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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편 1절)

  • 비아 돌로로사(the Via Dolorose)조회수 : 7928
    • 작성자 : 신혜경
    • 작성일 : 2017년 4월 10일 1시 44분 26초
  • 오늘 저희 교회는 오전예배 시간에 "십자가 고통의 의미 : 주여, 나를 기억하소서"(눅 23:26~43) 제목의 말씀을 통해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의 무게를 생각할 때,
    "내가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십자가는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것이었는지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아니 과연 내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기나 한 것인지,
    아버지 목전에서 은혜와 긍휼만을 앞세우며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모습 이대로 제가 돌아갈 곳은 그분의 사랑과 공의가 완전하게 성취된 자리, 십자가뿐임을 확인하고 곧 다다를 생명의 부활의 그 날, 그 순간을 소망하며,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다음 글은 제가 2004년도에 번역했던 짧고도 강렬한 글입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 "비아 돌로로사"라는 단어가 언급되었기에 공유해 봅니다.
    혹시 의미의 전달이 부족하거나 성경의 묘사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하여 주시고
    주님의 고통받으심에 촛점을 맞추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 글은 트루먼 데이비스 박사님이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견디신 격렬한 고통을 해부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글입니다:
    이 글에서 예수님의 고난 혹은 고통의 육체적인 양상들을 다룰 것입니다.
    우리는 겟세마네로부터 그분께서 조롱받고 채찍맞으시며 비아 돌로로사로 향하시던 그 길을 따라서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죽으시던 그 시간까지 따라가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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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찍질을 위한 준비가 집행되고 있다.
    죄수의 옷이 벗겨졌고, 두 손은 머리 위에 있는 기둥에 묶였다.
    로마인들은 이런 종류의 형벌에 유대법을 따르려는 어떤 시도를 했었는지 의심스럽다.
    유대인들은 예로부터 40대 이상의 채찍질을 금지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법이 엄격히 지켜졌는가를 항상 확인했고, 39대의 채찍만 허용하기를 주장했다.
    (잘 못 계수한 경우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반드시 처벌받는다)
    로마 군인들은 양손에 채찍을 들고 앞을 향해 걷는다.
    이것은 각 끝 부분에 두 개의 작고 둥근 납덩이가 박힌 여러 개의 무거운 가죽끈으로 이루어진 짧은 채찍이다.
    그 무거운 채찍에 온 힘을 실어서 예수님의 어깨, 등, 다리를 이리저리 사정없이 되풀이하여 내리쳤다.
    처음에 그 무거운 가죽끈은 피부만 상처를 내다가 매질이 계속되면 피하조직 깊숙이까지 터져 찢어져 피부의 모세혈관으로부터 피가 줄줄 흘러나오다가 마침내 근육 밑에 있는 혈관으로부터 동맥혈이 솟구쳐 뿜어져 나온다.
     
    작고 둥근 납덩이들은 처음엔 계속되는 채찍질에 의해 살이 터져 버리는 크고 깊은 상처를 내다가,
    결국에는 등껍질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너덜거리고 몸 전체의 찢어진 틈으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대량 조직 출혈이 일어난다.
    그 죄수가 거의 죽음에 이르면 책임을 맡은 백부장의 판단 하에 마침내 채찍질이 중단된다.
    반쯤 실신한 상태의 예수님은 그 때 풀려져 그 자신의 피로 물든 돌로 포장된 길 위에 내동댕이 쳐진다.
    로마군인들은 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던 이 시골 출신 유대인에게 엄청난 조롱을 퍼붓는다.
    그들은 그의 어깨에 겉옷을 거칠게 입히고 왕의 홀인 양 손에 (갈대)나뭇가지를 쥐여 준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모조작품을 완벽히 조롱하기 위해 왕관도 필요하다.
    나뭇가지를 구부려서 작은 다발을 만들고 긴 가시나무(보통 땔감으로 사용되는)로 덮어 씌운 후 왕관 모양으로 엮는다.
     
