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역청인가, 진흙인가? – 창세기 11장 3절의 번역 문제와 바벨탑 건축의 실제
창세기 11장 3절은 바벨탑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재료로 탑을 쌓았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성경 번역본에 따라 상당히 상이하게 해석되며, 이것이 단순한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 이해와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번역의 오류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1.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의 차이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And they said one to another, Go to, let us make brick, and burn them throughly. And they had brick for stone, and slime had they for morter." (Gen. 11:3) 흠정역(킹제임스 성경 번역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옮긴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한 뒤” 개역성경은 다음과 같이 다르게 번역한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은 ‘slime’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를 ‘진흙’ 혹은 ‘끈적한 점토성 접착제’로 보고 있으며, 개역성경은 ‘역청(pitch)’ 즉 방수성 아스팔트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어휘 해석의 차이를 넘어, 본문의 건축 기술과 문맥 이해에 심각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2. 'Slime'의 원어적 의미와 문맥적 해석 히브리어 원어에서 slime에 해당하는 단어는 ‘חֵמָר (chemar)’로, 끈적한 점성을 가진 점토성 진흙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pitch(역청)을 나타내는 단어 ‘זֶפֶת (zepheth)’와 구분되어 사용된다. 즉, slime과 pitch는 서로 다른 물질이다. 출애굽기 2장 3절은 이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본문이다. “She took for him an ark of bulrushes, and daubed it with slime and with pitch.” (KJV) 이 구절에서 모세의 어머니는 갈대 궤를 만들고, 그 겉에 slime과 pitch를 둘 다 칠했다고 되어 있다. 만일 slime이 pitch와 같은 물질이라면, 이처럼 중복해서 사용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slime은 진흙성 접착제, pitch는 방수 재료로 용도가 구분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고고학적·건축학적 관점: 왜 진흙이어야 하는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즉 바벨탑이 건설된 시날 평야(현재의 바빌로니아 지역)는 돌이 거의 없는 광대한 평야지대였다. 대신 점토질 흙이 풍부하여, 이 지역 사람들은 초창기부터 벽돌을 만들어 구워 건축에 사용하였다. 건축 재료로서 벽돌은 단단하고 일정한 모양을 가지기 때문에 탑처럼 높은 구조물을 만들기 적합했으나, 벽돌과 벽돌 사이를 접착시키기 위해서는 물리적 접합성이 있는 재료, 즉 회반죽 또는 진흙 성분의 모르타르가 필요하다. 오늘날에도 시멘트 모르타르가 이런 용도로 사용된다. 반면 역청(pitch)은 방수성과 내화성은 있으나, 벽돌을 접착하기 위한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고온에서 녹아 흐르기 쉽고, 응고되면 오히려 단단하게 굳지 않고 점성만 남아 접착제로서의 성능이 떨어진다. 노아의 방주(창 6:14)나 모세의 갈대 궤(출 2:3)에 사용된 역청은 건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물과 습기로부터 보호하는 방수 목적이 분명하다. 바벨탑이 방수 목적의 배였던 것도 아니고, 강물에 띄우는 궤도 아니기 때문에, slime을 pitch로 번역하는 것은 전혀 문맥에 맞지 않는 선택이다. 4. 창세기 14장 10절: 또 하나의 증거 창세기 14장 10절은 slime에 대한 번역 오류를 더 확실히 보여준다: “And the vale of Siddim was full of slimepits.” (KJV) 흠정역: “싯딤 골짜기에는 진흙 구덩이가 많았으므로…”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역청 구덩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전투 중에 도망치던 병사들이 발이 빠져 움직일 수 없었던 곳은 역청 덩어리가 굳어 있는 바위산이 아니라 끈적하고 질퍽한 진흙 구덩이일 것이다. 전장의 상황과 병사들의 이동을 감안할 때 slimepit은 점착성 진흙 구덩이로 해석하는 것이 당연하다. 5. 번역 오류가 남긴 오해와 교훈 개역성경이 바벨탑 건축에 사용된 재료를 “진흙 대신 역청”이라고 번역한 것은, 성경의 문맥과 고고학적 실증, 언어학적 분석에 모두 어긋나는 중대한 오역이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바벨탑이 마치 노아의 방주나 모세의 갈대 궤처럼 방수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오해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돌 대신 벽돌, 회반죽 대신 진흙(slime)을 사용하여 더 높은 구조물을 쌓으려 했던 인간의 교만과 자력 구원의 시도가 담긴 사건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며, 하늘에 닿는 탑을 세워 하나님을 무시하려 했다. 그런 교만의 상징인 건축물에 ‘방수’는 전혀 무관한 요소다. 결론 ‘slime’은 ‘역청(pitch)’이 아니라 진흙 혹은 회반죽(mortar)에 가까운 개념이다. ‘pitch’는 성경에서 따로 구별되는 단어로 사용되며, 방수와 내화 목적의 재료이다. 고고학적·건축학적 문맥에서도 바벨탑은 진흙 접착제를 사용한 벽돌 건축이었지, 역청으로 만든 방수 구조물이 아니었다. 번역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의 의미와 문맥을 충실히 반영해야 하며, 이를 오역할 경우 신학적 의미의 왜곡과 교리적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늘에 이르려는 인간의 시도를 분쇄하신 사건으로 바벨탑을 기록하였다. 그들의 재료 선택조차도 인간의 교만과 자기 의에 대한 상징이었으며, 하나님의 도구가 아닌 인간적 수단으로 쌓아 올린 구조물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