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방언의 은사: 성경적 정의와 오늘날의 적용
1. 방언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방언(speaking in tongues)은 처음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사건에서 등장한다. 성령이 임하시자 제자들이 자신들이 배우지 않은 실제 외국어(타언어)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주변 여러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저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우리 언어들로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행 2:11)고 반응했다. 여기서 ‘방언’으로 번역된 헬라어 “글로싸이”(glōssai)는 문자 그대로 ‘언어들(languages)’을 뜻하며, 알 수 없는 소리나 황홀경의 음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외국어를 말한다. 이는 “그런데 어떻게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느냐?”(행 2:8)라는 사람들의 반응으로도 분명히 확인된다. 2. 방언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의 목적과 한계를 명확히 설명한다: 방언은 외국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표적이었다. “그러므로 타 언어들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고전 14:22)이라고 했고, 이는 사도행전 2장의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 교회 안에서는 방언을 사용할 경우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한다고 했으며(고전 14:27–28), 통역이 없을 경우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고 자기에게와 하나님께만 말하라”고 명령했다. 따라서 방언은 개인의 경건을 위한 기도 언어나 자기만족의 수단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타언어를 사용하는 특별한 은사였다. 3. 방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고린도전서 13:8은 “타 언어들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교회사적 맥락과 맞물려 방언의 은사는 사도 시대에 그 기능을 다하고 사라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방언은 교회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은사였으며(엡 2:20), 교회가 완성된 이후 더 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었다.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은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성취였으며, 방언은 이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징조로 주어졌던 것이다(사 28:11 참조). 바울은 “ 모두 타 언어들로 말하겠느냐?”(고전 12:30)라고 반문하며, 모든 성도가 방언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배격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오늘날 복음적 신학자들과 침례교, 개혁주의, 보수적 복음주의 교단들은 방언의 은사는 사도 시대에 끝났으며 오늘날에는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4. 오늘날의 ‘방언 기도’ 또는 ‘신비 방언’은 성경적인가? 오늘날 많은 오순절파 및 은사주의 교회에서 알 수 없는 소리나 황홀한 경험을 ‘방언’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방언과는 전혀 다르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실제 외국어였으며, 듣는 이들이 자기 언어로 알아듣는 것이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비판한 것은 의미 없는 방언 남용과 질서 없는 예배였다. 오늘날 ‘신비한 방언’을 성령충만의 증거로 삼는 주장 또한 성경 어디에도 명령되어 있지 않으며, 성령충만은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함 가운데 걷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방언 여부로 판단할 수 없다. 5. 방언 은사에 대한 오늘날 교회의 태도 방언은 교회의 기초가 세워지던 특별한 시대의 은사였으며 지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오늘날 사용되는 방언은 심리적·감정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으며, 성경의 방언과는 형태, 목적, 본질이 다르다. 오늘날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존 파이퍼(John Piper),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등도 방언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며, 신약 성경의 방언은 타언어이며 오늘날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방언 현상은 성경적인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결론: 방언은 성령께서 교회의 초창기에 주신 실제 외국어의 은사였으며, 복음을 전파하고,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표적이었다. 성경적으로 볼 때, 방언은 이미 사도 시대에 그 목적을 이루고 사라진 은사이며, 오늘날 나타나는 방언 현상은 성경의 방언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방언이 아닌, 말씀에 대한 순종과 거룩한 삶으로 성령 충만을 나타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은 항상 질서 가운데 역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전 14: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