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하늘의 상급을 지우는 성경 변개: 성도들의 소망을 땅으로 끌어내리다 — NIV는 왜 “하늘에”를 삭제했는가?
1. 하늘의 상급은 신약 성도의 참된 소망이다 신약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아…” (골로새서 1:5)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부활을 바랐느니라.” (히브리서 11:35) 신약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땅의 유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기업이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하였다(골 3:1–2). 2. 그러나 현대역본은 “하늘에”라는 구절을 삭제한다 예를 들어, 다음 구절에서 **“하늘에”**라는 명백한 표현이 제거되어 있다: 히브리서 10:34 KJV: “너희는 하늘에 더 나은 것, 곧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을 앎으로 기쁘게 당하였느니라.” NIV: “너희에게 더 좋은 것, 더 영구한 소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점: “하늘에”가 삭제됨 이 표현이 사라짐으로써, 성도들의 소유와 상급이 이 땅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신학적 왜곡이 발생한다. 3. 왜 이 차이가 문제인가? 이 세상은 썩고 사라질 것들로 가득하다. 성도들이 소망을 두어야 할 대상은 영원한 하늘의 기업이다: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상속 유업을 바라보라” (베드로전서 1:4) 그런데 NIV와 개역성경 등 현대역본들은 **“하늘에”**라는 표현을 고의적으로 삭제함으로써 성도들의 시선을 이 땅에 고정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 인생관”**이 사라지고, **“이 땅에서의 번영과 성공”**을 추구하는 뉴에이지 신앙으로 교회를 물들게 한다. 4. 바울의 삶이 보여 주는 하늘의 실체 사도 바울의 삶은 극심한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말한다: “굶주리고 헐벗고 매 맞고 떠돌았다.” (고후 11:23–27)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처럼 여김을 받는다.” (고전 4:13)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 있는 영구한 처소”(고후 5:1)**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나니” (고후 4:18) 그는 알았다. 진짜 영구한 실체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5. 결론: 성도는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NIV 등 현대 역본들은 하늘의 개념을 흐림으로써 성도들의 시선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에 고정시키려 한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세속적 번영을 추구하게 되고, 성도는 하늘에 쌓을 상급보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안락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것, 곧 영구한 실체를 바라본다.” (히 10:34, KJV) 이 영광스러운 진리를 온전히 전하는 정확한 본문, KJV를 붙들자. 이 땅은 지나가지만, 하늘에 있는 유업은 영원하다. “하늘에 있는 너희 상급이 크니라.” (마태복음 5:12) 이 진리를 지우는 자들은 복음을 땅에 가두려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자. 영원한 것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