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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9절)

  • 할례가 유아세례의 기원인가? – 성경적으로 본 분명한 차이조회수 : 30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년 5월 27일 14시 8분 21초
  • 할례가 유아세례의 기원인가? – 성경적으로 본 분명한 차이

     

    들어가는 말

     

    교회 안에서는 종종 유아세례가 구약시대의 할례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이는 대체신학 혹은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비롯된 해석으로, 구약의 육적 언약을 신약의 영적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성경을 바르게 나누고(딤후 2:15) 구약과 신약,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별하면, 할례와 유아세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제도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본 글에서는 창세기 17장 12절을 중심으로 할례의 본래 의미와 배경, 그것이 왜 유아세례의 기원이 될 수 없는지를 성경적·의학적·신학적으로 고찰한다.


    1. “남자”인가 “사내아이”인가 – 정확한 본문 해석의 중요성

    창세기 17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명령하신다.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대대로 남자는…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고 번역하였으나, 킹제임스 성경(KJV)과 흠정역은 “every man child”, 즉 “모든 사내아이”로 번역하고 있다. 단순히 생물학적 남성을 뜻하는 “남자”가 아니라, 특정 시기(태어난 지 8일)에 해당하는 남자아이, 즉 “갓난 사내아이”가 그 대상임을 정확히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번역상의 차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경의 정확한 해석과 적용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창세기 17장 전체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태어난 모든 사내아이에게 언약의 표시로 할례를 명하신 것이지,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나 자란 남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 규례가 아니다. 실제로 처음 할례를 명하신 날에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을 포함한 집안의 모든 남자들이 즉시 할례를 받았지만(창 17:23), 이후로는 태어난 사내아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다.


    이처럼 “사내아이”라는 정확한 표현은 할례의 대상과 시점을 분명히 규정하며, 성경 본문을 충실히 반영한다. 따라서 “남자”라는 모호한 번역은 원문적 의미와 언약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2. 왜 태어난 지 여드레째 할례를 받는가? – 창조주의 섭리

    하나님께서 왜 사내아이가 태어난 지 정확히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도록 하셨는가에 대해, 우리는 과학적인 설명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


    신생아는 태어난 직후 혈액 응고 능력이 미약한 상태다. 이는 비타민 K의 부족과 관련이 있다. 비타민 K는 혈액 속에서 출혈을 멎게 하는 응고 단백질인 프로트롬빈(prothrombin)의 생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신생아는 이 비타민을 충분히 축적할 시간이나 공급원이 부족하다. 출생 직후 신생아의 프로트롬빈 수치는 성인의 약 30%에 불과하지만, 이후 빠르게 증가하여 생후 8일째에 성인의 110%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점이 지나면 다시 안정적으로 성인의 정상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놀라운 사실이다. 인간의 의학이 밝혀낸 이 생리적 현상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천 년 전 언약의 규례를 통해 정확히 지적하신 것이다. 태어난 지 여드레째는 피가 가장 잘 응고되어 수술이나 상처에 대한 회복이 가장 안전한 시기이며, 이 날에 할례를 시행하도록 하신 것은 창조주의 정확한 생리학적 지식을 반영한 명령임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적 설계이며, 인간 생명의 구조와 회복을 꿰뚫고 계신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입증한다.


    3. 할례는 신약의 유아세례로 이어지는가?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이와 같은 구약의 할례가 신약 교회 시대에 시행되는 유아세례의 기원이 되는가?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명확히 말한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씨, 곧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민족적 언약의 증표였다. 이는 신약시대 교회 성도들이 구원받기 위해 받아야 하는 의식이 아니며, 실제로 신약 성경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신학 체계(특히 대체신학 또는 언약신학)에서는 “신약의 교회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주장하며, 할례의 신학적 개념이 유아세례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정체성을 혼동하고 있으며,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못한 결과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를 택하셨다는 것은 그들이 메시아를 낳는 도구가 되며, 하나님의 계시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민족적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지, 그들 모두가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육신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롬 4:11-12, 갈 3:29 참조).


    4. 침례는 할례가 아니다 – 그 본질적 차이

    성경이 가르치는 침례는 할례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의 증표로서 태어난 사내아이에게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육적인 표징이다. 반면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가 자기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영적인 상징 행위다.


    신약 성경에서 침례는 항상 믿음의 고백 이후에 이루어진다. 사도행전 8장 37절은 침례에 있어서 믿음이 선행되어야 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매 내시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는” (행 8:37, 흠정역)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에는 명확히 들어 있으나, 개역성경을 포함한 현대 역본에서는 이 중요한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이는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 유아세례나 세례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며, 본질적으로 복음의 핵심을 훼손하는 심각한 변개다.


    5. 유아세례는 비성경적 의식이다

    유아세례는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이 제도는 종교 개혁 이후 로마 카톨릭의 유습을 따라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도 시행되고 있지만, 성경은 구원받은 믿음의 고백이 없는 자에게 침례를 주라고 명한 적이 없다.


    유아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고백을 할 수 없으며, 부모의 신앙이 아이에게 전가되지도 않는다. 유아세례를 통하여 “이 아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마귀가 손대지 못한다”는 식의 주장은 모두 비성경적이며 미신적이다. 이는 행위나 의식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중생세례 교리로 이어지며,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단적 교리이다.


    결론 – 성경은 침례와 할례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성경을 바르게 나누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육적 씨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언약이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영적 공동체다. 따라서 할례는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민족적 언약의 표시이고,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했음을 고백하는 신약의 은혜의 표징이다.


    할례는 할례요, 침례는 침례다. 둘은 같은 것이 아니며, 서로 연결되거나 대체될 수 없다. 유아세례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약의 할례를 끌어오는 시도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혼동한 잘못된 성경 해석의 결과다. 성경은 오직 믿음을 가진 자가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성경 말씀에 따라 믿음의 고백 이후에 침례를 받아야 하며, 인간의 전통이나 종교 의식에 근거한 유아세례와 같은 비성경적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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