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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 예루살렘조회수 : 7865
  • 영어 : Jerusalem, 제루살렘
  • 의미 : 평강의 도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7월 19일 3시 4분 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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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의 땅의 으뜸 도시.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이 가장 거룩한 기억의 보고이자 종교적인 경외심과 민족의식의 원천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승리의 현장이다. 이곳은 가나안 지역의 남쪽 높은 곳에 위치하며 지중해와 요르단에서 각각 56, 3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와 사막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북위 31°41'에 위치하지만 겨울에는 몹시 춥고 봄가을에는 이따금 37℃의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예루살렘은 유대의 고원 즉 지중해로부터 720미터 위에 있는 높은 곳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여호사밧 혹은 기드론 골짜기가 있고 남쪽으로는 힌놈의 골짜기가 있다. 한편 도시 안에도 두 개의 작은 계곡이 있어서 이 도시를 시온과 아크라와 모리아로 3등분 하였다. 이 중에서 가장 높은 시온은 도시의 남서쪽에 있었으며 ‘다윗의 도시’ 혹은 ‘위에 있는 도시’라고 불렸다. 이곳은 아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가장 강한 요새였으며 성채와 궁궐이 여기에 있었다. 한편 시온보다 높지 않은 아크라가 있었으며 시온의 북동쪽에는 거룩한 산지 모리아가 있었다. 처음에 모리아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지만 후에는 성전을 두기 위해 크게 확장되었다.
    모리아 산, 다윗의 도시, 시온 지도 참조(54, 55).

    한편 예루살렘의 동쪽에는 기드론 골짜기에 의해 도시와 구분되는 올리브 산이 있었으며 여기서는 도시의 모습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또 모리아와 올리브 산 사이에 기드론 골짜기 근처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고 예루살렘의 남쪽, 시온의 남동쪽 구석에는 실로암 연못이 있었으며 시온의 서쪽과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들에는 기혼의 연못이 두 개 있었다. 예루살렘 주변의 바위들과 기드론과 힌놈의 골짜기 벽에는 굴과 돌무덤이 많이 있었다.
    그리스도 당시의 예루살렘 지도 참조(47).

    이곳은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함으로써 거룩하게 하신 곳이다(창22:1-24; 대하3:1). 이곳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었으나 유다가 이곳을 정복하였으므로 유다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다(수15:8; 18:16, 28; 삿1:1-8). 이곳의 고대 이름은 살렘이었고(창14:18; 시76:2) 후에 여부스 족속이 이곳을 차지하였으므로 여부스라 불렸다(삿19:10-11). 이곳은 강력한 도시였으므로 이스라엘이 이곳을 정복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결국 다윗은 이곳의 요새를 파괴시켰으며(삼하5:6, 9) 그 후에 이곳은 예루살렘 혹은 다윗의 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뒤 이곳은 왕국의 종교 및 정치의 중심이 되어 크게 영역이 확대되고 강화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안의 성전에 참 하나님께서 거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신 데 있다.

    왕국이 남북으로 나뉜 뒤에 이곳은 유다 왕국의 수도로 남았으나 여러 차례 외세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기도 하다가 드디어 바빌론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왕하14:13; 대하12:9; 21:17; 24:23; 25:23; 36:3, 10, 17-20).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지난 뒤에 이곳은 주전 536년경에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에 의해 재건되어 이전의 영광스런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되었다. 그 뒤 주전 332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이곳을 차지하고 그가 죽은 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가 안식일에 이곳을 습격하여 차지하였다. 그 뒤 주전 170년경에 예루살렘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황제의 손에 넘어갔는데 그는 성벽을 무너뜨리고 성전에 주피터 형상을 세우며 모든 것을 동원하여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전 163년에 마카비(혹은 마카베오)들의 인도 하에 유대인들은 독립을 얻었지만 그 뒤 100년이 지나서 로마 사람들이 이곳을 정복하였으며 헤롯 대제는 돈을 많이 들여 이곳을 아름답게 꾸몄다.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충만한 때가 되었을 때에 메시아가 이 도시와 그곳의 성전에 임하셔서 자신의 발이 닿은 곳을 영화롭게 하셨으나 예루살렘은 그분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자신의 죄의 잔을 가득 채웠으며 유대인들은 자기 조상들의 땅을 떠나 유랑하게 되었고 예루살렘은 주후 70-71년경에 로마 사람 티투스(디도)에 의해 멸망되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의 건축물 중에서는 세 개의 망대와 서쪽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그 뒤에도 유대인들은 거기로 돌아가 하나님께 경배하려 했으나 아드리안 황제는 주후 135년에 이곳에 식민지를 세우고 유대인들을 모두 추방하고 돌아오는 자는 사형시켰다. 그리고 그는 도시의 이름을 앨리아캐피톨리나라 부르고 가능한 한 이곳을 완전히 더럽혔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흔적을 모두 없애기 위하여 이방 신들에게 이곳을 바쳤다.

