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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문제점 2조회수 : 20919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3월 20일 15시 54분 14초
  •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2

    웨스트코트의 문제점

    성경 본문 변개의 주범 중 하나인 웨스트코트 박사의 신용장 역시 호르트의 신용장과 비슷하다. 웨스트코트는 창세기 1-3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믿지 못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름까지 언급하신 모세나 다윗도 시적 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웨스트코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창세기의 첫 세 장이 문자 그대로의 역사를 제공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눈을 뜨고 그것을 읽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세 장의 말씀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여 주고 있음을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다윗이 역사적 인물이 아닌 영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신학교의 자유주의자들이나 현대주의자들은 수 년 동안 계속해서 창세기의 처음 세 장이 모두 비유라고 주장하며 그렇게 믿고 있다. 웨스트코트는 또한 기적에 대한 성경 이야기를 모두 의심했다.

    나는 기적 이야기 같은 것은 읽어 본 적이 없으나 직관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서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발견했다.  

    웨스트코트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역사적 믿음에 관해 기록한 나의 작은 책 안에서 주의 오심에 대해 내가 믿는 바를 간략히 말한 적이 있음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예루살렘의 멸망이야말로 주의 말씀이 첫 번째로 성취된 재림이었다고 강하게 믿었으며 그 외에도 다른 재림이 수차례 있어 왔으므로 그분께서 지금 우리에게 오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웨스트코트 감독은 기본적인 천국의 교리를 부인했다. 실제로 그는 천국을 글자 그대로의 장소로 믿지 않았고 어떤 상태로 믿었다.

    전례 법규의 언어가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인성의 임재를 실제의 장소와 연결 짓는 실수를 하지 않게 해 준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삶의 가장 큰 영역이다. 천국은 우리 안에 놓여 있다. 그리고 생각, 회상, 그리고 동경을 위하여 조용히 휴식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좀더 거룩한 상태 즉 천국을 계속해서 신선하게 유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그 천국을 숨쉴 수 있다.

    우리는 인내, 확고한 결심, 믿음, 그리고 노력을 통해 우리 주변의 천국 즉 우리의 지상 생활의 영광을 추구하는 바이다.

    어떤 사람이 읽는 책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다. 웨스트코트는 계속해서 로마 카톨릭 교회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에 스스로를 노출시킴으로써 자신도 알지 못한 채 로마 카톨릭 교회를 선호하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주의의 지속된 공세로 인해 결국 웨스트코트는 많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관례들과 자기의 사고가 일치하게 만들었다. 1849년 2월 그는 로마 카톨릭화하려는 자들이 좋아하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성경의 영감’과 ‘로마 교황의 사도계승권’, 주여! 나로 하여금 이런 주제를 단지 진리 추구를 위해 진정으로 연구하게 하소서!

    첫 번째 주제에 대한 연구 결과 웨스트코트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은 부인했다.

    친애하는 호르트에게: 나는 당신의 글과 라이트푸트의 글을 보게 되어 기쁘고 또한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오. 왜냐하면 나 역시도 내 신념에 앞서 성경의 절대 무오류성을 먼저 확립해야만 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오.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은 배우면 배울수록 새로운 의심들이 나의 무식함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이고 나는 지금 절대적 진리보다는 어떤 임의적인 가정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소. 나는 성경 전체를 뒤덮고 있는 ‘성경의 무오류’란 단어를 부인하오.

    로마 카톨릭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드디어 영국 성공회에 속한 선한 감독 웨스트코트는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확신을 잃게 되었다.

    웨스트코트의 로마 카톨릭 성향은 결국 그로 하여금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의식’을 허락하게 만들었다. 영국 국교회 안에서도 이미 인정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런 의식에 대해 그는 1900년 8월에 한 성직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많은 학식과 경험을 가진 몇몇 다른 감독들과 의논했고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에 관하여 우리 교회가 취할 태도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공식 예배에서 교회 전체와는 별개로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금지해야만 한다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개인기도 때에는 그러한 제약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육체로 더럽혀진 옷을 미워해야 한다(유23). 웨스트코트 박사는 표범의 가죽만큼이나 천주교의 얼룩얼룩한 점으로 오염된 사람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그토록 충성했던 제롬과 비길 수 있는 신념을 지닌 이 사람이 과연 그리스어 본문을 공정하게 수정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로마 카톨릭 교회의 또 다른 교리는 마리아 숭배이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에 대한 웨스트코트의 감탄의 정도는 그의 아들 아더가 설명한 대로 심지어 자기 약혼녀의 이름을 마리아로 바꾸고자 한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내 어머니의 이름은 사라 루이사 윗타드(Sarah Louisa Whittard)로 세 자매 중 장녀였습니다. 어머니는 후에 아버지의 요구대로 견진성사 때 세례명으로 마리아라는 이름을 택했습니다.

    웨스트코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은 의심했지만 로마 카톨릭 제사장들이 그런 일을 행할 수 있음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프랑스에 있는 라살레떼의 우리의 마리아(Our Lady of La Salette)라는 성물 함에서 자기가 본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참고로 라살레떼는 마리아가 출현하여 기적을 베푼다고 천주교회가 주장하는 장소이다.

