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KJB문서

  • 킹제임스성경
  • KJB문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성서침례교회들과 성경에 관하여조회수 : 1451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1일 17시 43분 58초
  • 성서침례교회들과 성경에 관하여

    - 미국 뉴저지 중앙침례교회 이황로 목사  

    성서침례교회들과 성경에 관하여 몇 자 적고자 합니다.

    우리가 적어도 성서침례교회라는 이름을 사랑한다면 무엇이 "성서"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해석도 나올 것이고 적용도 나올 것이고 선포와 전도도 나올 것입니다. 원문비평학이란 학부보다도 대학원에서 신구약총론에서 조금 다루어지는 것으로 대개의 목회자들은 그냥 지나갈 정도이며 특히 "말씀의 보존(Preservation)"에 관한 것은 웬만한 조직신학 책에서도 별로 많이 깊게 다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비평학에 관하여는 대개 유명 박사들이나 교수들이 말한 것을 거의 수용하는 편이지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되기에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

    개역 성경에서 세 명이 구원받는 놀랍고 아름다운 사례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타이틀이 훼손되어 있거나 삭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번역 문제가 아니라 사본의 문제이다. 눅23:42의 강도의 구원(주여 삭제), 행8:37의 내시의 구원(신앙고백하는 전체 절이 삭제), 행16:31의 빌립보 간수의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가 삭제) 등에서 보듯이 이런 경솔하고 불경한 삭제를 해도 된다는 말인가? 성서침례교회 사람들이 구령상담을 그렇게 잘한다고 하면서 롬10:9, 13을 잘 외우고 있다. 예수님을 주(=하나님)로 믿어 시인하는 것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물론 반대자들은 원래는 없었는데 누군가가 필사를 하면서 추가했다고 할 것이다.

    결국 TR과 비TR과 우리는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신약에서 이렇게 삭제된 양을 계산해보면 7%에 육박하는데도(4500곳 이상 변개/삭제) either A or B(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7%의 양이면 요한계시록과 비슷하다. 나의 질문은 이렇다. 킹제임스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라고 묻지 말고 우선 신약만을 두고 말할 때 요한계시록이 빠져도 신약전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요3:16, 로마서의 길 말씀, 옥중서신들, 혹은 목회서신들이 빠져도 신약전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조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평범한 목회자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이용하여 말씀보존학회 사람들이 성서침례교회들 목회자들을 혼잡스럽게 할 수 있지만 (일부 혹은 상당수 오류 내지는 극단적인 주장을 실제로 하고 있다), 동시에 (신)복음주의자들과 소위 일부 근본주의자들도 자유주의자들의 견해와 학설을 받아들여 친교회 목회자들을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을 내어서 연구하여 보면 그렇게 어려운 주제만은 아니다.

    결국 자유주의자들, 신정통주의자들(바르트)들의 주장은 축자 영감을 부인하며 이 문제를 접근하기 때문에 1) 가장 오래된 사본이 원본에 가깝다, 2) 짧은 원문이 원본에 가깝다는 주장으로 자연적인 결론을 내린다. 초자연적인 접근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본을 오류 없이 성경기자들에게 주셨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주장은 차라리 진화론적인 접근이요, 누군가 초기에라도 성경을 변개하였다면 그렇게 변개 되고 삭제된 필사본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축자 영감은 적어도 축자 보존을 논리적으로 요구하며, 축자 보존은 축자 번역을 요구한다. 설령 보존과 번역에 있어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정확한 보존과 정확한 번역을 요구한다. 그러한 반면에 개념영감(Dynamic Inspiration)은 개념보존, 개념번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성서침례교회 목회자들과 신학교수들, 신학생들 중에 개념영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이단학설. 잘 모르면 조직신학 책을 참조). 믿는다면 그는 근본주의자도, 복음주의자도 아니고 마태4:4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말씀(every word)"과 딤후3:16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개역 이 구절의 "감동"이란 말은 중대한 오역이다. 벧후1:21에는 기자가 "감동"을 받았고, 딤후에서는 기록이 오류 없이 "영감"을 받았다). 어쨌든 역동적 일치의 번역 기법은 축자 영감을 믿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모순과 위선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개념이 영감을 받지 않았기에 개념이 보존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개념(Dynamic Equivalency)이 번역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다른 문화권과 언어권에서 제한된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은 하나님도 아시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다. 지상명령(마28:19-20)에서 우리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구령과 더불어서 성경번역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예수님께서 각 언어와 문화를 모르시고 그 명령을 주지 않으셨다.

