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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9절)

  • 요한복음 4장 35절, “밭들이 이미 희게 되었다?” ― 왜 황금색이 아닐까조회수 : 60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년 12월 28일 19시 38분 33초
  • 요한복음 4장 35절, “밭들이 이미 희게 되었다?” ― 왜 황금색이 아닐까


    요한복음 4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눈을 들어 밭들을 보라. 그것들이 이미 희게 되어 수확하게 되었다.”


    “너희가 말하기를, 아직 넉 달이 남아 있고 그 뒤에 수확할 때가 온다, 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들을 보라. 그것들이 이미 희게 되어 수확하게 되었도다.” (요 4:35)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수확의 풍경은 흔히 ‘황금빛 들판’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밭이 황금색이 아니라 ‘희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을까? 


    이 표현은 단순한 시적 수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농업 현실과 성경 원어의 의미가 정확히 맞물린 매우 사실적이고 의도적인 묘사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팔레스타인의 기후와 곡식의 생태에 있다. 중동 지역의 특징은 강한 태양과 건조한 기후이다. 이 환경에서는 밀이 완전히 익으면, 단순히 노랗게 물드는 단계를 지나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간다. 그 결과 곡식은 진한 황금색 단계를 넘어, 아주 연한 베이지색이나 은백색에 가까운 빛을 띠게 된다. 그 상태에서 강렬한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들판 전체가 하얗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주석가 앨버트 반즈(Albert Barnes, 1798-1870)는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곡식이 수확 시기를 약간 넘길 정도로 바짝 마르면, 햇빛을 강하게 반사하여 멀리서 볼 때 마치 ‘하얀 바다’처럼 보인다. 이 상태는 아직 덜 익은 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수확의 최절정기, 더 이상 지체하면 알곡이 떨어져 손실이 발생할 만큼 긴박한 시점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눈앞의 밭이 바로 그 상태에 도달했음을, 시각적 사실에 근거해 말씀하신 것이다.


    원어를 살펴보면 이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요한복음 4장 35절에서 ‘희다’로 번역된 헬라어 레우코스(λευκός) 는 단순히 색깔이 하얗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 단어는 ‘밝은’, ‘빛나는’, ‘광채가 나는’ 상태를 내포하며, 성경 전체에서 매우 제한되고 특별한 장면에 사용된다.


    변화산에서 영광 가운데 변형되신 예수님의 옷을 묘사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된다.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마 17:2)

     

    또한 부활의 아침, 무덤에서 나타난 천사들의 옷 역시 같은 단어로 표현된다.

    “보라, 빛나는 옷을 입은 두 남자가 자기들 곁에 서 있으므로” (눅 24:4)


    요한계시록에서는 승리와 정결을 상징하는 문맥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든 채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계 7:9)


    이처럼 레우코스는 일상적인 색채 묘사에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 정결, 승리, 그리고 빛나는 상태를 드러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성경 전체에서 이 단어가 곡식의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유일한 경우가 요한복음 4장 35절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한 농사 비유가 아니라, 햇빛 아래에서 밝게 빛나는 들판의 실제 시각적 현상을 통해 수확의 시급성과 분명함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셨음을 보여 준다.


    이 농업적 사실은 말씀이 선포되던 현장의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선명해진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무리 지어 예수님께 나오고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주로 표백하지 않은, 밝은 색이나 흰색 계열의 겉옷을 입었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 밭들을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시야에는 바람에 흔들리며 하얗게 빛나는 밀밭 너머로, 흰옷을 입고 물결치듯 다가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행렬이 함께 들어왔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장면을 분리하지 않으셨다. 하얗게 익어 지금 당장 거두어야 할 밭들과,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가오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저 밭이 이미 희게 되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듯이, 저기 오는 영혼들도 지금 바로 수확해야 할 때다.”라는 강력한 시각적 가르침이었다.


    제자들은 농사의 일반적인 시간표를 따라 “아직 넉 달이 남았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시간표를 깨뜨리신다. 


    “너희가 말하기를, 아직 넉 달이 남아 있고 그 뒤에 수확할 때가 온다, 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들을 보라. 그것들이 이미 희게 되어 수확하게 되었도다.”


    “보라.” 곡식이 바짝 말라 하얗게 빛난다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뜻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적 수확의 때가 이미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4장 35절의 “희게 되었다”는 표현은 아름다운 비유가 아니라, 현실에 근거한 긴박한 선언이다. 그리고 그 선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주변에도 이미 희게 된 밭들이 있다. 문제는 밭의 상태가 아니라, 그것을 볼 눈이 있는가이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말씀하신다. “눈을 들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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