    글로는 이런 것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 아버지의 열렬한 에너지, 딸의 겸손한 감사,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구경꾼들의 빠른 눈초리, 사제의 만족감, 표정과 끄덕임의 이야기들이 19세기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믿음의 시대가 고대의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서 회복된 것이다. 우리는 굉장한 호의를 보여 준 젊은 신도에게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참여하게 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우리가 설명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믿음이 없이 어찌 이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장소의 중요성과 힘이 바로 여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웨스트코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영적인 것이며 천국은 마음의 상태라고 믿었고 죽은 자를 위한 기도도 개인 기도 시간에는 허용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리스도가 국제적 무장 해제를 통해 평화를 가져오리라고 믿었다. 그는 연옥을 믿었고 마리아를 숭배했으며 성경도 다른 책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사람이 영국개역성경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했으며 우리가 읽고 믿는 성경의 심판관으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킹제임스 성경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장을 지지하는 ‘개악된 그리스어 본문으로’ 그 부분을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 두 명의 케임브리지 학자들의 공통된 소망은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 즉 ‘보편적 그리스어 본문’의 권위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여러 학자들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으나 이들의 노력은 ‘보편적 본문’이 정말로 성경의 참 본문이며 자필 원본이 보존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런데 이 두 학자들은 로마 카톨릭주의에 의해 교묘히 영향을 받았으며 자기들의 의무가 이 순수한 프로테스탄트 본문 즉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본문을 던져 버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국지적 본문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눈에 드러나는 현저한 증거는 항상 하나님의 편으로 기울어 있다. 아무도, 심지어 로마 카톨릭 교회조차도, 현존하는 모든 사본의 99% 이상이 보편적 본문인 이유를 설명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따라서 인본주의자들의 ‘본문 비평’은 이러한 장애물이 극복될 때까지 정체된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본문을 살리기 위한 길을 터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호르트라는 천재였다. 이 사람은 다윈이 하나님의 창조라는 사실을 전복시키는 데 사용한 것과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보편적 본문의 권위를 뒤집어 버렸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학설’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의 학설은 다름이 아니고 자필 원본은 국지적 본문과 일치하는데 이 국지적 본문을 주후 4세기에 안디옥에 있던 시리아 교회가 마음대로 편집했고 그렇게 편집된 본문이 바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보편적 본문이며 그 이후에 교회의 공회가 이 본문을 사용하도록 사람들을 강요했다는 것이었다. 즉 이 말은 킹제임스 성경의 보편적 본문이 변개된 것이고 현대 역본들의 국지적 본문이 올바로 보존된 것임을 의미한다.

    다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상식과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사실과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이 그의 이론의 부당함을 입증하였다. 다윈과 마찬가지로 그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단편들을 모두 모아 뒤틀고 과장시켜 자신의 주장을 이론화시켰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그의 학설 역시 그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며 결코 역사적 사실이나 증거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하나님의 권위를 폐지할 길을 찾고 있었던 지식인들은 그의 학설을 압도적으로 받아들였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라는 사실에 분개한 과학자, 생물학자, 대학 교수들의 귀에 마치 달콤한 음악과도 같았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셨다. 그러므로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은 자연스레 사람의 육체 안에 적개심과 반항심 같은 것을 불러 일으켰다(롬7:18). 따라서 다윈이 세상에 그의 이론을 내놓았을 때 온 세상은 그 거짓말을 기꺼이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학자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도움 없이도 자기 자신의 말씀을 보존할 수 있으며 또 보존하실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분개해 왔다. 절망적인 과학자들처럼 그들도 역사의 증거나 사실이 킹제임스 성경의 편이라는 점을 마지못해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던 때에 웨스트코트 박사의 후원을 받은 호르트의 학설이 발표되자 그것은 곧 ‘본문 비평의 해방’으로 알려졌다.

    다윈의 학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호르트의 학설을 이용하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결론들은 결코 호르트의 지지자들을 위협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결론을 내리는 데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고대의 것 다시 말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참 성경이라는 생각을 없애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호르트의 이론과 다윈의 이론에는 또 다른 유사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이론들의 오류가 입증된 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것을 존경한다는 점이다. 다윈의 이론은 이미 오래 전에 역사적인 증거,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상식 등에 의해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끈질기게도 그것을 확실한 사실로 떠받들어 왔다. 그들은 다윈의 이론이 자기들을 진리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행한 것이 아니다. 오직 그들은 다윈의 이론이 자기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킹제임스 성경으로부터 -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 도망칠 수 있게 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한 것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배교의 모든 증거를 살펴볼 때 현대 학자들이 이 두 사람을 그렇게 숭배한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도 않았을 뿐더러 슬프게도 경험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을 지지하다니 정말로 슬픈 일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이 두 명의 신앙심 없는 사람들의 말로 인해 눈이 멀어 사실을 도외시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부흥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35장 2-3절에서 야곱이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말했던 것같이 크리스천 학자들이 ‘이방 신들을 내어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야만’ 그런 부흥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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