    또 하나 역동적 일치로 번역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축자 영감을 믿는다면 문자적 해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에서 문자적 해석을 매우 강조한다. 문법적-역사적 해석, 수사법적 해석, 성경자체의 해석을 세 가지 중요원리로 삼고 이것을 일관성 있게 사용한다. 역동적일치 기법은 영유니 상징이니 하면서 단어가 주는 액면상의 뜻을 배제한다. 이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축자 영감을 믿는다면 문자적 영감, 문자적 보존, 문자적 번역, 문자적 해석이라는 일관성 있는 입장이 된다. 반면에 개념적(=역동적)영감은, 역동적 보존, 역동적 번역, 역동적 해석으로 귀착된다. 한번 심사숙고 해볼 일이다. 복음주의자들의 고민과 모순은 영감에서 있어서는 축자 영감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번역에 있어서는 역동적(=개념적) 일치를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능한 한 문자적 번역을 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이 바로 그렇다. Textus Receptus(=Received Text)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과 예수님이시다. 요17:8을 묵상 해 보라. 이 말씀이 계속 사도행전에 반복된다. (이 정도만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성서침례친교회들은 도대체 무슨 성경을 쓰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에도 한글 개역에 해당하는 NASV/NIV가 존재하는데 주일날 예배 때 설교 때 어떤 성경을 쓰는가? 미국 친교회 안에서도 이 문제가 계속 대두되고 있고 많은 독립침례교회들도 이슈가 되고 있다. 목회자 서재에서는 여러 번역본들과 히브리/헬라어 성경을 보겠지만 강단에서 어떤 성경을 쓰고 있나? 진실로 킹제임스 성경이 자유주의자들과 신정통주의자들, 상당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생각하고 믿고 주장하는 대로 열등하고, 원본과 원문에서 변개 된 것이라면 그들은 강단에서 위선을 떨고 있는 셈이다. 미국 친교회의 소수의 목회자들이 자신의 양심과 정직을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이 열등하다고 믿는 나머지 다른 성경을 최고로 정확하게 번역된 성경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서침례교회 교회 목사라는 말이 무섭다. 무엇이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친교회 교회들 중 어떤 교회들은 교회 이름에서 "침례"라는 말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2년 전에는 전에 빅 박사님께서 시무 하시던 교회도 템플 침례교회에서 노쓰릿지 교회로 개명했다. 어쩌면 그 교회가 변질되면서 솔직하게 안팎을 투명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서침례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도 "성서"와 "침례"라는 말을 삭제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무엇이 성경인지도 모르고,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침례라는 말도 빼는 것이 좋을 것이니까...... 세상은 십자가, 보혈, 천국, 지옥이라는 말도 싫어한다..........).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쉽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1) 가장 정확하고 탁월한 보존된 사본을 원문으로 채택됨

    2) 당시 가장 건전한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번역자로 채택됨

    3) 지금까지도 가장 탁월한 히브리/헬라어를 잘 아는 번역자들이 채택됨

    4) 가능한 한 최대로 역동적 일치가 아니라 문자적 일치 기법으로 번역

    우리 친교회 목사님들이 우선 연구를 많이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통치 않은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제언

