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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 성경이 말하는 역사와 세속 역사의 차이조회수 : 8359
    • 작성자 : 김용묵
    • 작성일 : 2012년 11월 5일 9시 21분 55초
  • 성경과 세속 학문은 ‘창조 대 진화’로 대표되는 과학 분야와의 대립이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역사라는 인문 분야와의 대립도 그에 만만찮은 수준입니다. 즉, 전자는 문헌 기록이 없는 까마득한 지질 역사와 선사시대를 다루다 보니 인문학적 연구 방법론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과학의 영역인 반면, 후자는 인간이 남긴 기록을 통해 연구가 이뤄지죠.
     
    성경에 따르면 인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 때부터 불을 피울 줄 알았고 농사를 지을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육식과 사냥이라는 건 나중에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야만적인 구석기, 신석기 선사시대라는 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3장이야 공격받을 대로 공격받아 온지라, 이를 문자적으로 믿는 교계나 학계가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공격의 대상은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 듯합니다.
     
    창조 과학 진영이라든가 일부 기독교 출판사에서는 노아의 방주가 20세기 초에 실제로 발견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료가 무신론 공산주의 소련 정부에 의해 조작되고 폐기되었다는 역사 기록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는, 노아의 홍수라든가 방주 기록은 죄다 허구이며, 인공위성이 전세계 표면을 샅샅이 뒤져서 Google Earth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만들어 내는 세상이 왔지만 해당 지역에 방주 같은 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두 주장이 모두 옳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도 람세스 2세 정도 되는 시대의 기록을 아무리 뒤져 봐도, 모세라든가 히브리 노예 출애굽이라든가 대재앙 때문에 나라가 완전히 거덜났었다는 말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서 영화 <십계>를 보면, 이를 의식해서인지 모세가 왕궁에서 축출당할 때 모세와 관련된 역사 기록을 의도적으로 완전히 흑역사화하고 말소한다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 더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6일 창조에서 문자적인 24시간짜리 하루가 억겁과 같은 긴 시간으로 왜곡되듯, 홍해가 갈대밭으로 둔갑하는 것쯤은 일도 아닌 거 같습니다. 왜곡의 근거로 알량한 원어 드립까지 등장하면 할 말이 없어지지요. 아예 성경 지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추정 경로부터가 해로가 전혀 아닌 육로로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가 아닌 평범한 갈대밭을 건넜을 뿐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인근 민족들에게 멘붕과 충공깽(충격과 공포)의 근거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수 2:10)? 시편에 수도 없이 나오는 홍해 사건 칭송과 고전 10:1-2, 히 11:29 같은 구절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겠다는 건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유대 왕국을 생각해 봅시다. 특히 열왕기상 10장을 펴서, 솔로몬의 시절을 생각해 봅시다.
    은이 너무 흔해서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었고,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다는데 그런 엄청난 유대 왕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너무 미미합니다. 이상하지 않은가요?
     
    흔히, 세계 고대 유적의 불가사의라고 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든가 바빌론의 공중 정원 같은 게 거론됩니다. 왜 이스라엘 옛 성전이 전혀 논의되지 않는지가 의문스럽습니다. 고전적인 7대 불가사의 중에 현존하는 건 어차피 이집트 피라미드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제아무리 불신자나 기독안티라고 해도,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갈리는 것은 그분의 부활 여부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사대성인 중 한 분으로만 소개하는 세속 인명 사전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냥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만으로 설명이 끝납니다. 그보다 좀 더 관대하게 설명한 세계사 만화나 윤리 서적은 “그런데 기독경에 따르면 그는 그 후에 사흘 만에 부활하고 승천했다고 전해진다/여겨진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가 추가되는 정도입니다.
     