    이것을 그의 머릿가죽 위에 눌러 씌웠다.
    다시, 대량 출혈이 일어난다(머리카락 부위는 몸에서 가장 혈관이 많이 분포되어있는 부분중 하나이다).
    그를 조롱한 후에 뺨을 마구 때렸으며, 또 손에서 나뭇가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고 머리를 짓이기듯 가시관을 푹 내리 눌렀다.
    마침내 그들은 자기들의 잔혹한 장난에 지쳐 버리자 그의 등에 걸쳤던 겉옷을 벗겨냈다.
    이 때 이미 상처에는 피와 물(혈청)의 덩어리들이 더덕더덕 달라 붙은 채 응고되고 있었다.
    외과용 붕대를 무심코 벗겨내듯이 그 핏덩이를 떼어내면 참기 어려운 큰 고통을 불러 일으킨다.
    ........ 거의, 마치 다시 채찍에 맞는 것 같은 그런 고통 - 그리고 상처는 다시 피를 흘리기 시작한다.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서 로마인들은 그의 겉옷을 도로 입힌다.
    무거운 십자가의 가로대(patibulum)에 그의 양 어깨가 묶어졌다.
    그리고 백부장의 총 지휘에 따라 사형현고를 받은 그리스도와 두 강도에 대한 로마 군병들의 사형 집행 임무,
    그 느릿한 십자가의 도정이 Via Dolorosa(고난의 길)를 따라 시작된다.
    똑바로 걷기 위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나무 들보의 무게와 심한 출혈로 인한 충격이 어우러져 너무 힘들다.
     
    그는 비틀거리며 걷다가 넘어져 나뒹굴기도 한다.
    표면이 거친 나무 기둥은 어깨의 찢어진 살과 근육을 도려내듯이 파고든다.
    그는 일어나려고 애쓴다.
    그러나 사람의 근육이 견디어 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압박해 온다.
    형집행을 서두르고싶었던 백부장은 건장한 체격의 구경꾼-북아프리카 구레네 출신의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고가게 한다.
    예수님은 여전히 피흘리며 차갑고 끈적끈적한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안토니아 요새로부터 골고다까지 650년의 여정이 마침내 완수되었다. 이사야 52:13~53:12, 이사야 대언자를 통해 예수님의 고난이 예언된 후 성취되기까지 걸린 기간)
     
    그 죄수는 유대인이 승인한 허리춤을 두르는 천조각 외에는 다시 옷이 몽땅 벗겨졌다.
    십자가 형벌이 시작된다.
    예수님께 약한 진통성분의 몰약을 섞은 포도주를 주어마시게 하였으나 마시기를 거절하신다.
    시몬은 땅에 십자가 가로대를 내려 놓으라고 명령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가로대에 뉘여지며 어깨 뒤로 곧장 던져졌다.
    그 로마 군병은 (예수님의)손목을 마주 대하고 잠시 멈칫한다.
    곧 철로 만들어진 무겁고 사각형 모양의 못을 손목을 뚫고 나무에 깊숙이 내리 박는다.
    재빨리 그는 다른 한 쪽으로 옮겨가서 팔이 움직여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아주 단단히 못 박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약간의 구부러짐이나 움직임 정도는 허용되었다.
    그리고나서 십자가 가로대는 나무 꼭대기로 끌어 올려졌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명패를 그 위에 붙였다.
    왼발을 오른발 위로 포개어 꽉 눌렀고 무릎은 적당히 구부러진 상태로 해놓고 두 발을 쭉 펴서 발가락들을 아래로 오게하고 그 한 가운데를 관통해서 못을 박았다.
    그 범죄자는 지금, 십자가에 못박혔다!
    손목에 박힌 못들이 무게를 견디다 못해 천천히 축 늘어지기 시작할 때 극심하고 격렬한 고통이 죄를 파열 시킬 듯이 손가락과 팔을 타고 터질듯한 아픔으로 뻗쳐 오른다.
    손목에 박힌 못들은 중추신경들을 강하게 압박한다.
    뻗쳐오르는 고통을 피해 보려고 자신의 몸을 위로 향해 내밀어 보다가는 발을 관통해 박힌 못에 온 몸무게를 맡겨버린다.
     
    다시, 못박혀 찢어진 발의 척골 사이의 온 신경을 통해 뻗쳐오르던 고통으로 서서히 마비가 되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또다른 몸의 현상이 일어난다.
    팔에 힘이 빠지면서 극심하고 혹독하며, 격렬하게 몰아 부치는 고통이 연이어 일어나며 심한 경련이 근육 전체에 엄습해 온다.
    이러한 경련은 그 스스로 몸을 위로 향해 내밀어 볼려는 것을 무력화 시켜 버린다.
    팔에 매달린 채 가슴 근육은 마비되고 늑간 근육도 마비되어 제대로 움직할 수 없게 된다.
    공기는 허파 속으로 들어가지만 숨을 내쉴 수는 없게 된다.
    예수님은 한 번의 짧은 숨이라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마침내 이산화탄소가 폐와 혈액을 채우게 되고 경련은 부분적으로 가라앉게 된다.
    간혹 발작적으로 한 번씩 그는 몸을 솟구쳐서 숨을 내쉬고 생명을 연장하는 산소를 얻는다.
    이 시간 동안 다음과 같이 기록된 일곱 개의 짧은 말들을 토해냈다는 것은 확실하다.
    첫 번째 말씀, 그의 솔기 없는 겉옷을 서로 갖기 위하여 주사위를 던지고 있는 로마 군인들을 아래로 굽어 보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눅 23:34)
     