    한국 친교회가 침례교회로서의 근본주의를 버리고 점점 (신)복음주의로 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 없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슈들 중의 하나는 성경문제입니다. 우리는 오래 동안 한글 개역 성경을 사용하여 왔었고, 그 성경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현저한 차이가 있었지만, 친교회 교회들 목사님들은 그래도 킹제임스 성경이 더 좋다는 정도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실상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나도 처음에 1981년에 이 문제를 만났을 때, 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단지 개역 성경에서 다소 미흡하거나 틀린 부분 또는 빠진 구절이나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들어가면 갈수록 그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개역이 아닌 다른 성경이 반드시 나와야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상적인 연구조사로는 개역성경을 계속 사용하고 복을 누리며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도 NASV/NIV를 쓰면서 큰 교회 목회하고, 훌륭한 사역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자유주의 노선으로 가는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논조로만 본다면 굳이 성서침례교회를 목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셨고 우리에게 보존해주셨는가? 그리고 우리가 그런 성경을 현재 가지고 있으며 사용하고 있는가? 그런 칼을 주셨는가? 아니면 장난감 칼을 가지고 마귀에게 휘두르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시간과 노력이 매우 요구되고 머리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조금씩 접근해 가면 좋은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킹제임스 성경 문제를 접근할 때, 허수아비를 치면 안 됩니다. 지금 미국에도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러 입장들이 있고 보편적인 입장, 극단적인 입장, 이단적인 입장 등이 있습니다. 침례교회 역사를 공부할 때도 아나 뱁티스트 중에는 성경적인 재 침례교도, 극단적인 재 침례교도, 이단적인 재 침례교도 등이 있기 때문에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구분이 없이는 쓸 데 없는 시간 낭비만 합니다. 성서침례교회들이나 독립침례교회들은 성경적인 재 침례교도들에 그 역사적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결국 초대교회까지 교리적인 추적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침례교회의 기원에 대하여도 여러 견해가 있는데, 성서침례대학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음).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 종류만 있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친교회 안에도 적지 않습니다.

    저명한 신학자들도 허수아비를 치는 오류를 종종 봅니다. 1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주재권 구원”을 가지고 달라스신학교 라이리 박사와 그레이스 코뮤니티교회의 죤 맥아더 사이에 복잡한 말들이 오갔습니다. 라이리 박사는 신학적 입장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는 성경적인 입장을 주장했고, 맥아더 목사는 목회자적 입장에서 볼 때,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믿는 사람들이 다 구원 받았는가?라는 입장에서 각각 출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주장하지 않는 말을 가지고 공격하고 피가 터지는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주장할 때 신학적 용어의 “정의: definition"을 (조금) 다르게 내리고 말을 하니 결국 서로 허수아비만 치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대방이 결코 주장한 적이 없는 내용을 가지고 공격을 한다는 말입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라이리 박사의 성경적 입장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맥아더 목사는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틀렸지만 그의 주장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킹제임스 성경 논쟁에서도 찬반 입장이 그러한 허수아비 때리기에 휘말려 있는 것을 목격할 수가 있습니다. 신학 접근과 논쟁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기에 본인이 주장하는 그 단어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서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친교회의 목사님들 중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플로리다의 피터 럭크맨이나 한국의 이송오 박사와 같은 사람들만 있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오해이며 무정보 탓입니다. 나는 목사님들의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도 킹제임스 성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위에서 말한 대로 보편적이고 성경적인 입장, 극단적 입장, 이단적인 입장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도매금으로 물건을 넘기는 식으로 처리하여 이단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 몰아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도 계속 연구를 하면서 입장들이 정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킹제임스 성경에 대하여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우선 절대화해서 말을 하면 안됩니다. 어떤 분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쓰면 럭크맨파, 이송오 말보회라고 함부로 말합니다.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책이나 자료들을 보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각자 활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피터 럭크맨이 저술한 책의 내용 중에는 어떤 유명한 신학자나 목회자가 말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용들이 엄청나게 들어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틀렸다고 믿는 것들이 있지만 성경론만 보더라도 어떤 조직 신학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탁월한 내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말씀보존학회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그런 서적들을 번역하기 때문에 그 학회에서 나온 책들을 모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안됩니다. 아쉬운 것은 현재 킹제임스 성경을 변호하는 책과 자료들은 80% 이상이 그 학회에서 번역했기 때문에 친교회 목사님들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 사람들의 독점이나 전매가 아닙니다. 하지만 보편적이고 성경적인 입장에서 씌여진 좋은 책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다만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이나 미국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강하게 지지하고 심지어 그 성경만이 보존된 성경이고 가장 정확하게 번역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럭크맨 파 사람이라고 밀어붙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성경론”을 다시 읽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킹제임스 성경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영감(Inspiration)"에 대한 정의를 전통적인 의미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조직신학은 원래 귀납법적인 방법으로 성경과 이성(논리)를 가지고 세워져 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조심해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신학이 “조직화”되면 그 체제가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침례교 신학교 개신교 신학이 다를 때가 있음을 보여 주는 이유입니다. 보수적인 개신교 신학과 성경적인 침례교 신학은 “교회론”과 “종말론”이 다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허수아비 치기를 여기서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독립침례교회들의 현황은 어떠한가?

