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신 내지 절대자에 대해서 여러가지 크고 작은 불만· 불평을 품고 있다.
그 근거 중에는 어떻게 해 주든 어차피 트집잡으며 불평하는 비논리적이고 질 나쁜 불평이 적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마 11:18-19가 아주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것들을 다 제끼고 나면 그래도 좀 합리적이고 한번쯤 생각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의문사항이 소수 존재한다. 신이 정말 있기나 한지 모를 세상의 온갖 죄악과 범죄와 비리와 불공평 말이다. 나쁜놈들은 잘 살면서 착한 사람만 손해 보는 사회 시스템 등.
특히 사회 구조 매사에 불만이 많은 진보 성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공 우익 성향이 강한 분들도 이건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무능하거나 나빠서 그 최악의 지상지옥 김씨 왕조 독재 체제를 몇십 년씩이나 아직까지 멀쩡히 놔 두고 계신 걸까? 진보를 해도 성경보다 더 앞서 가서는 안 되듯, 반공을 해도 하나님보다 더 심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악인의 번영에 대한 고찰은 성경에서도 하박국서나 시편 73편에 몇 차례 언급되어 있다. 허나, 내가 보기엔 겨우 악인이 잘 먹고 잘 사는 이유를 따지는 건 그렇게 수준 높은(?) 불평이 아니다.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사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신에 대해서 이의 제기를 할 거면 최소한 이런 걸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을 왜 도무지 정량적으로 측정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는가? (그래서 인간 사회를 이런 헬게이트로 빠뜨렸나?)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교육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누구나 황금 만능주의의 폐단을 외쳐도 현실에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 맨날 인성 교육 윤리 교육을 외쳐도 공염불에 그치는 이유가 전부 저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돈밖에, 시험 점수밖에 제일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게 없으니까 말이다. 더 나아가면, 구원의 길을 좀 확실하게 과학과 수학의 힘으로 증명 가능한 영역에다 안 놔두고, 왜 두리뭉실 어정쩡한 믿음의 영역에다 놔 뒀는지, 왜 그런 경륜을 만들어 놨는지 그 자체가 신에 대한 트집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밀고 공략하려다 보면 결국 자가당착에 빠진다. 하나님은 다른 물질적인 여건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마다 제각각 놔뒀지만, 구원 같은 진짜 인간에게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아무 스펙 없이도 접근 가능하게, 정말 공평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돈의 힘으로 스펙 쳐바른 배우자와 결혼하고 열쇠 세 개는 장만할 수 있어도, 돈으로 이혼 없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구입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진짜 행복을 선사하는 진리는 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이고 감사할 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 변증이라는 게 별 거 아니다. 없어졌으면 진작에 없어졌을 정도로 일면 황당하게 들리는 복음이 그렇게 호락호락 허술한 논리로 이뤄진 게 아니다. 괜히 소멸하지 않고 2천 년 가까이를 버틴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