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병 고침을 받은 후 기뻐하는 대목에(행3:8) 나오는 ‘기뻐서 뛰놀다’(눅6:23)라는 히브리 표현은 현대식 춤이라기보다 히브리 사람들의 춤추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윗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에게는 춤추는 것이 대개 종교적인 기쁨과 감사의 표현이었다(삼상18:6-7). 그가 골리앗이라는 블레셋 투사를 죽이자 여인들이 이스라엘의 도시에서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춤추는 일은 또한 가정에 경사가 있을 때에도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 종교적으로 춤을 출 때에는 대개 작은북이 의식을 인도했고 인도하는 사람에 맞추어 다른 사람들이 스텝을 맞추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홍해의 기적 이후에 미리암이 이스라엘 여인들을 인도하여 노래하고 춤을 춘 것과 다윗이 사람들을 인도한 것을 보기 바란다(출15:20-21; 삼하6:14; 시150:4).
성경에 있는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춤추는 일은 대개 종교적 성격을 띠었으며 즐거운 날에 이루어졌고 남녀 중 한 그룹이 행했으며 야외에서 낮에 이루어졌다. 남녀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춘 일은 없었으며 오락으로 춤을 춘 일도 없었다. 오락과 관련해서는 미갈이 말한 ‘헛된 자들이 춤추는 것’(삼하6:20)과 욥이 언급하는 ‘불경건한 가족들이 춤추는 것’(욥21:11) 그리고 헤로디아의 딸이 춤춘 것(막14:6)을 예외로 들 수 있다. 그 당시 로마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연회에서 춤추는 것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 중 하나였고 그래서 그들은 남녀가 어울려 술을 먹으며 춤을 추었다. 또한 로마와 동방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고용되기도 했는데 물론 그들은 대개 좋지 못한 성격을 가진 여자들이었으며 이교도들의 신전에서 벌어진 춤판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춤 역시 외설스러웠다(사2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