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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왕하23:29, 스6:22의 아시리아 왕은 맞는 말인가요?조회수 : 219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3년 11월 2일 14시 28분 1초
  • 안녕하세요?


    한 분이 왕하23;29의 ‘아시리아 왕’에 대해 질문하셔서 답을 적습니다.


    그(요시야)의 시대에 이집트 왕 파라오느고가 ‘아시리아 왕’을 대적하러 유프라테스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이집트 왕을 대적하러 나가니 그가 요시야를 본 뒤에 므깃도에서 그를 죽이니라(왕하23;29).


    In his days Pharaohnechoh king of Egypt went up against ‘the king of Assyria’ to the river Euphrates: and king Josiah went against him; and he slew him at Megiddo, when he had seen him.


    질문의 요지는 요시야를 죽인 이집트 왕 파라오느고가 싸우려고 한 대상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KJV, NIV, 개역 성경 등 모든 성경에는 그 왕이 ‘아시리아 왕’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본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시리아는 이 시대에 이미 바빌론에 의해 멸절되어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시리아 왕이 나오느냐갸 질문의 요지입니다.


    병행 구절이 대하35:20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 모든 일 뒤에 즉 요시야가 성전을 정비한 뒤에 이집트 왕 느고가 유프라테스 옆의 갈그미스와 싸우러 올라오므로 요시야가 그를 대적하러 나갔으나(대하35;20)


    여기에는 파라오느고가 갈그미스와 싸우러 올라왔다고 되어 있는데 갈그미스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여기의 ‘아시리아 왕’은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보폴라살로 보입니다.


    반즈 등의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기서 ‘아시리아 왕’이란 말은 니느웨가 아직 함락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니느웨와 바빌론에서 번갈아 가며 궁정을 관리했던 아시리아 왕들에게 익숙한 유대인들(왕하19:36; 대하33:11)은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왕조의 변화로 간주하고 이전 종주국 군주에게 부여했던 칭호인 ‘아시리아 왕’을 그대로 나보폴라살이라는 새로운 왕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이 남 왕국 유다를 침공했을 때 유대인들은 그가 자신을 ‘아시리아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바빌론 왕’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칭호가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죽자마자 그의 삶을 기록하고 열왕기의 저자가 복사한 연대기는 덜 정확하기는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더 친숙한 명칭인 ‘아시리아 왕’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나보폴라살을 아시리아 제국의 상속자로 여겼고 그래서 그를 ‘아시리아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사례는 스6:22에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스6:22에 있듯이 바빌론의 뒤를 이은 페르시아 왕도 ‘아시리아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레 동안 기쁘게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주께서 그들을 기쁘게 하셨으며 또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에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시려고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리셨기 때문이더라(스6:22).


    스6:22의 ‘아시리아 왕’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두 경우의 ‘아시리아 왕’은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를 차지한 바빌론 왕이나 그 뒤를 이은 페르시아 왕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부정확한 것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더 알아듣기 쉽고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이 그렇게 이야기하므로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수용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성경 신자들의 믿음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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