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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 단 하나의 날조회수 : 10151
    • 작성자 : 김대용
    • 작성일 : 2016년 6월 4일 23시 50분 29초
  • 벌써 삼월이 되고도 며칠이 지났다. 이제 제법 바람 끝에 봄 향기가 난다. 자동차 계기판 옆에 박힌 시계를 보니 6시 48분. 8시 정각까지 일산의 장례식장을 가야 하니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K는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아본다. 이내 힘을 받은 K의 은색 자동차가 큰 입을 넙죽 벌린 사패터널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간다.


    이 터널은 길이만 약 4Km고 편도 4차로의 쌍굴 터널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길이를 자랑한다. 길이도 길고 편도 4차로나 되니 자유로에 이어 수입차 폭주족들이 롤링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명소가 되었다.


    의정부 호원동에만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K는 기억한다. 북한산을 관통하는 이 터널을 공사할 당시 불교계와 국립공원 관련 시민단체들이 얼마나 극성스럽게 반대했던가. 만약 그때 그들의 논리에 정부가 굴복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도 K는 큰 불편을 감수하고 돌아 돌아서 인천까지 출퇴근했을 거다.


    당시 정부의 수장은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정말 그 길밖엔 없었나?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자신도 모르게 K의 입에서 나지막이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데…….”

    무료한 마음에 라디오를 켰다.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전달된다. 매번 주인공과 무대는 달라도 사람들 사는 스토리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때 갑자기 공중파 방송이 멈추고 이상한 안내방송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다.

    “터널 내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터널 내에 운전자들은 신속히 터널 밖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라. 이거 뭐야!”

    K는 황급히 라디오 주파수를 바꿔본다. 역시 똑같은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그때 갑자기 듬성듬성 켜져 있던 터널 천정의 형광등이 모조리 불을 밝힌다.

    “아이, 참~ 불났나 보네. 직진밖에 못 하는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도대체 어디로 피하라는 거야.”

    퇴근길 앞을 다투던 차들이 갑자기 차례차례 속도를 줄이며 벌을 서듯 줄지어 선다. 모두 이 상황을 피하고 싶지만 피할 길이 없다. 어떤 상황이 기다릴지 모르는 앞으로, 불바다가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앞으로 무작정 전진할 방법밖에 없다.


    “터널 내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터널 내에 운전자들은 신속히 터널 밖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일어난 것을 인지하는 것밖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심한 안내방송. 이런 기계적인 안내방송이 지금 무슨 도움이 될까. 절박하다면 절박한 순간 문득 K의 머릿속에 얼마 전 유튜브에서 봤던 세월호 영상이 떠오른다. 참사로 숨진 중학생들이 마지막 순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미공개 동영상들이다.


    “내가 왜 수학여행에 와서! 난 살고 싶은데! 내가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아~나 진짜 무서워요. 지금”

    “나에겐 꿈이 있는데!”

    곧 닥칠 죽음을 직감한 중학생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절규가 마치 설익은 풋밤 같다. 그래서 채 여물지 못하고 떨어진 풋밤처럼 그 절규가 더 서글프고 처절했다. 영상에서는 그런 상황에 곧이어 20대 중후반 정도 되는 느낌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여교사거나 선박 회사의 직원이 아닌가 싶었다.

    “침착하세요! 얘들아 조용해!”

    그리고 또다시 “침착해~!”


    바닷물은 이미 아이들의 목구멍 부근까지 기어오르는데 침착하란다. 침착하게 죽음을 맞이하라는 말인가? 언젠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사람에 관한 목격담을 들었다. 사고 현장에서 일어나 자신의 벗겨진 신발을 주우러 가다가 그만 혼절하더라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끝내 절명했다면 곧 죽음이 닥칠 것도 모르고 벗겨진 신발을 주우러 간 셈이다. 대단한 아이러니 아닌가. 죽음 앞에선 어린 중학생들에게 어른은 침착하라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이러한 도덕 강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저히 신속히 이동해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 신속히 이동하라는 비상 안내방송도 K에겐 이처럼 무정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윽고 K의 자동차는 계속되는 안내방송과 함께 점점 사고 현장에 근접한다. 저만치 한 사람이 서 있다. 사고 차량 운전자로 보인다. 차들이 피해갈 수 있도록 수신호를 하고 있다. 저러다 전방 주시를 못 한 차량에 치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하긴 지금 남 걱정할 때인가. 그 사나이의 몇십 미터 전방을 보니 마침내 활활 불타는 차량이 보인다. 맙소사, 탱크로리다! 혹시 유조차인가. 저 커다란 탱크로리 안에 기름이 가득 들어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혹시 K의 차가 그 앞을 지나칠 때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써 자동차 폭발은 멋지겠지만, 현실에서는 참혹한 비극이다.


