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새롭게 출생하는 것. 이것은 성령님의 사역으로 죄들 가운데 죽어 있던 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 의에 이르는 것으로서 성경에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 혹은 ‘위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요3:3-7). 이것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것이고(고후5:17) 죽었다가 살아나서 거룩함의 새 삶에 이르는 것이며(엡2:1) 마음에 그리스도가 형성되고(갈4:19)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벧후1:4). 이것을 이루는 분은 오직 성령님 한 분 뿐이며(요1:12-13; 3:4; 엡2:8-10) 그분께서는 복음의 진리를 사용해서 이 일을 이루신다(고전4:15; 약1:18; 벧전1:23).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유대인들의 지도자이고 바리새인이며 랍비이고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며 율법과 성경에 해박한 이스라엘의 선생 니고데모에게 “네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요3:3-5)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출생 특권을 부여받았지만 그런 특권으로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했고 이에 주님은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에 사람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을 보여 주셨다(요3:6). 사람은 육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의 자녀이다(요일3:10; 요8:37-44).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여 하늘로부터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한다(요1:12). 새로운 탄생은 발달 또는 개혁이라고 불리는 변형에 의해 옛 본성이 새 본성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감화 혹은 개혁이 옛 본성을 가진 육체를 개선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종교적인 육체일 뿐이다(마7:16).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표범이 자기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리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사람의 상태 선도 참조(87). 새로운 탄생 즉 다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새로운 본성을 이식하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생명은 앞서 존재한 생명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죽은 돌은 스스로 무기적 상태에서 유기적 상태로 전환될 수 없다. 이 두 세계 사이에는 문이 하나 있으며 이 문은 유기적 세계 쪽으로 열려 있다. 돌은 그 문을 열 수 없는 반면에 식물은 열 수 있다. 식물은 그 뿌리들을 흙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돌을 부술 수 있으며 돌의 화학적인 구성 요소들을 취하여 그 요소들에 자신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 사이에도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은 육적인 쪽에서는 열 수 없다. 그러므로 영적인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 사람은 위로부터 태어나야만 한다. 영의 세계에서는 성령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사람의 마음이 태(어머니)가 되어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게 된다(벧전1:23).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사람의 마음에 떨어질 때 성령님에 의해 생명력을 부여받지 못하면 새로운 탄생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공부해도 회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요5:40). 그 말씀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믿음과 화합되어 생명력을 가질 때 드디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히4:2). 이때에 비로소 그 말씀이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그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된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 뒤 죄의 해독제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자기에게 적용해야 한다. 죄인 참조.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님의 일을 하며 그분의 인격을 표출한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새로운 성향과 기질을 소유하여 말과 행실이 달라지며 하늘의 일들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고 하늘의 음식을 먹으며 새 노래를 부르고 세상의 교제를 버리며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교제를 추구한다. 이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윤리적, 도덕적 형상이 그 혼에게 되돌아가며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원리가 심겨진다. 믿음을 생산하는 다시 태어남은 칭의에 의해 완성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기가 그분 안에서 장성한 자가 되어 하늘에 이르기까지 성화의 과정이 시작된다. 칭의, 성화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