    그 뒤 콘스탄틴 대제는 로마를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들고 이곳을 다시 예루살렘이라 부르며 몇 개의 교회를 건립하였지만 주후 614년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가 비잔틴 제국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뒤 많은 교회를 불사르고 다수의 시민을 끌고 갔다. 또한 주후 638년 이슬람교로 단결한 아랍 사람들이 이곳을 함락시켰으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도 비잔틴제국에서 이탈하여 이슬람교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현재 예루살렘의 바위 사원에 있는 큰 바위는 마호메트가 꿈에 대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로 제7천에 있는 알라신 앞까지 갔다는 승천(미라지)의 장소로서 신성시되고 있다. 아랍 사람들은 압둘 말리크 왕 때에 다윗이 성전을 마련한 곳에 바위 사원을 건립하였다.
     
                                  바위 사원
     
    이때부터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는 서로 상대편의 성지를 존중하였으며 주후 1099년에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1차 십자군이 이 도시를 침략해서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을 자행하고 이곳을 수도로 하는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187년 살라딘이 이슬람 세력을 모아 이곳을 탈환하였고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카톨릭 교도들의 성지 탈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곳은 맘루크 왕조의 세력 하에 들어가서 다마스커스 총독의 지배를 받았으나 1516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셀림 1세가 시리아에 있는 맘루크 왕조의 세력을 꺾고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19세기 중엽부터는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투르크에 압력을 가하여 이곳의 성지 보호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투르크 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자 예루살렘이 그 수도가 되었다. 그 뒤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밸푸어 선언에 따라 유대교도의 이민이 격증하면서 아랍 사람들과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되었으나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도와 아랍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동서로 양분하여 각각 한 쪽을 영유하였는데 1967년 6월의 제3차 중동전쟁 - 6일 전쟁 -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랍 국가들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의 동부 즉 구(舊) 예루살렘마저 점령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곳을 탈환하여 언제라도 성전을 지으려고 기회를 보고 있다.
    현대 중동, 현대 이스라엘 역사, 현대 이스라엘 국가 지도 참조(45. 46).

    고대의 거대한 도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 예루살렘 시가지는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구역을 다 포함한다. 현재의 예루살렘 지도 참조(47). 이 구 시가지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헤롯이 높이 쌓아올린 헤롯 성전 구역이며 이 구역 안에는 이슬람교의 성소인 바위 사원과 모스크가 있다.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서쪽 성벽은 유대교 성지로서 가장 성스러운 곳 가운데 하나이다. 성벽 안의 나머지 지역은 전통적인 동방의 도시로 이슬람교 사원들과 미로처럼 복잡한 상점가와 많은 교회와 고대 유대교 회당 및 학습당이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은 바로 구 예루살렘 시에 성전을 짓느냐 아니면 모슬렘 신전을 그대로 유지하느냐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스라엘은 합당한 때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하던 모리아 산 - 지금 모슬렘들의 바위 사원이 있는 곳 - 에 성전을 지을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바로 이곳에 들어가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포하는 가증한 일이 있을 것이다(단9:25-27; 마24:15; 살후2:4). 이때부터 7년 환난기의 후반부 즉 창세 이후로 없었던 대환난이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들에게 임하게 된다(단12:1; 슥13:8-9; 마24:16-22; 계12:1-17).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뒤에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 강림하시면서 예루살렘의 모든 원수들을 멸하시고(행1:11-12; 슥14:1-5) 예루살렘에서 1000년 동안 평강의 왕으로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슥14:12-21). 이때에 예루살렘은 영광의 왕이 거하시는 곳, 모든 민족들의 경배의 장소가 있는 전 세계의 중심 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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