    “제발, 제발 하나님”

    활활 불타오르는 탱크로리를 지나치면서 K는 연신 ‘제발 하나님’을 외쳤다. 다행히 K의 자동차가 지나칠 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때로 현실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마치 영화와 같다. 꼭 꿈같다. 그러니 정말 꿈만 같다는 말이 생긴 거다. 초등학교 2학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실 때도 꼭 거짓이요 꿈만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동네 친구의 말을 듣고도 거짓말 말라며 그 날 숙제를 끝까지 했다. 사람은 늘 그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절대 익숙할 수 없는 삶의 결정적 순간과 마주한다. 그게 인생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불타는 탱크로리를 지나치니 이번엔 칠흑 같은 연기가 온 터널을 가득 채우고 있다. 헤드라이트를 켜도 바로 1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앞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는 또 다른 맛의 공포가 K를 반긴다. 상향등을 켜고 안개등도 켜고 비상등도 켜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거북이걸음처럼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 하긴 빨리 가려고 해도 앞차들 덕분에 갈 수도 없다. 자동차 창문을 완전히 닫고 운전을 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걸어간다면 끔찍하다. 아마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질식해서 쓰러질 거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의 심정이 깨알만큼은 이해가 간다. 마지막 순간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그들의 마음이 오죽이나 절박했을까.


    드디어 저 앞에 터널의 출구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 조금만 앞으로 나가면 이 지긋지긋한 답답함과 이별이다. 채 몇 분이 안 되는 시간이 K에겐 몇 시간처럼 느껴진다. 출구가 가까워지자 차 간 거리가 벌어지고 점점 속도가 난다. 그렇게 터널 출구에 다다르니 확연하게 뚜렷한 시야가 확보된다. K는 저도 모르게 발톱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숨을 내쉰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바로 앞 양주톨게이트에 도착한다. 통행료 3천원을 집어 드는 손이 오늘따라 느슨하다. 통행료를 건네며 K는 요금수납원 아주머니에게 괜한 말을 건넨다.

    “휴~ 정말 오늘이 끝인 줄 알았어요.”

    “네 고객님?”

    요금수납원은 아직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K는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고 연이어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터널에서 큰불이 났고 연기 냄새가 여기까지 퍼졌다는 수신호인데 못 알아들었으면 어떠하리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K의 자동차가 풀 악셀의 동력으로 채찍 맞은 팽이처럼 쏜살같이 미끄러진다. 될 수 있는 한 화재 현장에서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멀어지고 싶다.


    어쩌면 K에겐 지금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잠시 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유조차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어도 탱크로리가 폭발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1분 1초라도 평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날,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그날이 오기 전에 나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을 마치 단 하나의 날처럼 살 수는 없을까.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K는 다짐한다. 마치 꿈결 같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기 전 오늘의 하루를 마지막 하루처럼 값지게 살자. 가끔 무리한 다음 날 부정맥 때문에 뻐근해진 심장을 느끼며 일어날 때면 늘 자신을 일깨운다. 허무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헛된 욕심에 자신의 귀한 하루를 소모하지 말자.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세워주고 바르게 이끌어주는 소중한 일들에 천금 같은 시간을 사용하자. 


    “그래 하루하루가 내게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단 하나의 날이야!”

     

    4 주여, 나로 하여금 내 종말과 내 날들의 한계가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하사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하소서.

    5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한 뼘만큼 되게 하셨사오니 내 시대가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며 참으로 모든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전적으로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6 분명히 모든 사람은 헛된 모습 속에서 걷나니 분명히 그들은 헛되이 소동하나이다. 그가 재물을 쌓으나 누가 그것을 거둘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였도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의 모든 범법에서 나를 건지시며 나로 하여금 어리석은 자의 모욕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시39:4~8)

     

    --------------

     

    이 글은 올해 3월 5일 제가 직접 겪은 아래의 사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터널 지나던 탱크로리 불...1시간 넘게 퇴근길 정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079077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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