    나도 성서침례교회(행당동)에서 구원받고 자랐고 헌신, 결혼, 안수까지 받은 사람으로서 그 영적인 자산과 경험들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국제성서침례친교회가 대다수가 아님을 한국 목사님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넓게 근본적인 독립침례교회라고 보통 말하며 그 중에 BBFI가 있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친교권의 교회들, 신학교들이 있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미국의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해왔습니다. 신학부에서는 물론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해왔는데, 신학대학원 과정에서는 헬라어 원문 선택에 있어서는 NASV/NIV의 원문인 소수사본을 채택한 것이 사실입니다. 모순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구령과 선교와 교회를 세우는데 열심이었기에 별로 사람들이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서침례대학(미주리 스프링필드)은 처음에 3년 과정이었고, 후에야 대학원과정이 개설되었습니다. 다른 신학원과 마찬가지로 대학원 과정에서 모순되게 킹제임스 성경 원문(히/헬)이 아닌 다른 원문(히/헬)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밥죤스 대학(원)이나 다른 신학교에서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미국 근본주의 침례교회 목사들은 자신이 설교하고 가르치기 위해 들고 있는 성경이 “완전한” 성경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신학교육을 조금 더 받은 목회자들은 그렇게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피터 럭크맨과 D.A. Waite(웨이트) 같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럭크맨에 관한 경력과 결혼에 대하여는 조금 알려진 편인데, 웨이트 박사는 달라스 신학원에서 졸업할 때 수석으로 졸업한 분(ThD)이고 퍼듀(Purdue) 대학교에서도 PhD(Greek)를 딴 대단한 학자입니다. (www.biblefortoday.org) 이런 사람들이 연구한 것을 말할 때 유식한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어쨌든 웨이트 박사는 보편적이고 성경적인 입장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1984년에는 인디애나 해몬드의 제일침례교회 잭 하일스 목사님이 이 문제에 접근하고 변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학생을 크게 나무란 적이 있습니다. 그 후 1995년도 후반에 플로리다의 펜사콜라 대학(www.pcci.edu)(공교롭게도 피터 럭크맨과 같은 도시)의 총장 호르튼 박사가 이 문제를 오래 동안 연구하다가 프로 킹제임스 성경 입장으로 굳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BBFI에서도 문제가 되어 결국 몇 년 전에는, 친교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샘 데이비슨 박사가 주장이 되어 하트랜드침례신학대학이 세워지게 됩니다(400명 정도). (한국 친교회 교회들은 더 하지만 현재 미국 BBFI도 남침례교회 목사, 초교파 목사를 친교회 강사로 세우느니, 못하느니 하고 있음. 점점 개방적으로 가고 있음). 미주리의 BBC가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독립침례교회들 목회자들이 학생들을 보낼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학교가 킹제임스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나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모두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했지만 전에는 숫자적으로 소수만이 킹제임스 성경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지금은 과반수를 넘는 학교와 학생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강력하게 믿는 학교로 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밥죤스 대학교(철저히 침례교적이지는 않음), 테네시템플 대학교 같은 학교들은 학생 수 감소에 대하여 위기를 느끼고 나름대로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하일즈앤더슨 대학,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만 보더라도 각각 3000명, 5000명이나 되는 학생 수가 있으니 밥죤스 5000명, 테네시템플 1200명... 위축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진리가 수에 좌우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적어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간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지금 이 학교와 학생들은 피터 럭크맨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펜사콜라 대학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좋은 서적과 비디오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영어에 조금 익숙하신 분들은 구입하여 연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킹제임스 성경을 주장하고 강력하게 그 성경만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피터 럭크맨 추종자가 아니며,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할 것입니다.

    스트라우스 박사가 성경론과 킹제임스 성경에 대하여 특강에서 이 분은 보편적이며 성경적인 입장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믿고 가르치는 분입니다. 비록 밥죤스대학교에서 PhD를 받았지만 킹제임스 성경, 침례교 교리, 근본주의에 대하여 가장 건전한 분 중의 한 분입니다. 물론 통역이 있을 것입니다. 가서 들어보시고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www.inchristjesus.net (전국친교회와 중복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가끔 킹제임스 성경에 관하여 거시적인 접근에서 미시적인 접근으로 가면서 기고를 하겠습니다.

