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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킹제임스 성경의 이탤릭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11>조회수 : 9998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1일 11시 30분 38초
  • 질문: 저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탤릭체로 기록된 부분이 역자들에 의해 첨가된 것이므로 삭제되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들을 정말로 삭제해야만 합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11>

    대답: 우리가 만일 킹제임스 성경의 이탤릭체 부분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삭제해야 한다면 그것들 모두를 삭제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 모두를 성경기록으로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이탤릭체들을 삭제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1. 어떤 글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 언어의 문장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 단어들을 보충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모든 번역자들이 성경을 번역하면서 이러한 일을 했습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정직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자기들이 보충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보기 #1 :

    킹제임스 성경의 시23:1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있는 ‘is’ 는 역자들이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보충한 것입니다.

    신국제역(NIV)의 시23:1도 “주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양 쪽 번역자들이 똑같이 문장을 완성하려고 같은 단어를 보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이 보충되었음을 알려 주기 위해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보기 #2 :

    킹제임스 성경의 요1:8은 “그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자더라”(He was not that Light, but was sent to bear witness of that Light.)로 되어 있습니다.

    뉴킹제임스역(NKJV)의 요1:8도 “그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받은 자더라”(He was not that Light, but was sent to bear witness of that Light.)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양 역본의 번역자들은 뜻을 통하게 하기 위해 자기들의 번역에  ‘was sent’라는 구를 보충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그 보충 부분을 명시해서 이탤릭체로 기록한 쪽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현대의 ‘자칭’ 학자라 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는 속임수 혹은 부정직함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자기들이 보충한 부분을 이탤릭체로 넣은 정직성과 도덕성으로 인해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2. 성경 비평 학자들은 - 근본주의자든 그렇지 않든 간에 - 이탤릭체 로 쓰인 부분을 제거할 수 있으나 다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대개 그들은 고린도전서 14장에 있는 ‘unknown’(알지 못하는) 같은 단어가 있는 구절을 보면 난처해합니다. 그들은 이런 구절의 이탤릭체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위와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 문제의 단어를 제거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 이탤릭체 단어가 본문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단지 그 이탤릭체 단어만을 성경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탤릭체 단어 모두를 성경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이탤릭체 단어가 모두 삭제된다면 뜻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탤릭체는 삭제하고 다른 것들은 그대로 두는 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감’(Divine inspiration) 즉 어떤 단어들은 없애고 어떤 단어들은 남겨야만 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하나님의 영감’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자나 영혼 구령자 혹은 학자라 할지라도 자기가 성경에서 어떤 단어들을 거부해야 하고 또 어떤 단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하나님의 거룩한 영감’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보고 자기들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너무나 어리석어서 그런 방식으로 한 사람의 의견을 숭배해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숭배해야 하지요?

    사실 이 시간에도 ‘거룩하게 영감을 받아 공인 성경 교정자’(Official Divinely Inspired Bible Corrector)가 되려고 수백 명의 성경 비평 학자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행운의 사람이 될까요? 우리는 그를 어떻게 뽑아야 할까요?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들이 그의 선언에 한 마디 불평 없이 따를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쨌든 그의 선언이 없다면 어떤 이탤릭체들이 성경에 속하고 또 어떤 것들이 빠져야 하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문제되는 구절들을 극복하기 위해 골칫덩이 단어들을 조심성 없이 제거해 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기도하며 성경 읽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3. 사무엘기하 21장 19절은 이탤릭체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할 필요성을 옹호해 주는 전형적인 예들 중에 하나입니다.

    다시 곱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움이 있더니 거기서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동생을 죽였는데 그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And there was again a battle in Gob with the Philistines, where Elhanan the son of Jaare-oregim, a Beth-lehemite, slew the brother of Goliath the Gittite, the staff of whose spear was like a weaver's beam.

    여기에서 만일 이탤릭체인 ‘the brother’를 생략해 버린다면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인 것이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사무엘기상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탤릭체를 제거함으로써 타락한 모든 사람들이 으쓱대며 “성경에 모순이 있다.”고 즐겨 말하게 될 그런 성경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영감을 받은 성경 교정자’는 아마 삼하21:19의 이탤릭체는 삭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어떤 단어를 삭제하고 또 어떤 단어를 보존해야 하는지 도대체 누가 안단 말입니까?

    4.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경을 보존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단어들을 손대지 말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도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먼저 성경 -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지요 - 을 집어 시16:8을 읽어 보십시오.

    내가 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moved.

