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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8장: 본문 문제 2, 마가복음 1장 2절조회수 : 1141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1일 17시 15분 50초
  • 마가복음 1장 2절

    As it is written in the prophets, Behold, I send my messenger before thy face, which shall prepare thy way before thee(영어 킹제임스 성경).

    대언자들의 글에(in the prophets)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킹제임스 흠정역).

    전통 본문은 여기에서 “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바”라고 기록하고 바로 그 다음에 말라기 3장 1절과 이사야서 40장 3절을 인용한다. 한편 다른 본문은 말라기와 이사야서를 인용하기 전에 “선지자(대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된 바”라고 기록한다. 여기서도 전통 본문의 구절은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 전통 본문의 구절은 많은 그리스어 엉셜 사본(A, K, P, W, Π), 대다수의 그리스어 소문자 사본(28, 1009, 1010, 1079, 1195, 1216, 1230, 1242, 1252, 1344, 1365, 1546, 1646, 2148) 그리고 대다수의 그리스어 성구집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4세기 이전의 그리스어 사본들이 이 구절을 지지한다. 게다가 우리는 또한 시리아의 하클레안 역본(주후 616년)과 아르메니아 역본(주후 4세기/5세기) 그리고 6세기의 이디오피아 역본에서도 동일한 구절을 발견한다. 전통 본문의 구절은 또한 이레네우스의 라틴 기록(주후 202년)과 포티우스(주후 895년) 그리고 테오필랙트(주후 1077년) 같은 많은 교부들의 글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문맥적으로 볼 때 비평 본문에서 발견된 구절에는 문제가 있다. 그 구절은 분명히 대언자 말라기(3:1)와 대언자 이사야(40:3) 모두를 인용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선지자(대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된 바”라고 기록한 것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사야가 큰 대언자였으므로 그가 말라기에 비교해서 우위를 차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을 예증하기 위해 학자들은 종종 마태복음 27장 9절에 주의를 돌리게 한다. 그들은 이 구절이 실제로 예레미야서에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스가랴서 11장 12절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큰 대언자이므로 스가랴에 비교해서 우위를 갖는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 점은 쉽게 논박될 수 있다. 마태복음 27장 9절은 마가복음처럼 “기록된바”(As it is written)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마태복음의 본문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었다.”고 진술한다. 성경 기록의 저자인 하나님은 누가 무엇을 기록하고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알고 계신다. 간단히 말해 스가랴가 그 구절을 기록했다는 것은 결코 예레미야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스가랴는 이전의 대언자들이 말한 것에 주목하라고 이스라엘에 경고했다(슥7:7). 고대 유대인들은 “예레미야의 영이 스가랴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스가랴가 받았던 많은 것은 실제로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또 스가랴 이전의 대언자인 예레미야로부터 받은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가능한 실수로 인지된 것이 실제로는 추측에서 나왔음을 수정하기 위해 어떤 필사자가 마가복음 1장 2절에서 ‘대언자 이사야’ 대신 ‘대언자들’이라고 변경해서 그 뒤의 두 개의 인용 구절과 일치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자 주: 이 경우 그들은 최초의 영감 받은 원본에 실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량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고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편에 속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구약성경 대언자들에 대해 매우 친근하지 않은 이집트의 어떤 필사자가 거기에 나오는 이사야서의 인용 구절을 보고는 자기 생각에 더 명료한 구절이 되도록 그런 변화를 일으켰다고 쉽게 제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각자의 입장에 대해 본문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또한 우리는 킬패트릭이 언급한 것처럼 이런 본문 이문들의 대부분의 유형이 2세기 전에 사본들 안에 도입되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본문은 다른 본문과 본문 면에서 볼 때 거의 같다. 다만 차이점은 문맥적인 것이다. 두 명의 대언자를 인용할 때는 ‘대언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따라서 전통 본문의 구절은 문자적으로 합당하며 문맥적으로도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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