    이건 성경에 기록된 다른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정말 기독교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이 직접적으로 달린 치명적인 이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자체적으로 여러 방어 논리를 두고 있으며, 과거에 사이먼 그린리프 같은 걸출한 법학자는 치밀한 연구 끝에 예수님의 부활이 법적으로도 인류 역사상 가장 명확하게 입증된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각에서는 예수님이 죽은 게 아니라 잠시 기절해 있었다거나, 탈출해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세까지 남긴 뒤 늙어 죽었다거나 하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 도마 복음, 유다 복음처럼 아예 초대 교회 시절부터 애당초 조작과 위조로 판명되어 폐기된 위경, 위서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그보다 수백 배 이상 훨씬 더 검증되고 믿을 만한 성경 정경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일련의 예들을 접하니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우리는 성경이 단순히 복음 메시지만을 포함하는 부정확한 책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고 문자 그대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그분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성경 자체가 과학이나 역사 지식의 전달이 주목적은 아니지만, 일단 과학이나 역사 지식을 언급했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사실일 거라고 믿습니다. 6일 창조, 노아의 홍수, 모세의 재앙과 홍해 기적, 유대 왕국의 부귀영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 중 어느 것도 문자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 학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집요하게 성경 기록을 ‘왕따’, ‘아싸(아웃사이더)’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저는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영향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그저 전설이나 설화일 뿐이라고만 생각하게 되고, 특히 성경의 이스라엘이 지금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그 이스라엘의 직계 전신이라는 설명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방주가 남아 있지 않다 한들, 그리고 이집트의 실록에 모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한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본질적으로 좌지우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역사 기록에도 영적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려는 의도적인 조작이 가미된 게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지 않습니까? 마치 로마 천주교가 중세에 자신들이 저지른 참혹한 학살극과 종교 재판 관련 기록을 조직적으로 말소해 왔듯이 말입니다!
     
    기록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어떻게 그렇게 입 싹 씻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묻혀 버릴 수 있을까요? 구약 시대에는 그런 기적적인 사건들이 해당할 것이고, 나중에 비록 성경의 기록 범위를 벗어나 교회사의 영역이긴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피비린내 나는 순교의 발자취가 이런 식으로 묻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중세 암흑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지 싶습니다.
     
    여기서 일화 하나.
    우리나라에는 조세형이라고 197~80년대를 풍미한 희대의 도둑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소위 ‘높으신 분들’ 내지 졸부들 집을 털면서 현금, 외화, 심지어 물방울 다이아 등 숱한 검은 돈의 원천을 확보했습니다.
     
    그랬는데, 결국은 잡혔지요. 그러니 일반적인 절도 사건이라면 그의 집에 있던 장물들은 다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야 정상일진대, 이 경우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피해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세형이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이 집에서 이걸 훔쳤다고 직접 말까지 했는데도 당사자들은 자기는 집에 도둑맞은 게 없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런 현금과 귀금속의 소유권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간 출처에 대한 추궁, 그리고 무서운 세무조사가 뒤따르겠지요. 탐관오리 졸부라는 세간의 손가락질은 덤이고요. 이걸 감수하느니 차라리 도둑맞은 물건은 그냥 없는 걸로 치고 잊어버리는 게 그들에게 오히려 이익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조세형은 자신이 숫제 대도, 의적으로 취급 받으며 피해자들이 자기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 없는 장물들은 아마 국고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좋군?)
     
    인간의 역사에도 저런 장물 같은 사건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적적인 사건들의 역사적 증거도 많을 겁니다. 단순히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 따라 왜곡되기 마련인 차원을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이 돌아가는 과정이 전부 지하의 음모 세력에 의해 조종된다고 불안해하거나, 이젠 꿈도 희망도 없다고 좌절하거나, 세속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식으로 과민 반응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억울한 피의 부르짖음도 들으시고(창 4:10-11), 심지어 부당한 품삯의 부르짖음(약 5:4)조차도 의인화하여 들을 줄 아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성경의 역사성을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성경을 믿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필요가 있으며, 현실이 이러한데 그 현실의 배후에는 우리가 매우 경각심을 가져야 할 치열한 영적 전투가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역사라는 게 ‘그분의 이야기’(history)라는 기독교식 비유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좀 더 분명하게 와 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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