godliness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딤전6:6에 나오는 동일한 표현 즉 godliness is gain을 도치문으로 적은 것입니다. 여하튼 이런 데서도 이득이 경건이라고 적으면 말이 안 됩니다. 이득이 경건이라는 말이 우리말에 있나요? 이런 말을 평생에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나요?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은 따르는 것이 이득이라고 주장하는(즉 예수님 믿으면 무조건 잘 산다고 주장하는) 악한 자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을 피하라는 말합니다. ‘이득이 경건이라고 주장하는 악한 자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을 피하라고 하면 말이 되나요?
이득이 경건이라는 말은 일단 경건이라는 명사가 우리말에 없으니 틀린 말이고 그런 표현 자체는 우리말에서 한 번도 쓰이지도, 발견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써 놓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대로 번역했다고 하면 누가 거기에 동조할까요? 미국 사람, 영국 사람이 다 그렇게 보지 않는데요. 그들은 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이득이라고 주장하는 악한 자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을 피해야 한다고 이해합니다. 이런 데 나오는 godliness는 그런 뜻이고 여기의 문장은 도치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