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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영인가, 심령인가? 마태복음 5장 3절조회수 : 38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년 5월 10일 22시 7분 39초
  • 영인가, 심령인가? 마태복음 5장 3절

    같은 단어, 다른 번역? – '영(Spirit)'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성경의 뜻이 달라진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말씀이며, 단어 하나하나에는 명확한 의미와 교리적 무게가 담겨 있다. 그런데 번역 과정에서 동일한 원어 단어를 서로 다르게 옮기면, 성경의 의미가 흐려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


    영어 성경에 등장하는 'Spirit'

    영어 성경에서 **‘spirit’**이라는 단어는 단수로 505회, 복수로 46회 사용된다. 신약성경의 경우 이는 대부분 그리스어 pneuma를 번역한 것으로, 신약 성경에서 ‘영’을 의미한다. 성경적으로 이 ‘영’은 인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영, 혼, 몸—중 하나로서, 특히 하나님을 인식하고 교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살전 5:23).


    그러나 ‘심령’으로 번역된 50개 절

    개역성경과 개역개정 등은 여러 곳에서 ‘spirit’을 정확하게 ‘영’으로 번역했지만, 문제는 무려 **50개 절 이상에서 ‘spirit’을 ‘심령’**으로 바꾸어 번역했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서도 명확히 구분되는 두 단어

    영: 사람의 몸에 있으면서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적인 것. (죽어도 남는 존재)


    심령: 정신의 근원이 되는 의식의 본바탕, 혹은 마음의 주체


    즉, **‘심령’은 ‘정신적 개념’**에 가깝고, ‘영’은 성경적 존재론에 해당하는 실체적 개념이다. 성경의 ‘영’은 단지 심리적인 상태나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적인 것을 인식하는 기능이다(요 4:24, 롬 8:16).


    번역의 차이로 인한 신학적 왜곡

    디모데후서 4장 22절을 보자.


    개역: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흠정역(KJV):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영과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는 영역은 단순한 ‘감정’이나 ‘마음’이 아니라, 인간의 **영(spirit)**이다. 이것은 성령님이 일하시는 핵심 공간이며, 단어 하나의 차이가 하나님의 임재의 위치를 왜곡할 수 있다.


    산상수훈에서의 대표적 예

    마태복음 5장 3절은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다.


    KJV 흠정역: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개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공동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영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인식하고 겸손히 나아가는 태도이다. 그런데 이를 ‘심령’이나 ‘마음’으로 바꾸면, 단지 기분이나 심리 상태처럼 들리게 되어, 예수님의 참된 의도를 흐리게 만든다.


    일관된 번역이 왜 중요한가?

    성경을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단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번역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는 성경 내에서 ‘영’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성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워갈 수 있다.


    만약 '영'을 ‘심령’, ‘마음’, ‘정신’ 등으로 상황에 따라 제각기 번역하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 체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번역자의 심리적 해석에 종속되는 일이 벌어진다.


    결론: 영은 ‘영’이다 – 번역은 정확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영’은 성경적 존재이며, 하나님의 영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기관이다. 이 단어를 ‘심령’이나 ‘마음’으로 바꾸면, 성경의 교리가 흐려지고,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사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성경 번역은 단순히 의미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를 손상하지 않는 정확성과 일관성이 요구되는 신성한 작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왜곡되어선 안 되며, 단어 하나로도 신학과 믿음이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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