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어떤 아이 둘이서 걸어가는데 동생은 쌍상투하고 누이는 묶은 머리 했네 동생은 말을 배울 나이고 누나는 다박머리 드리웠네 어미를 잃고 우는 저 두 갈래 길에서 붙잡고서 연유를 물으니 흐느껴 울며 말을 못하네 울면서 말하길, 아빠는 오래 전 떠났고 엄마는 짝 잃은 신세였어요 쌀독은 벌써 비어서 사흘이나 굶었어요 엄마는 저를 안고 흐느껴 울며 눈물 콧물 두 뺨에 얼룩졌어요 동생은 울면서 젖을 찾았지만 젖은 말라서 붙어버렸어요
엄마는 제 손을 잡고 이 젖먹이를 업고서 저 산골에 가서는 구걸하여 먹였어요 어시장에 이르러서는 제게 엿도 먹여줬어요 이 길까지 데리고 와서는 동생을 사슴 새끼 품듯 안고 잤어요 동생은 세상모른 채 잠이 들었고 저 역시 죽은 사람처럼 잠들었어요 문득 깨고 나서 보았더니 엄마는 여기 없었어요 말하다가 울다가 눈물 콧물 줄줄 흐르네
날 저물어 어두워지면 새들도 집을 찾는데 외로운 두 오누이 찾아갈 집이 없구나! 슬프다! 이 나라 백성들 하늘의 떳떳함마저 잃었구나! 지아비와 지어미가 사랑하지 못하고 엄마도 제 자식 돌보지 않네
옛날 내가 마패 갖고 암행어사 되었을 때 당시가 갑인년(甲寅年)이었는데 임금님 분부하셨지, 고아들을 보살펴서 고생 없게 하라고.., 모든 벼슬하는 관리들아! 이 말씀 감히 어기지 말지어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년 전, 조선후기. 절대빈곤으로 인하여 가족이 해체되는 지경을 한탄하며 다산(茶山)이 지은 시(時)입니다. 다행히 오늘날 이 시대에는 절대빈곤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말씀의 빈곤은 날로 더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또 마치 이 시가 오늘날의 기독교를 풍자하고 있는 듯해서 인지 시(時)를 읽고 또 다시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에려옵니다. 바른 말씀으로 많은 혼들이 회심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 같은 소망을 품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혼들이 더해지길 원하는 마음에서, 다산 선생님의 시(時) 한 수와 함께 글을 공유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