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장로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진 칼빈은 무자비하게 자기의 반대자를 많이 죽인 사람입니다(적어도 80여 명을).
구약시대의 장로 체제와 신정 정치 체제를 제네바 시에 도입하여 신약 교회가 아니라 구약의 신정 정치 이스라엘 체제를 실현하려 한 사랍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주교의 교황과 같이 제네바의 치리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핍박하고 압제했습니다.
교회사 강좌 37, 38은 장로 교회의 시작과 당회의 시작, 폐해 등을 다룹니다.
어디서도 이런 역사는 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분명한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분파의 창시자와 기원을 알면 모든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칼빈 사상의 핵심이 바로 신정정치체제의 구현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전혀 원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성전 휘장이 찢어져서 새로운 신약시대가 열렸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처음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어진 '비뚫어진 신학체계'입니다.
교회가 다스리는 왕국을 천년왕국으로 이해하는 개념은 연옥의 창시자요, 배도자인 어거스틴이 기초를 마련해 주었고 천주교회가 완성을 했으며 여기서 나온 칼빈이 프로테스탄티즘을 통해 구현하려 했습니다.
이런 데서는 무천년주의를 주장합니다.
육적인 유대인과 중동의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중요한 부분을 다 영해합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런 체제는 하나남이 원치 않는 체제이며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체제입니다.
16세기의 이런 체제를 지금 21세기에 구현하려는 칼빈주의자들이 우리 주변에 도처에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믿지 않고 칼빈의 말을 믿으려 합니다.
칼빈이라는 틀을 통해서만 성경을 보려 하므로 이들에게는 성경이 꽉 막힌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들이 역사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칼빈이 아니라 성경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인 바울을 따라갑시다.
그것이 신약 교회가 해야 할 입니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에드워즈, 오웬 등을 목자로 삼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바울 신학이 모자라서 어거스틴, 오웬 신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한탄하지 말고 바울을 거울 삼기 바랍니다.
바울의 서신서에서 무엇이 부족하기에 이들의 책을 교과서로 삼아야 합니까?
특히 칼빈주의 청교도들은 이 점에서 회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올바른 종말론과 교회론을 가르쳐야 합니다.
2010년 5월 14일에 이어서 적습니다.
교회사 39, 40과에서는 칼빈과 세르베투스 이야기 그리고 칼빈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봅니다.
어떻게 구약의 장로 제도를 도입하고 신민 정부의 힘으로 교회를 치리하려 하며 강압적인 예정론을 통해 선교의 필요를 막아 버린 칼빈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이제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이때에 을 성경을 읽고 거기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