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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빌립보서 3장 20절의 ‘conversation’은 시민권입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97>조회수 : 1208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8시 43분 54초
  • 질문: 빌립보서 3장 20절의 ‘conversation’은 시민권입니까? 아니면 생활 방식입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97>

    대답: 이 문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장두만 박사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 번역의 문제라고 지적한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헬라어 원문 : ημων γαρ το πολιτευμα εν ουρανοις υπαρχει, 영어 KJV : For our conversation is in heaven, 말씀보존학회  한글 KJV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한글 개역판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단어는 ‘폴리튜마‘( πολιτευμα)이다. 이 단어는 ‘시민권‘ 또는 ‘시민권이 있는 장소‘란 의미인데 영어 KJV에서는 ‘회화‘(會話)라고 번역했다. 고어에서는 어떤 의미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회화‘는 현대 영어의 ‘시민권‘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영어 KJV를 번역했다는 한글 KJV에서는 ‘회화‘라고 번역하지 않고 ‘시민권‘이라고 번역했다. 아마 영어 KJV의 번역이 잘못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직역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한글 KJV는 영어 KJV의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번역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장 박사가 지적한 대로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지 않고 자의로 번역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를 어떻게 번역했습니까?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이제 ‘conversation’이 시민권인가 생활 영역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의 용례를 찾아봅시다. 이를 위해 성경 소프트웨어로 가서 빌립보서 3장 20절의 ‘conversation’을 찾아보면 스트롱 번호가 4175로 되어 있으며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 한 군데서만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4176 번호가 매겨진 단어에서 파생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Englishman's Concordance」로 가서 4176을 넣으면 신약 성경 전체에서 4176이 쓰인 구절이 두 군데 나옵니다: 행23:1; 빌1:27.

    바울이 공회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노라, 하거늘(흠정역 행23:1).

    And Paul, earnestly beholding the council, said, Men and brethren, I have lived in all good conscience before God until this day(KJV).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개역성경).

    Paul, looking intently at the Council, said, “Brethren, I have lived my life with a perfectly good conscience before God up to this day.”(NASV)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할지니(흠정역 빌1:27).

    Only let your conversation be as it becometh the gospel of Christ(KJV).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개역성경)

    Only conduct yourselves in a manner worthy of the gospel of Christ(NASV).

    이런 비교를 통해서 우리는 ‘conversation’이라는 단어가 ‘생활하다’, ‘살다’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 ‘생활 방식’, ‘행실’ 등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현대 역본들도 다 그렇게 번역했으며 따라서 빌립보서 3장 20절을 굳이 시민권으로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장 박사는 ‘conversation’의 현대 용례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그 지적은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conversation’의 용례를 보면 그것의 1차적 의미가 ‘생활’, ‘행실’(action of living)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오역을 했다는 비난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스 성경을 보는 사람들도 그 당시 뜻을 알려면 당연히 그 당시 뜻을 담은 사전을 보아야지 현대 사전을 보면 안 되지 않습니까? 킹제임스 성경은 성경의 용례와 원어의 용례대로 ‘생활권‘(生活圈)이라고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오래된 단어를 쓸 이유가 뭐냐고 반박할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영국/미국에서는 킹제임스 성경과 동시대에 나온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자주 무대에서 공연됩니다. 그런데 배우들은 1600년도의 영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거기 나오는 대사를 현대어로 바꾼 것은 더 이상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닙니다. 일개 연극 대사도 1600년도 대사를 그대로 쓰고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담은 성경을 마음대로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또한 한국어와는 달리 영어는 지난 4세기 동안 뜻이 변한 단어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특히 성경에는 몇 단어 나오지 않습니다. 좋은 단어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뜻이 부패한 것도 하나님이 감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한편 개역성경은 행23:1에서 ‘생활했다‘ 혹은 ‘살아왔다‘(lived)는 단어를 삭제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입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진리이며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거짓이 없이 일관성을 유지하며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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