    미국 뉴져지 중앙침례교회 이황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여러 입장들

    킹제임스 성경을 주장하고 변호하는 사람들이 피터 럭크맨이나 이송오 박사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번에 잠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다르게 여러 입장과 믿음이 있음을 잠간 소개하였습니다. 다음 주제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보고 답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 글을 읽는 분에게 숙제와 과제를 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 여러 입장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1.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완전한 성경이 있어야 하고 현재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는가? 신약을 두고 말할 때, 다수사본(“넓게 말해서” 비잔틴 사본 또는 전통사본 Textus Receptus[약자로 TR, 영어로는 Received Text])이나 소수사본(비평사본, 웨스트코트와 홀트 사본, 네슬사본 등)에 보존되어 있는가?

    (다수사본[Majority Text]과 [소수사본]에 대하여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은 신약개론이나 신약총론의 설명을 참조하여 보라).

    완전한 성경이 필요한가?

    그것이 다수사본도 아니고 소수사본도 아니라면 번역본으로 가야할 것이다. 더욱이 원본(Original Manuscripts)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문제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보존에 대하여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성경이 어떤 형태로 보존될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마태5:18; 계22:18-19...19절도 개역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과 다르다. “생명의 책”인지, 아니면 “생명나무”인지 확인 해 보라. 주님은 구약에서도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신4:2; 잠30:5-6). 그런데 복음주의자들과 일부 근본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는 신약에 있어서 7%나 되고 8413 군데에서 다르거나, 빠지거나, 변개된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본교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무지와 불경함을 말하고 다. Everett W. Fowler, Evaluating Versions of the New Testament (Watertown: Maranatha Baptist Press, 1981), p.66. 구약까지 본다면 사본(원문) 선택과 번역기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에 2만 군데가 넘는 곳에 차이가 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본뿐 만 아니라 결국 어떤 번역본도 오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원본에는 오류가 없이 기록되었다고 믿는 것이 근본주의자들 전체와 거의 모든 복음주의자들의 믿음과 신학이다. 나도 100%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사본이나 역본에 있어서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존중한다. 하지만 신구약 말씀의 저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신의 말씀이 완전하시며,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며 완전하게 보존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지금도 어딘가에 완전한 말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설교자도 성경을 들고 말할 때 “여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완전한 말씀이 있고, 우리가 믿고, 선포하고 묵상하고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복음주의 목사들과 근본주의 목사들이 그렇게 설교하는 것을 지금까지 보아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성경을 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기만이요 회중 모욕이요, 불경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 성경이나 혹은 NIV/NASV/NKJV 등 가운데 어딘가에 완전한 성경이 존재하고 그것을 “짜집기”한 것이 완전한 성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한다. 나는 “글쎄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완전한 말씀을 원본을 통해 주셨다면 그 말씀이 사본 등을 통해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어야 하고, 적어도 이 시대에도 그러한 완전한 말씀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과 논리의 정당한 가르침과 결론이다. 그러한 성경이 없다면 아마 지금 그러한 성경을 만들든지,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떠했는가?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방문하셨을 때, 이사야서를 찾으셨는데 그 성경은 원본이 아닐 것이다. 결국 사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약 이사야서를 “성경”이라고 인정하셨고 부르셨으며, 그 말씀이 자신에게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셨다. 나는 예수님께서 구약사본을 보실 때 공인하셨음을 믿는다. 그것은 원본도 아니었고 더욱이 칠십인역도 아니었다. (칠십인역은 상당수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예수님 오시기 전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학설 뿐이다). 나는 축자영감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말씀보존을 믿으며, 그리고 번역된 성경으로서 문자적으로 번역되어 보존된 말씀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은 어떤 성경이라고 믿는가? 원본? 다수사본? 소수사본? 킹제임스 성경? 개역? 공동 번역? 새 번역? 새 표준번역, 개정 개역? NIV? NASV? NKJV? Reader's Digest Bible?.....당신이 답변하면 나도 답변해주겠다고 약속한다.

