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제가 풀어본 입다 딸의 생사 여부 다들 성경 기록대로 믿으면 쉽게 나오는 결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정반대의 주장이 평행선을 그으며 합쳐질 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 결론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는 것입니다. 우선, 상반된 견해들을 요약 정리해 보았습니다. (상반된 견해 요약)
* 요약해서 언급한 것 외에 세부적으로는 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반된 견해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번제 헌물로 드려졌느냐, 아니냐’입니다. 성도의 하나됨을 위하여 진실 찾기에 나서 보렵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일곱 명의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예수님께 했던 성경 기록이 생각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으시고 먼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 (마 22:29)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잘못하는 것을 먼저 지적하시고 나서, 성경 기록에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는 대답으로 그들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입다의 딸 문제를 분명하게 풀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요점 1: 성경 기록들을 알면 잘못하지 않는다. 요점 2: [하나님]을 알면 잘못하지 않는다. - 하나님을 아는 것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아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사두개인들의 질문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의 권능이 포인트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범위를 좁혀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이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라 (골 1:10)”고 권면하셨습니다. ※ 위의 (마 22:29)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요점 1’을 사용해도 잘못하지 않고, ‘요점 2’를 사용해도 잘못하지 않으며, 두 가지 요점을 모두 사용해도 잘못하지 않습니다. (논리식 “(NOT A) AND (NOT B) = (NOT C)”의 대우(對 이제부터 시험을 보겠습니다. (시험 1) ‘요점 1’에 따라 성경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입다의 딸이 번제 헌물로 드려졌다고 결론이 나면 ‘YES’ , 아니면 ‘NO’를 답안지에 적어 주십시오. 네. 제출된 답안지를 보니까 YES도 있고 NO도 있네요. 시험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시험 2) ‘요점 2’에 따라 성경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입다의 딸이 번제 헌물로 드려졌다고 결론이 나면 ‘YES’ , 아니면 ‘NO’를 답안지에 적어 주십시오. 네. 이번에도 답안지에 YES도 있고 NO도 있습니다. 제출된 답안지를 토대로 (시험 1)과 (시험 2)에서의 응답 결과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번제 헌물로 드려졌으면 ‘Yes’ , 안 드려졌으면 ‘No’)
l (요점 1)을 사용하든 (요점 2)를 사용하든 답은 동일하게 나와야 함. 정답: (응답 유형 D) 채점관: 히브리서 기록자 (바울) 채점관 평가(추정): (응답 유형 A) 입다의 서원에 관한 성경 기록을 잘못 해석하하고, 하나님도 사람을 번제 헌물로 받으시는 악한 하나님으로 잘못 알고 있으므로 영적인 분별력이 없음. 입다가 사람을 번제 헌물로 드렸다고 함으로써 믿음의 본으로 기록한 채점관에 정면 도전하고, 차라리 입다 보다는 입다의 딸의 믿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하므로 낙제점을 줍니다. (응답 유형 B) 입다가 딸을 번제 헌물로 드렸는데 그것을 받으신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응답 유형 C) 입다가 딸을 번제 헌물로 드리지 않았다면서 하나님은 악한 하나님이라고 하면 믿지 않거나 안티 크리스천인가 봅니다. 시험볼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응답 유형 D) 성경 기록을 잘 해석하였고, 하나님도 올바로 알고 있어서 영적인 분별력이 좋습니다. 채점관이 히브리서에 믿음의 본이 되는 특출한 사람들 중에 입다를 올린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리겠다는 서원을 하면서까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출한 믿음이 후대에까지 길이 빛나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본받으라고 한 것임. 입다의 딸이 번제 헌물로 죽는 것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죽는 믿음을 보였다면, 그 믿음은 아버지 입다 보다 더 훌륭한 것일 텐데 번제 헌물로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입다의 딸을 기록하지 않았음. 사사기 11장을 읽을 때도 입다의 이름은 기록하고 있는데 입다의 딸 이름은 기록하지 않은 이유도 서치 라이트를 입다의 딸에게 비추지 말고 입다에게 비추려는 의도임을 알아야 함. 여리고 정복 때의 창녀 라합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채점관인 나도 그 이름을 다시 거명하였지 않았는가. 입다의 딸이 숭고한 희생 정신과 투철한 믿음으로 번제 헌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다면 왜 그녀의 이름이 감추어져 있겠는가. 말로는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라고 하면서도, 성경 기록에 하나님께서 인신 제물을 받으셨다고 하면 성경 기록 해석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교묘하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식인종 하나님이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먼저 나서서 사람을 번제 헌물로 받아 잡수신 하나님을 광고한다면 도대체 이것이 말이 되는 건가요? 과연 하나님의 자녀 맞습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무리에게서 속히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거짓 교사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