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히브리서 6장 9절의 바른 번역
히브리서 6장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말씀입니다.
6장 15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5절 이런 식으로 그(아브라함)가 끈기 있게 견딘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15절의 그 약속하신 것이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끈기 있게 견뎌야 구원을 받는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13-14절을 보면 여기의 약속은 구원이 아닙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구원은 이미 오래 전에(약 50년 전에) 확고하게 이루어졌고 그는 이삭을 이미 낳았습니다. 14절의 약속은 이삭을 바침으로써 그가 번성하게 됨을 보여 줄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이삭을 바친 뒤 그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창22:16-18절을 보기 바랍니다.
16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나를 두고 이것을 맹세하였노라. 즉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바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므로 17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내가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18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라, 하니라.
10-12절을 보면 여기의 주제가 구원이 아니라 성도들이 누릴 복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 아니하사 자신의 이름을 위해 너희가 보여 준 너희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성도들을 섬겨 온 것과 또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11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열심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기를 우리가 바라노니 12 이것은 너희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인내를 통해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13-15절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10-12절을 설명합니다. 즉 여기의 주제는 구원이 아니라 구원 뒤에 따라오는 복입니다.
7장뿐만 아니라 10장도 다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에 받게 될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꾸준히 견딘 자들(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을 누렸지만 나머지는 구원은 받았어도(이집트 탈출 시 믿음으로) 광야에서 멸절되어 가나안의 복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떠나 예수님을 믿게 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이제 구원받았지만 여러 가지 핍박과 환난을 견지디 않고 중도에 미끄러지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이집트를 떠난 구약 시대 이스라엘 성도들같이, 성도가 누릴 가나안의 복을 잃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누릴 복을 잃는 것입니다.
6장에서 사도는 이것을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또다시 기초적인 교리를 놓는 일을 할 필요가 없음을 말합니다.
4-8절에서 사도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을 잃었다가 다시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8절을 보면 사도는 구원을 받고 나서 심각한 배도의 길을 가면 목숨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전5장에서 심각한 음행을 범한 자(성도)를 죽음에 내주는 것과 같습니다.
또 이것은 요일5:16-17이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짓는 것을 보거든 그는 간구할 것이요, 그러면 그분께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그에게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나는 그가 그것으로 인해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모든 불의가 죄이지만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느니라.
바울은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를 주고 나서 9절에서 히브리 성도들에게는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을 확신 있게 말합니다.
9절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9절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비록 우리가 이같이 말하지만 너희에 관하여는 더 좋은 것들과 또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있음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But, beloved, we are persuaded better things of you, and things that accompany salvation, though we thus speak.
9절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구원 상실 교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개역 등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제대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에 따르면 바울의 말 즉 9절은 그들에게 구원의 증거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에 동반되는 선한 행위가 그들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10절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10절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 아니하사 자신의 이름을 위해 너희가 보여 준 너희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성도들을 섬겨 온 것과 또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러므로 6장은 구원의 상실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을 보여 주고 다만 구원받는 자가 심각한 배도의 길로 들어서면 복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중요한 부분에서 개역 성경은 9절을 이상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처럼 그들에게 구원에 가까운 것이 있다고 하면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이집트(세상)를 떠난 사람들입니다.
다만 지금 광야에서(세상에서)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나안의 복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10장 26-39절도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으나 순종하지 않다가 광야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맥을 잘 보고 성경을 읽으면 영원한 구원의 의미가 확실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