    2. 어떤 사람들은 꼭 그렇게 정확한 성경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 사고방식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축자 영감을 조소하면서 마음으로도 믿지 않고, 입술로도 비웃는 사람이다. 한국의 한신대가 대표적인 신학교요, 기장측이 해당되며 미국에서는 유니온 신학교가 해당된다. 그리고 신 정통주의는 한국의 장신대가 대표적인 신학교요, 통합측이 해당되며, 미국에서는 프린스톤 신학교가 해당된다. 그리고 키에르케골이나 칼 바르트가 대표적인 신학자들이다. 신 정통주의자들은 소위 신약에서 빨간 글자로 된 부분(어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빨간 폰트로 인쇄) 정도는 아마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생각되나 나머지는 소위 “실존”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아주 악한 사람들이다. 실존주의 신학이 바로 신 정통주의 신학이요, 그들은 마음으로 축자 영감을 부인하나,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 모두가 말하기를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물론 복음주의자들(장로교 중 합동측과 남침례교단)은 그러면서도 신 정통주의자들과 초교파적으로 같이 어울리고 집회와 강단교류를 잘 하고 있다. 그런데, 근본주의자들 중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복음주의 노선으로 가고 있는데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복음주의자로 될 것을 알고 있다. 역사의 교훈에 의하면 근본주의(Fundamental)에서 복음주의(Evangelical)로 가고, 복음주의에서 에큐메니칼(Ecumenical)로 가기가 쉽다. 한국 성서침례교회도 지금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자, 그런데 성경 이슈에 대하여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들의 현격한 차이가 무엇인가? 복음주의 신학교들과 목회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복음주의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쓰지 않고 쓸 수도 없다. 극단적인 예외가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그 말은 정확한 말이다. 복음주의 신학교(달라스, 리버티, 남침례 신학교들, 탈봇, 트리니티 등)에서는 원본의 축자 영감은 믿지만, 사본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보존을 분명히 믿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단지 성경말살정책과 핍박 밑에서 성도들이 말씀을 감추거나 생명을 걸고 카피했다는 정도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위의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구약총론에서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학설을 신봉하는 나머지 킹제임스 성경의 저본인 다수사본이나 비잔틴사본이 열등하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이 NIV나 NASV보다 나은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열등하다고 가르친다. 적어도 한국 친교회의 순수한 목사님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대부분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에 관하여 말할 때 “킹제임스 성경이 좋은 것은 나도 알고 인정한다. 하지만.”이란 말은 거짓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학교에서 배울 때 결코 그렇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의 BBFI 선교사들이 초창기에 킹제임스 성경이 탁월하다, 최고로 잘 번역되었다고 한국 목회자들에게 말해 주었고, 순수하게 믿고 있고 아직도 미국에 있는 BBFI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거의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기에 그러한 정서나 분위기를 훼손할 수 없기에 대강 좋게 좋게 말하는 것뿐이다.

    겉으로는 근본주의 노선을 지향한다고 말하면서 실제 안은 복음주의 사람들은 결코 킹제임스 성경이 탁월하다고 믿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교육받은 복음주의 신학교의 입장을 거부한다면 그렇게 않겠지만... 나의 질문은 그들이 만일 미국에서 목회 한다면 킹제임스 성경을 쓸 것인가라는 것인데 분명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의 성서침례교회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여, 근본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복음주의 노선을 가는데, 자신은 킹제임스 성경이 좋다, 탁월하다, 우수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공부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든지 아니면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을 무마시키기 위한 부드러운 표현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복음주의자들과, 겉은 근본주의자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복음주의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이라고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번역본보다 탁월한 성경이라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배운 내용이 그렇지 않고, 자신도 그 배운 내용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코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순수해야 하지만 순진할 필요는 없다.

