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마태복음 1장 6절: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는 왜 중요한가?
성경은 단어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의도와 진리를 담고 있는 거룩한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번역에서 단어 하나의 차이가 교리적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대표적인 예로 마태복음 1장 6절을 살펴보며, 왜 킹제임스 성경(KJV)이 옳은 성경인지, 그리고 개역성경이나 NIV와 같은 현대역본들이 왜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
먼저 킹제임스 성경(KJV)의 마태복음 1장 6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And Jesse begat David the king; and David the king begat Solomon of her that had been the wife of Urias.”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새는 다윗 왕을 낳고, 다윗 왕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이 구절의 핵심은 바로 “her that had been the wife of Urias”라는 표현입니다. 단순히 “우리야의 아내”가 아니라, “한때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다윗의 죄와 하나님의 용서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바세바와 간음을 저질렀고, 그 결과 남편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으며, 그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여인은 이후 다윗의 정식 아내가 되었고, 그 관계 안에서 솔로몬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의 합법적인 아들입니다. KJV는 이 여인을 단지 “우리야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그 전에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개역성경과 현대역본: “우리야의 아내”라고만 기록함
하지만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들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개역성경: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NIV: “David was the father of Solomon, whose mother had been Uriah’s wife”
겉으로 보기엔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야의 아내”라는 표현은 마치 지금도 그 여인이 우리야의 아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즉, 하나님의 눈에는 여전히 간음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용서를 무시하고, 다윗의 죄가 끝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는 왜곡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윗은 분명히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회개를 받으시고, 그 여인과의 관계를 정식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야의 아내”가 아니라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가 맞는 표현입니다.
이런 번역은 솔로몬을 다윗의 불법적인 아들로 만들고 맙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올바로 반영한 성경은 KJV
이처럼 KJV는 하나님의 눈으로 본 사실과 구속의 역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죄의 관계로 시작했지만,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다윗의 정식 아내가 되었고, 그 아들 솔로몬을 통해 메시아의 계보가 이어지게 됩니다.
반면, 개역성경이나 현대역본들은 단어를 단순화하거나 의미를 흐려,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 속의 회개와 용서, 구속의 흐름을 놓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 단어 하나가 교리를 바꾼다
성경에서 단어 하나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장 6절의 “her that had been the wife of Urias”는 단지 과거형 표현 하나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 다윗의 회개, 하나님의 은혜, 구속의 역사가 다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온전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현대역본들이 놓치고 있는 진리의 핵심을, 우리는 KJV를 통해 다시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지금도 보존하고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