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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새를 쪼개지 않아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다(창세기 15:10)조회수 : 2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년 5월 27일 14시 19분 45초
  • 새를 쪼개지 않아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다(창세기 15:10)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때로 성경 본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 강단에서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창세기 15장 10절도 그 중 하나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짐승들을 중간에서 쪼개어 놓았지만 **“새들은 나누지 아니하였더라”**는 단순한 기록을 두고, 어떤 설교자들은 아브람이 하나님께 희생예물을 잘못 드려서 그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집트에서의 400년 종살이를 희생예물 드림의 실수에 대한 결과로 해석하며, 성도들에게 ‘예배를 정성껏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스스로 해석되며, 성경 안의 다른 말씀들과 일관되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창세기 15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왜 이런 해석이 성경적이지 않은지, 성경은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세 가지 핵심 주제에 따라 살펴본다.


    1. 창세기 15장은 “희생예물”이 아니라 “언약”의 장면이다

    먼저,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희생예물 드림 장면이 아니라 언약 체결 장면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장차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며 그들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창15:5,7). 아브람은 이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15:6).


    그 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짐승들을 준비하라고 명하신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해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 하시니라.” (창15:9)


    이때 아브람은 짐승들을 중간에서 나누어 언약의 전통에 따라 양쪽에 두었고, 새는 쪼개지 않았다.


    “아브람이 그분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취해 그것들을 중간에서 나누고 모든 조각을 서로 마주 보게 놓았으나 새들은 나누지 아니하였더라.” (창15:10)


    이것은 당시 고대 중동 지역에서 언약을 맺을 때 사용되던 방식으로, 쪼갠 희생 동물들 사이로 언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면서 그 언약의 진지함을 맹세하는 의식이었다. 이를 성경은 예레미야 34장에서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또 스스로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것의 조각들 사이로 지나갈 때에 내 앞에서 맺은 언약의 말들을 이행하지 아니하고 내 언약을 범한 자들… 그들을 넘겨주리니.” (렘34:18–19)


    창세기 15장의 핵심은 아브람이 하나님께 희생예물을 잘 드렸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의 책임을 지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겠다는 주권적 선언이다. 실제로 아브람은 쪼갠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지 않았고, 하나님만이 연기 나는 화로와 타오르는 등불의 형태로 지나가셨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오르는 등불이 그 조각들 사이로 지나가니라.” (창15:17)


    즉 이 언약은 조건적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맺으시고 책임지시는 언약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언약의 실패를 아브람에게 돌리는 주장을 무너뜨린다.


    2. 새를 쪼개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다 – 성경이 그렇게 명하셨다

    새를 쪼개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브람의 희생예물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레위기의 규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레위기 1장 17절에서 분명히 명하셨다:


    “그는 그것의 날개들과 함께 그것을 찢되 둘로 나누지는 말지니라.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곧 불 위의 나무 위에서 태울지니…” (레1:17)


    즉 새는 찢되,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따라서 아브람이 새를 쪼개지 않은 것은 성경적 규례를 따랐기 때문이지, 실수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정확히 순종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해석한다면, 이 사실은 결코 무시될 수 없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의 짐승들은 불로 태워 바치는 희생예물이 아니라, 언약의 희생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사체들”(창15:11), “조각들”(창15:17)이라 부르셨지, “번제”나 “예물”이라 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께 불로 바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3. 이집트 종살이는 저주가 아니라 준비된 경륜이다

    또 다른 오해는 창세기 15장 13절에 나오는 400년간의 이집트 종살이를 “희생예물을 잘못 드린 벌”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의 후손에게 계속해서 복을 약속하셨다.


    “이 일들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창15:1)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창15:5)


    하나님은 아브람의 씨가 번성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고, 그들이 이집트에서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며,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창15:14)


    “바로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노니.” (창15:18)


    이 모든 것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기 위한 시간표였다. 이집트에서의 체류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훈련과 성장의 기간이었고, 후에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이루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결론 – 창세기 15장의 핵심은 “믿음의 의”와 “하나님의 언약”이다

    창세기 15장은 희생예물을 잘못 드려서 저주받는 장면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람과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은혜로운 언약의 장면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롬4:3). 그 언약의 증표로 짐승들이 준비되었으며, 새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쪼개지 않았고, 희생물은 불에 태우지 않았으며, 하늘에서 불도 내리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것은 희생예물을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언약 체결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예물에서 성도는 율법적 정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복은 희생예물을 잘 드린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로마서 4:3)


    오늘날에도 우리는 불필요한 종교적 행위에 얽매여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단순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살아 있는 희생예물이며, 그 믿음을 따라 사는 자가 진정으로 복을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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