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렘38:15 — “아니하시리이까”를 서술문으로 바꾸면 안 되는 이유
왜 이 글을 쓰는가성경 번역의 목표는 단순히 읽기 쉽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무엇보다 원문이 담고 있는 뜻과 문장의 구조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읽기 쉽게 다듬는 과정에서 본문의 의미나 문맥의 흐름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예레미야 38장 15절이 바로 그런 경우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 구절을 두 개의 부정 의문문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두 번째 문장, 곧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리이까?”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실 것입니다”와 같은 서술문으로 바꾸면 뜻이 더 분명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바꾸면 단순히 문장 형식 하나가 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15절에서 예레미야가 왕에게 무엇을 확인하려 했는지, 그리고 바로 다음 16절에서 시드기야 왕이 왜 한 가지 질문에는 답하면서 다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는지가 보이지 않게 된다.
15절과 16절을 함께 읽으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15–16절을 나란히 읽어 보라
“그때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그것을 왕께 밝히 말할지라도 왕께서 확실히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내가 왕께 조언을 드린다면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리이까? 하매”(렘38:15)
“이에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은밀히 맹세하여 이르되, 우리에게 이 혼을 만들어 주신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죽이지 아니하겠고 네 생명을 찾는 이 사람들의 손에 너를 내주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렘38:16)
예레미야가 왕에게 물은 두 가지15절에서 예레미야는 왕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왕께서 확실히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둘째,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리이까?”
여기서 “아니하시리이까?”는 현대적인 표현으로 하면 “아니하시렵니까?”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의향과 의도를 묻는 말이다.
즉 예레미야는 다음 두 가지를 확인하려 한 것이다.
1. 왕께서 내가 진실을 말해도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렵니까?
2. 왕께서 내가 조언을 드리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시렵니까?
예레미야가 이 두 가지를 먼저 확인하려 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왕에게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바빌론 왕의 통치자들에게 나아가 항복하면 살 것이지만, 나아가지 않으면 이 도시가 불에 타고 왕 자신도 피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었다(렘38:17–18).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생명이 보장되는지, 그리고 왕이 실제로 자신의 말을 들을 의향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한 것이다.
시드기야의 대답 — 한 질문에는 답하고 한 질문에는 침묵하다그런데 16절에서 시드기야가 보인 반응은 매우 흥미롭다.
왕은 이렇게 맹세한다.
“내가 너를 죽이지 아니하겠고 네 생명을 찾는 이 사람들의 손에 너를 내주지도 아니하리라”(렘38:16)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너를 죽이지 않겠다.”
왕은 단순히 약속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되었는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 말을 듣겠다.”
“네 조언에 귀를 기울이겠다.”
그와 같은 말은 전혀 없다.
예레미야는 두 가지를 물었지만 시드기야는 하나에만 답했다. 생명은 보장했지만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이 침묵은 매우 중요하다. 뒤에 이어지는 사건을 보면 시드기야가 왜 두 번째 질문에 답하지 않았는지가 드러난다.
왕의 침묵이 현실이 되다예레미야는 왕의 대답을 들은 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
바빌론 왕의 통치자들에게 나아가면 왕도 살고 이 도시도 불타지 않을 것이지만, 나아가지 않으면 이 도시가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불타고 왕 자신도 그들의 손에서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렘38:17–18).
그러나 시드기야는 결국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레미야 39장에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
“그때에 바빌론 왕이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또한 바빌론 왕이 유다의 모든 고귀한 자들을 죽였으며 또 그 왕이 시드기야의 눈들을 빼고 그를 바빌론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사슬로 묶었더라”(렘39:6–7)
예레미야가 경고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38장 16절에서 시드기야가 두 번째 질문, 곧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리이까?”라는 질문에 침묵한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왕은 예레미야의 생명은 보장했지만 그의 말을 듣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실제로 그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15절의 질문, 16절의 침묵, 17–18절의 경고, 그리고 39장의 비극적 결말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왜 서술문으로 바꾸면 안 되는가이제 문제가 분명해진다.
15절의 두 번째 문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문으로 바꾼다고 생각해 보자.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더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하는 순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의문문에서는 예레미야가 왕의 의향을 묻는다.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렵니까?”
그러나 서술문에서는 예레미야가 왕의 행동을 미리 단정한다.
“왕께서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이 둘은 같은 뜻이 아니다.
더구나 서술문으로 바꾸면 15절과 16절 사이의 정교한 문답 구조가 사라진다.
예레미야의 첫 번째 질문: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렵니까? 시드기야의 대답: 죽이지 않겠다.
예레미야의 두 번째 질문: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렵니까? 시드기야의 대답: 침묵.
바로 이것이 본문에 나타난 구조다.
그리고 그 침묵은 이후 시드기야의 행동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그는 예레미야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에도 순종하지 않았다.
따라서 15절의 두 번째 문장을 서술문으로 바꾸면 단순히 문장 하나를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15절과 16절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질문과 응답의 구조 자체를 흐리게 만들게 된다. 결론예레미야 38장 15절의 두 문장은 모두 왕의 의향을 묻는 부정 의문문으로 읽어야 한다.
“왕께서 확실히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리이까?”
현대적인 표현으로 하면 둘 다 “아니하시렵니까?”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두 가지를 물었다. 시드기야는 첫 번째 질문에는 분명히 답했지만 두 번째 질문에는 침묵했다. 그는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예레미야가 경고한 비극을 맞게 되었다.
그러므로 렘38:15의 두 번째 문장을 서술문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예레미야가 왕의 의향을 묻는 말이 왕의 행동을 미리 단정하는 말로 바뀔 뿐 아니라, 15절의 두 질문과 16절의 선택적 응답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구조도 사라진다.
처음에는 “왕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리이까?”라는 표현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15절과 16절을 나란히 놓고 읽고, 이어지는 17–18절과 39장의 결말까지 살펴보면 왜 이 문장이 의문문으로 보존되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을 현대인의 귀에 매끄럽게 들리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킹제임스 마제스티 성경의 렘38:15은 바로 그 점에서 본문의 문답 구조와 의미를 충실하게 살려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