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과연 예수님은 선한 분이 아닌가?
마태복음 19:16-17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해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16 ¶ 보라, 어떤 사람이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이까? 하매 17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다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거든 명령들을 지키라, 하시니
17절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어떤 분들이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갔더니 거기에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인가?>라는 소책자가 있어서 가져다가 읽었다고 합니다.
이 책자의 저자는 “예수님이 자기는 선하지 않다고 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선하다고 했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그 저자의 주장이 맞는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성경적으로 바르게 설명해야 할까요? ----
요즘 한국 땅에서 이슬람의 포교 활동이 매우 거세고 활발합니다.
이들은 성경의 진리를 뒤엎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유치한 책자를 만들어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순진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책자를 접할 때 이들의 포교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이들의 주장대로 선한 분이 아닐까요?
먼저 성경 기록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봅시다. 요한복음 10장 11-14절에서 그분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무려 3번이나 말씀하십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거니와‥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노라.
그러므로 마태복음 19장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응답은 결코 자신이 선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며 선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행한 일들은 모두 다 선합니다.
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31 이에 유대인들이 돌을 집어 다시 그분을 치려 하거늘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나온 많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일들 중의 어떤 일 때문에 너희가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하시매 33 유대인들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 하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요 신성모독 때문이니 곧 사람인 네가 네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니라, 하매(요10:30-31)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의 감추어진 내면의 위선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단지 사람으로만 생각하면서도 하나님께만 속하는 호칭을 내게 붙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런 호칭을 내게 붙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너희 유대인들이 그런 마음으로 이런 호칭을 쓸 때에는 거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록 그 호칭이 내게 적합하지만, 너희는 그 호칭의 참된 의미대로 무한대의 완전함을 가진 분, 즉 신성을 가진 하나님으로서의 의미로 그것을 나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너희는 단지 내게 아첨하려고 그 호칭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너희 마음이 시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첨하려고 아무 뜻도 없이 하나님께만 속하는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자신의 선한 속성이나 신성을 부인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은밀한 속 중심을 살피시는 예수님께서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께 속한 호칭을 사용하여 아첨하려는 이 사람을 반박하고 그 위선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교훈을 주십니까?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바로 유일하게 선한 이 즉 하나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사실 하나님만 선한(good) 분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에는 사람들 중에도 선한 자들이라고 불린 여러 명의 기록이 나옵니다.
20 이로써 네가 선한 자들의 길로 걸으며 의로운 자들의 행로들을 지키리니 21 이는 곧바른 자들이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들이 그 안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라(잠2:20-21).
눅23:50은 아리마대 요셉을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행11:24는 바나바를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시37:23; 112:5; 잠12:2; 13:22; 14:14; 미7:2; 마12:35 등은 선한 사람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하나님만을 선하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이 모든 선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의 신성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이슬람 소책자의 저자는 성경 문맥에 상관없이 한 구절을 따다가 사람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심지어 “하나님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시14:1).
사실 이런 수법은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성경 문맥은 무시한 채 자신들이 필요한 성경의 한두 구절만을 취해서 마치 모자이크 조각을 이어 붙이듯이 자신들의 교리를 위한 체계를 만들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영적으로 사악한 무리들이 쓰는 이런 고질적인 수법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해하고 문맥의 흐름에 따라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책자의 저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저질 수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의 본래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선함의 근원인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첨하는 호칭을 붙이는 자에게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 알라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즉 그 알라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하나님처럼, '삼위일체가 아니라 아버지 홀로 존재하는, 성경 기록과 상관없는, 사람이 만들어 낸 짝퉁 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 세 분이 한 하나님이신 참 하나님입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아멘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