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병 고침 즉 치유의 선물(은사)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는 일은 다르다.
치유의 선물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신체적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한 것을 뜻한다. 신약시대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사도들, 그리고 사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수만이 이런 능력을 지녔으며 그들은 온갖 종류의 병자들에게 나아가 즉각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그들을 치료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치유의 선물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따라서 거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 이 선물은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자가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기적적인 능력의 일부이다(히2:3-4). 그러나 치유의 선물도 다른 기적들처럼 성경 역사의 어느 특정한 때에 일어난 표적이었으며 이런 때에도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병이 났을 경우 찾아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치유의 선물(은사)을 소유한 자는 거의 없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치유의 선물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역이 마무리될 무렵 성경이 완성되면서 자기의 형제요 동역자요 동료 군사인 에바브로디도를 고칠 수 없었으며(빌2:25-27) 또 선교 여행 때 자기와 동행한 드로비모를 고치지 못하고 아픈 채 밀레도에 남겨 두었다(딤후4:20). 바울은 자기의 후계자 디모데를 고칠 수 없었고 대신 일반적인 처방을 디모데에게 권했다(딤전5:23). 심지어 바울은 자신도 고칠 수 없었다(고후12:7-10).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적절한 약을 사용했다. 바울이나 다른 성도들이 처한 상황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본이 된다. 즉 아프면 기도하고 의학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약5:14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병든 그리스도인이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부탁하고 처방으로 기름을 바를 것을 가르친다. 이때 기름을 바르는 것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의학적인 처방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기름을 바른 것은 치료를 위해 몸을 문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또한 성도들이 치유의 선물(은사)을 바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몸이 확실하게 고쳐지는 것은 내세의 약속이다(롬8:23). 그때에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몸을 구속하실 것이고 우리는 영화로운 몸을 입고 죄가 육체에 미치는 영향에서 벗어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사탄이 말세에 여러 기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라고 말하는데(살후2:9-10) 마귀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나타낼 수 있기에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고후11:14-15). 치유의 선물은 표적의 선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자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일이 끝나자 치유의 선물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바울의 예나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보더라도 치유의 선물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관행이 아니다. 사도행전과 에베소서를 비교해 보더라도 치유의 선물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급격히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교회 시대에는 모든 질병에 대해 기도와 의학적인 처방을 의지해야 하며 이것만이 병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자세이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의 뜨거운 기도에 응답하사 자신의 뜻 안에서 기적적으로 병을 고치실 수 있으며 지금도 고치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특별히 그런 선물(은사)을 받아 병자에게 손만 대면 병을 낫게 하는 사람은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적, 선물, 타언어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