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로마 제국의 수도.
이것은 아마도 이 땅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일 것이다. 이 도시는 오랫동안 이교도 세상의 여주인으로 행세해 왔으며 또 지난 1600년 이상 로마 카톨릭 교회의 중심이 되어 왔다. 로마는 원래 이탈리아 반도 중부 테베레 강 연안의 라틴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 국가였다. 그러나 후에 로마는 세력이 확장되면서 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 세계 전체에 로마 시민권을 보급시킬 만큼 고대 세계 최대의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로마 제국 지도 참조(38). 다섯 가지 세상 왕국 선도 참조(76).
전성기에 로마의 성벽은 둘레가 34킬로미터나 되었고 그 안에는 일곱 개의 언덕이 있었다(계17:9). 로마는 건축물의 웅장함과 그림, 조각 등에서 우수성을 자랑하였으며 한때 이백만 명이 그 안에 거주하기도 하였다. 로마는 예술과 사치 그리고 정복에서 뛰어났으며 그 당시 알려진 세상에서 로마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은 민족은 하나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의 정복을 통해 여러 민족의 우상이 로마 안으로 들어 와서 경배를 받았고 그 당시 사람들은 극도로 미신을 숭배하였으며 그 결과 윤리와 도덕이 극도로 부패하였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서신 내용이 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롬1:21-32). 로마는 최초에 왕정으로 출발했으나 주전 509년경 공화정이 되었고 주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이른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되어 원수정 시대를 열었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이후에는 전제군주정이 자리를 잡았다. 주후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은 뒤 로마 제국은 동서로 나뉘어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멸망했으나 동로마 제국은 1453년까지 계속되었다. 주후 313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박해와 순교의 대상이던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으나 이로 인해 각종 이교주의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결국 로마 카톨릭 교회라는 ‘성경 밖의 교회’를 만들어 내었다. 그는 주후 328년에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서 로마 시에 타격을 주었고 그 이후에 로마는 서방 교회의 중심도시로만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로마는 줄기차게 권력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 결국 ‘콘스탄틴의 기증서’ 같은 위조문서를 통해 교황들의 힘을 입고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게 되어 중세암흑시대를 열었으며 이 같은 막강 권력은 지금도 로마 카톨릭 국가들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1517년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루터를 통한 프로테스탄트 운동과 계몽주의의 타격을 받아 쓰러질 뻔하였으나 트렌트 공회와 예수회 등을 힘입어 다시 살아났고 지금은 온 세상 종교의 맹주가 되어 종교통합을 이루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의 로마는 과거의 신전, 그림, 기둥, 공중목욕탕, 극장, 콜로세움 등의 유적으로 유명하여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다. 이 안에는 400여 개의 교회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천주교의 성 베드로 성당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이 안에는 바티칸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개의 도서관과 박물관, 화랑, 궁궐, 학교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지금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사장 폭정과 영구한 미신 숭배 그리고 부도덕과 재앙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다니엘의 환상에 나타난 제국을 제외하고는 로마나 로마 제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단2:33, 40; 7:7, 19). 주전 400년경 구약성경의 정경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에도 로마는 유대인들과 관계를 맺을 정도로 영토를 확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외경인 마카비(마카베오)서와 신약성경에는 로마가 자주 언급된다. 유대인과 로마 사람들 간의 첫 번째 동맹 관계는 주전 162년에 유다 마카비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주전 144년에는 그의 형제인 요나단에 의해 갱신되었다. 이후에는 로마 사람들이 헤롯 왕 가문의 통치를 통해 또 유대를 로마의 한 지방으로 부속시킴으로 유대와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러다 주후 70년에 그들은 완전히 예루살렘과 성전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쫓아내었다. 고대 로마에는 유대인이 많이 거하였으며 도시의 한 부분이 그들에게 따로 배정되었고 거기에서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 체제를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오순절에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경배하러 왔다가 복음을 접한 사람들에 의해 이곳의 유대인들과 로마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행2:10). 클라우디우스 때에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로마에서 추방당하였는데 여기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포함되었다(행18:2; 롬16:3).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즈음에는 로마에 있던 기독교회의 믿음이 모든 곳에 알려졌다(롬1:8; 16:26). 주후 64년경에 네로는 또 다시 크리스천들을 향해 핍박을 가하였고 이런 박해는 콘스탄틴 대제에 이르기까지 열 번 정도 반복되었다. 바로 이 기간에 교리와 실행과 성경 기록의 부패가 발생하여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였고 또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의 예언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교도들의 신앙과 혼합시킨 로마 카톨릭 교회가 로마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