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우리말 성경 번역의 어려움 1 요즘 몇 사람이 성경 번역의 문제들을 지적해서 이것저것 다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번역 문제를 오픈해서 지적한 사항들이 사실이면 다음 번 인쇄 때에 교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1611년 영어 성경처럼 왜 단번에 고정된 우리말 역본이 나오지 않느냐고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영어 성경도 1380년경의 위클리프 성경부터 시작해서 1611년 킹제임스 성경까지 무려 230년 동안의 번역/재번역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되었습니다. 번역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말 개역성경이 수십차례 교정되었다는 증언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앞으로 혹시 교정할 곳이 발견되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엄청나게 큰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이따위로 성경을 번역하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정말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15년을 이 일을 했는데 이런 질책을 통해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같이 몰아붙이면 어떤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분이 지적한 것은 여호수아기 1장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너무 유명해서 여러분과 내가 잘 아는 것입니다. 1. 그분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책무를 주시며 이르시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을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데려가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하시니라. 2. 네 평생 동안 능히 아무도 네 앞에 서지 못하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하던 것 같이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이 백성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네가 그들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주리라. 3.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매우 담대히 하여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것을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이분의 요지는 왜 마음을이라는 단어를 내 마음대로 첨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켰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 표현대로라면 울화통이 터지고 짜증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영어로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번역하겠습니까? 한 번 해 보십시오. 이분의 주장은 '강하고 담대하라'로 간결하게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말씀에 첨가를 해서 성경을 훼손시켰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고 야단입니다. 얼핏 들으면 참으로 지당한 말이라 너무 큰 죄를 져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됩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국립국어 연구원에 e-mail을 보내어 상담을 합니다. 2006년도에 성경을 낼 때까지 수백번 이상 이렇게 상담을 해서 우리말 용례를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가 생기면 그 이후에도 수백번 이상 물어 보았습니다. 질문을 보낸 뒤 다른 성경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말씀보존학회에서 나온 킹제임스 성경과 이번에 새로 나온 개역개정판이 그분의 지적대로 '강하고 담대하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것들을 참조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답이 왔습니다. 담대하다’는 형용사이므로 명령형 어미와 결합하여 활용하지 않으며, ‘하다’나 '하다'가 붙는 동사 어간 뒤에 붙는 직접 명령의 어미 형태는 ‘-라’가 아니라 ‘-여라’ 입니다. 따라서 문의하신 문장 1, 2에는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여라.’ 또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라.’와 같이 쓰고, 3에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매우 담대히 하여’와 같이 써야 합니다. 즉 결론은 강하다, 담대하다는 형용사이므로 '강하고 담대하라'로는 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말 답게 표현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지금처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나 '강한 자가 되고 담대한 자가 되라'로 해야 합니다. 이 경우 둘 다 무언가를 첨가해야만 합니다. 전자에는 '마음을'이 후자에는 '자가'가 2번 첨가되어야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읽기에 전자가 훨씬 부드러우면서 우리말답지요. 다만 '마음을'이 원래 없었기에 그것을 이탤릭 처리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개역성경도 동일합니다. 다만 거기서는 '마음을'이 이탤릭 처리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들은 그것이 원래 있는 줄로 알 뿐입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엉터리 번역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것을 일일이 이야기할 수 없어서 오늘은 제 심경을 간단히 밝힙니다. 다시 한 번 부탁합니다. 틀린 데가 있다고 생각되면 통보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협조가 성경을 고정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읽어 봐야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보낼 때 인격적인 글로 보내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