    두 번째 말씀, 회개한 강도에게: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세 번째 말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겁에 질리고 슬픔에 젖은 젊은 요한(사랑하시는 사도)에게:
    "네 어머니를 보라!"(요 19:26-27)
     
    네 번째 울부짖음은, 시편 22편 첫 부분에 기록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무한한 아픔의 시간들, 고통의 순환, 관절이 쪼개질듯한 경련,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기절, 거친 나무에 기대어 몸을 아래 위로 움직일 때마다 잡아 찢는듯한 등의 고통으로 근육은 거의 마비될 듯하다.
    그 때 또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두개골이 점점 혈청(물)으로 채워지면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극심하게 으깨어지는듯한 통증이 일어나며 심장이 압박을 당하기 시작한다.
     
    다시 시편 22년 14절을 떠올려보자.
     
    "나는 물같이 쏟아졌고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심장은 밀초같이 되어 내장 한가운데서 녹았나이다."
    이제 거의 다 되어 간다.
    근육 조직의 수분은 거의 다 빠져 나갔고,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 압박받는 심장은 무겁고 둔하고 느릿하게 조직 속으로 혈액을 보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극심한 고통에 빠진 허파는 공기 한 모금이라도 들이 쉴려고 헐떡이며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현저하게 탈수 상태가 된 근육조직은 절실한 수분에 대한 욕구를 뇌에 호소한다.
    예수님은 숨을 헐떡이시며 다섯 번째로 외치신다.
     
    "내가 목마르다"(요 19:28)
    예언적인 시편 22편의 다른 구절을 보자.
    "내 힘이 질그릇 조각같이 마르고 내 혀가 내 턱에 붙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티끌 속에 두셨나니(시 22:15)
    이에 식초로 흠뻑 젖은 해면이 그의 입술로 끌어 올려졌다.
    그는 분명히 아무 액체도 마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몸은 이제 최후의 순간에 다달았다.
    그는 그의 온 몸의 조직을 통해 조여들어오는 죽음의 냉기를 느낀다.
    이런 깨달음은 그분의 여섯 번째 말씀,
    -어쩌면 고통스런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을 발언케 한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예수님의 속죄의 사역은 완수되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몸을 죽음에 내 놓았다.
    마지막으로 온 몸의 힘을 격동시켜 그분은 다시 한 번 다리를 쭉 뻗어서 못에 박혀 찢어진 그의 발에 힘껏 힘을 줘 본다.
    숨을 좀 더 깊이 들이 쉰 후 그분의 일곱 번째이며 마지막 외침을 큰 소리를 소리질러 말씀하신다.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눅 23:46)
     
    그 나머지는 당신이 아는 바와 같다.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죄인을 재빨리 처치하여 십자가에서 끌어 내렸다.
    십자가 형벌 종식의 일반적인 방법은 십자가 상에서 뼈를 꺾는 것, 즉 다리의 뼈를 꺾는 것이다.
    이것은 죄수가 빠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막아준다.
    가슴 근육의 압력으로부터 풀려 날 수 없으며 빠르게 숨막힘이 일어난다.
    두 강도의 다리는 부러졌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 앞에 왔을 때 그들은 뼈를 부러뜨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히 죽었음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로마 군병은 심장 내부 심막을 관통하여 위로 갈비뼈 사이 다섯 번째 공간을 그의 창으로 찌른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 따르면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라고 했다.
    이와같이 심장 부근 물주머니로부터 액체의 분출이 있었으며, 심장 내부로부터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통상적인 질식에 의한 십자가 죽음이 아니고,
    우리 주님의 죽음에 대한 확실한 시신 확인 작업의 증거를 갖게 된 셈이다.
    두개골에 물이 차오름으로써 심장에 압박과 충격이 원인이 된 심장 정지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향해, 또 하나님을 향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악의 개략을 잠시 흘깃 경험해 보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렇게 보기 좋은 광경도 아니고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거나 침울하게 하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의 결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긍휼을 맛보아 아는 것!
    그것은 속죄의 기적이며 부활의 아침에 대한 기대이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예수님을,
    수천, 수만 번 십자가에 못을 박고 있습니다.
    죄에 무감각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아버지,
    저의 추악하고 사악한 죄와 악들을 용서해 주세요.
    ........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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