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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 성경의 장애/질병 표기에 대한 생각조회수 : 10047
    • 작성자 : 김용묵
    • 작성일 : 2013년 3월 28일 13시 46분 39초
  • 옛날에 개역성경은 장애인이나 병자를 묘사할 때 잘 알다시피 이런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
     
    (1) 소경(blind) - 귀머거리(deaf) - 절뚝발이/앉은뱅이(lame) - 벙어리(dumb) - 문둥이/문둥병자(leper)
     
    난 적어도 10대의 연령때까지는 저런 표현에 비하나 조롱이 들어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병신'은 쓰기가 좀 곤란한 욕설에 가까운 단어가 됐지만, 저 정도면 그래도 문제 없지 않나?
     
    그런데 저게 당사자들에 대한 비하· 모독 표현이라는 지적이 많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후대의 성경들은 정치적 올바름과 중립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관형절을 붙여서 해당 질병이나 장애의 의미를 일일이 길게 풀어서 쓰거나, 아니면 최소한 순우리말 명칭을 한자어로 바꿨다.
     
    물론 이건 성경 원문이나 변개, 번역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이슈이며 죄악을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한국어 내부에서의 격식 내지 사회성과 관련된 비교적 작은 문제이긴 하다. 흠정역의 경우
     
    (2) 눈먼 자 - 귀먹은 자 - 다리 저는 자 - 말 못하는 자 - 나병 환자
     
    가 됐으며, 1990년대에 나온 다른 한국어 성경 역본들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저걸로도 모자라서 성경의 표현을 또 이렇게 고쳐야 할 판이다.
     
    (3) 시각 장애인 - 청각 장애인 - 지체 장애인 - 언어 장애인 - 한센인 (나시르 인도 아니고!)
     
    시각, 청각, 지체, 언어는 현재 외형 장애인을 법적으로 분류하는 정식 명칭이다.
    또한, 현재 Leprosy에 대응하는 한국어 공식 명칭은 '한센병'이라고 한다.
    혹시 이미 '나병' 대신 '한센병'이 쓰인 우리말 성경이 있는지 아시는 분?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순우리말인 '문둥병'은 물론이고 한자어인 '나병'이라고 불러도 해당 병에 걸린 환자는 결례로 여기고 싫어한다고 한다. 도대체 나병에 무슨 욕설이나 인격모독적인 뉘앙스가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물론 우리말 성경은 현행 한국어 어문 규정을 따르면서 보편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교리 이외에 다른 껍데기/외형에 불과한 곳에서 불필요하게 독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사항이 없게 만들어져야 한다. 언어란 생각을 담는 그릇일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역사가 길고 영적으로 다른 의미도 많은 유명한 병을 언급하기 위해서, 굳이 19세기를 살았던(성경적 경륜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최근이고 말석인) 특정 의학자의 이름이 성경에까지 매번 거론될 필요가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언어의 격식이라는 건 인간 사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언어에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단순히 병자· 장애인의 인권만 존중하는 표현은, 해당 질병이나 장애가 지니는 '영적 의미'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게 안 좋고 기분이 나쁜가? 그것이 안 좋은 것만큼이나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도 상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가령, “삯꾼 목자, 영적 소경들이 같은 소경들을 인도하기 때문에 교회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비판조의 문장을 생각해 보자.
    '영적 소경'은 잘해 봐야 '영적으로 눈먼 자' 정도로까지는 윤색이 된다. 그러나 이것도 '영적 시각 장애인'이라고 바꾸는 게 가능할 리는 없잖은가.
     
    언어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바뀌어 가는 시점에서는 송명희 시인의 <참 소경> 같은 시도 도저히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에 발표된 이 시엔 '병신'까지도 나와서 다소 민망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주찬양 선교단 1집 2번 트랙에 곡이 수록되어 있다.
    결론을 내리겠다.
    다시 말하지만, 질병이나 장애를 표현하는 어휘의 변화 요구는 무슨 '아버지 대신 어머니'라든가 '아들 대신 자녀', '아내 대신 파트너', '음행 대신 애정행각'에 필적할 정도로 불순하거나 나쁜 트렌드는 아니다. 본인은 이 점을 분명히 못박고자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그런 논리에만 끌려가다 보면 gay clothing(약 2:3)도 시대가 바뀌었으니 개정해야 하고, dragon도 이제 비과학적인 용어이니 정식으로 공룡(dinosaur)로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편한 대로 개정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에 빠지기 쉽다.
     
    우리말 성경은 영어 KJV가 차지하는 것과 같은 급의 최종 권위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말 성경으로도 세속의 사소한 변화 정도에는 동요하지 않는 불변의 권위를 내세워야 하지 않을까. 이미 흠정역은 최소한 교리 성향에 따른 용어 변경이나 본문 교정은 하지 않는 단계로 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건 몰라도 '나병'과 '한센병'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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