    아마도 여기에서 여러분은 “그분께서 계시다.”(he is)라는 두 낱말이 이탤릭체라는 사실을 금방 보셨을 것입니다. 자,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신약 성경 사도행전 2장 25절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것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For David speaketh concerning him, I foresaw the Lord always before my face, for he is on my right hand, that I should not be moved:

    여기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시16:8에 나오는 이탤릭 부분과 나머지 부분 전체를 다 인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즉 시16:6의 이탤릭체 ‘he is’가 행2:25에서는 이탤릭체가 아닌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탤릭체를 그대로 두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이들은 베드로는 신학 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학문 없고 무식한 사람(행4:13)이었기에 맹목적으로 성경(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받아들였다고 지적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도 우리는 똑 같은 현상을 발견합니다.

    신약 성경의 또 다른 저자였던 바울은 종종 자기의 글 속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다른 이들이 직접 히브리어 본문에서 인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인용 구절들 중에 몇몇은 히브리어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20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서 65장 1절을 인용합니다.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이르기를,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였나니 내게 묻지 아니하던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하되

    But Esaias is very bold, and saith, I was found of them that sought me not; I was made manifest unto them that asked not after me.

    한편 이사야서 65장 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찾아내었고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였나니…

    I am sought of them that asked not for me; I am found of them that sought me not:…

    바울이 이사야서 65장 1절에 있는 것처럼 인용했던 ‘자들에게’(them that)라는 단어는 킹제임스 성경에서만 이탤릭체로 존재합니다.

    ‘are’ 라는 단어를 번역자들이 보충한 시편 94편 11절 말씀을 인용한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3장 20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는 사람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시94:11).

    The LORD knoweth the thoughts of man, that they are vanity.

    또 다시, 주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전3:20).

    And again, The Lord knoweth the thoughts of the wise, that they are vanity.

    그런데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9절에서 신명기 25장 4절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기록되었나니 하나님께서 소들을 위해 염려하시느냐?(고전9:9).

    For it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Thou shalt not muzzle the mouth of the ox that treadeth out the corn. Doth God take care of oxen?

    너는 소가 곡식을 밟을 때에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신25:4).

    Thou shalt not muzzle the ox when he treadeth out the corn.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단지 흠정역 성경에서만 이탤릭체로 발견되는 ‘the corn’이란 단어를 마치 히브리어 원문에 있었던 것같이 인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히브리어 원문을 번역한 것이라 추정되는 가상적인 「70인역」을 인용했다고 감히 누가 주장한다면 우리의 딜레마는 더 커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난감하게 만드는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만일 그런 그리스어 역본이 존재했다면(역사 문헌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 도대체 어떤 권위로 번역자들이 이 단어들을 삽입할 수 있었단 말인가?

    둘째, 만약 그것들이 번역자들에 의해 첨가된 것이라면 바울의 인용 자체가 그것들이 영감된 것임을 확증해 준단 말인가?

    여러분이 이런 중요한 문제를 놓고 심사숙고하시는 동안 저는 예수님께서도 킹제임스 성경으로 보이는 성경으로부터 구약을 인용하셨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자필 원본에 들어 있지 않은 단어를 인용하셨음을 보게 되는데 사실 그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이탤릭체에서만 발견되는 단어입니다. 다음의 신명기 8장 3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And he humbled thee, and suffered thee to hunger, and fed thee with manna, which thou knewest not, neither did thy fathers know; that he might make thee know that man doth not live by bread only,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doth man live.

    여러분은 이탤릭체로 된 ‘word’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원문에 있지 않다는 데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 신명기 8장 3절을 검토해 보아도 ‘wor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dabar’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탄과 싸우실 때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인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이탤릭체로 표시한 단어를 포함한 구절 전체를 인용하고 계십니다! 아멘! 어떤 아마추어 학자라도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서 ‘word’에 해당되는 그리스어 단어 ‘rama’의 한 형태인 ‘ramati’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비평 학자들이 “글쎄 킹제임스 성경을 사도 바울이 인정한다면 나도 인정하지요.”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것처럼, 진정한 성경신자라면 “물론이지요. 킹제임스 성경을 사도 베드로와 바울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신 이상 저도 당연히 인정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성경의 이탤릭체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그것들 모두를 삭제해라.

    (2) 근본주의 성경 비평가들 중 한 명을 ‘하나님의 거룩한 영감을 받은 공인 성경 교정자’로 임명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야 할 충성과 사랑과 헌신을 다 그에게 주어라.

    (3) 우리의 거룩하게 영감 받은 성경에만 있는 모든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틀림없이 정확하실 것이라고 신뢰하라.

    이제 우리는 이 셋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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