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질문: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어를 영어로 옮긴 일개 역본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옮긴 것이 원래의 것만큼이나 좋다고 할 수 있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30> 대답: 옮긴 것이 원래의 것만큼 좋을뿐더러 훨씬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옮김’(translations)에 관해 세 가지 사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세 경우 모두 옮긴 것이 원래의 것보다 개선되었습니다. 성경이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의 최종 권위이므로 우리는 단순히 ‘사람’의 어떤 의견보다 성경의 ‘관행’을 상위 권위로 인정해야 합니다. 1. 첫 번째 ‘옮김’(translation)은 삼하3:7-10에서 발견됩니다. 사울에게 첩이 있었더니 그녀의 이름은 아이야의 딸 리스바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에게로 들어갔느냐? 하니 그때에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로 인해 심히 노하여 이르되, 내가 개의 머리냐? 내가 유다를 대적하고 이 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당신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 대한 허물로 나를 비난하는도다. 주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그에게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넬에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니 그 맹세는 곧 왕국을 사울의 집에서부터 옮기고 - To translate the kingdom -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다윗의 왕좌를 세우는 것이라, 하매 사무엘기상 31장을 보면 사울이 죽은 후 사울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 다윗 대신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삼하2:8-9). 그런데 이스보셋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아브넬은 심히 노하여 이스라엘이 이스보셋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질 것’(translate)에 대해 말합니다.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열 두 지파 모두를 다스리게 하시려는 주님의 의도는 사무엘하 3장 9절에 나오는 아브넬의 말을 볼 때 아주 명백합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다윗에게로 ‘옮겨진 것’(translation)은 한 민족이 두 왕국으로 나뉘어서 한 쪽은 다윗이 바르게 통치하고 다른 한 쪽은 이스보셋이 바르지 않게 통치하던 ‘원래 상태’보다 더 나아졌습니다(첫 번째 언급의 법칙을 기억하십시오). 2. 두 번째 ‘옮김’(translation)은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발견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 - hath translated us. 여기서의 ‘옮김’(translation)은 잃어버린바 되었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 안으로 전환된 것을 말합니다. 편견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보게 되면 누구라도 이러한 ‘옮김’(translation)이 ‘원래 상태’보다 엄청나게 향상된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세 번째 ‘옮김’(translation)은 히브리서 11장 5절에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Enoch was translated -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 God had translated - 그들이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before his translation -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 ‘translate’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단지 다섯 번 쓰였습니다. 사무엘기하에 한 번, 골로새서에 한 번, 여기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나머지 세 번이 나옵니다. 아무리 성경 지식이 부족한 크리스천이라도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에녹은 대언자요,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음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으므로 에녹은 육신을 입고 죽지 않은 채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이러한 에녹 개인의 경험은 고린도전서 15장, 데살로니가전서 4장, 디도서 2장과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이는 소위 크리스천들이 ‘휴거’(Rapture)라고 말하는 것의 축소판입니다. 성경은 ‘휴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미래 현상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대로 즉 디도서의 ‘복스러운 소망’(Blessed hope) 혹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끌어올림’(Catching up) 혹은 히브리서의 ‘옮기는 것’(Translation) 등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옮기신 일(Translation)이 ‘원래 상태’보다 향상된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우리의 최종 권위가 되는 성경이 언급하는 모든 ‘옮김’(translation)이 원래의 것보다 향상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순수하게 성경을 믿는다면 이것을 받아들이는 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지만, 만일 여러분이 학문에 최고 가치를 두거나 혹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동의할 수 없었던 성경의 사실들을 다 거부했던 것처럼 성경의 이 사실 또한 거부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미국표준역(NASV)과 신국제역(NIV) 번역자들이 자신들의 선입견으로 인해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을 때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위에서 언급한 그 어느 구절에서도 ‘옮기다’(translation)란 단어를 쓸 수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야겠습니다. 즉 그들은 ‘translation’이란 단어를 빼고 대신 다른 단어를 썼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느 쪽을 따르시렵니까? 성경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말입니까? (*) 독자들은 여기서 저자의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저자는 성경에서 translate라는 단어의 용례를 보여 주면서 그것이 이전보다 좋은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의 translate는 성경 번역의 trabslate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였습니다.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완전하다고 믿으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원어들)이 바르게 영어로 번역되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그 안에 보존되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영어가 원어를 대체한다거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교정한다(correct)는 주장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영감을 받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근원적으로 볼 때 영감은 오직 원어에만 주어졌으며 원어의 단어들은 완벽하므로 그것들을 교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로 주신 성경을 올바르게 가감하지 않고 번역하여 원어 이후의 사람들이 최종 권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역본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오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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