    3.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성경들과 소수사본의 문제는 “뉴 에이지 사상”과 천주교 성경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치하는 입장이다. 자유주의자들과 신 정통주의자들은 성경원본의 축자 영감을 부인하고 잘 해야 부분영감이나 개념 영감을 믿으며 하나님과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믿지 않는다. (고후2:17; 4:2 개역만 말고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나 한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도 참조). 그런데 복음주의자들은 사본과 역본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그렇게 강하게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금 삭제되었다든지, 혹은 추가되었다든지, 변개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기본교리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라고 변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말씀선포와 순종과 사역에 있어서 대강 한다는 뜻을 결코 아니다. 다만 신학교에서 그 문제에 대하여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에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뉴에이지 사상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대부분 반대하고 경계한다. 아니 당연히 대적해야할 사상이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들도 반대한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 외에 다른 역본들과 사본들이 뉴 에이지 영향을 받았다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과 반박을 할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러한 것을 연구조사해서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영적인 눈이 밝게 뜨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영어 성경에 있어서 킹제임스 성경만을 사용해야 한다(소위 KJB Only)는 사람들은 다른 성경이나 사본이 바로 뉴에이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있기에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무엇인지 믿고 있다. 그러니까, 킹제임스 성경 문제는 어떤 성경이 뉴에이지 영향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뉴에이지 사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이요,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이요, 반성경적인 문화인데 그것을 추적해보면 바벨론 종교와 마귀에게까지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회자나 신학생, 성경에 관심이 있는 성도라면 킹제임스 성경 이슈와 별도로 이 문제를 연구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사상과 이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것을 믿지 않고 상대적인 것을 믿으며, 객관적인 것보다는 주관적이고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고, 범신론과 윤회설 등을 추구한다. David L. Smith, A Handbook of Contemporary Theology (Wheaton: Victor Books, 1992), p.277. 그리고 이것은 현대와 와서 모든 분야, 즉 철학, 과학, 정치, 음악, 의학, 신학, 크리스천 신학까지 침투해 들어왔다. 나는 이것에 대하여 상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 이미 훌륭한 책들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G. A.립링거 박사가 저술한 것으로 “그런 구절들이 빠져 있거나 변개 되어 있어도 기본교리에는 상관이 없다”는 불경한 사람들의 잘못을 책망할 것이다. Riplinger, G. A. New Age Bible Versions. Munroe Falls: AV Publications, 1993. 립링거 여사는 유명 대학교수로 있으면 학생들을 영적으로 성경적으로도 도왔는데, 캠퍼스의 학생들이 많은 종류의 성경이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 그 이유에 관한 질문을 받고 도전 받아 6년 동안 꼬박 연구조사하고 분류하여 쓴 책이다. (피터 럭크맨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립링거 박사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개역이나 다른 성경을 사용할 수 없다. 그래도 복음주의자들은 나름대로의 설명과 변명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 할 것이다. 위의 책은 말씀보존학회에서 번역했고 정동수 교수가 상권을 번역했다. 도움이 될 것이다.

    말씀구절들이나 단어가 빠진 성경에서 조금 틀리게 가르쳐도 상관이 없다는 사람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로서 물론 말씀을 따라 100% 순종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는 명령을 총사령관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았으며, 지상명령에서도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마지막 당부도 있으셨고, 사도 바울도 행20:27에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개역과 킹제임스 성경 다 참조)”을 주저함 없이 3년 동안 에베소 교회에서 가르쳤다. 마5:19도 참조해 보라. 우리가 성경을 다 알지 못해서, 우리가 아는 만큼 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약만 보더라도 7%의 분량, 8413 군데의 말씀들이 삭제되었거나 변개 되었는데도 “기본교리에는 상관이 없다”고 운운하는데,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모든 부분들이 관련이 있고 성경을 부인하는 프린스톤 대학의 메츠거 박사도 상관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물론 킹제임스 성경을 믿지 않는다. 그래도 킹제임스 성경과 다른 성경들이 기본교리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데, 어차피 그 사람은 성경의 기본교리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이고 솔직한 표현을 했을 뿐이다. 그에게는 기본교리가 상관이 있든 없든 별로 개의치 않는 사람인데, 근본주의자들이 믿는 교리와 자유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시인한 것뿐이다.

    4.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여러 입장들

    1) “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좋은 성경이 아니다. 다만 여러 번역성경 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당신의 취향에 맞는 성경을 선택하라. 이것은 자유주의자나 신 정통주의들, 그리고 상당수의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이다.

    2) “나는 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좋다.” 이 사람들은 순수한 입장에서 다른 역본들보다 더 선호하고 어휘나 역사적인 의미, 고전적인 문체와 간결체 등을 좋아한다. 반드시 복음주의자나 근본주의가 아니라도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지 않는 목회자도 여기에 속한다.

    3) “신구약사본들이 탁월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이 탁월하다.” 구약의 사본이 마소라 사본(예를 들면 킷텔이 처음에 편집한 사본으로서 후에 한 것과 구별)인 점, 신약의 다수사본인 점을 들어서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 하지만 이 사본들을 저본으로 하여 더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좋은 성경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 중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 Wilbur Pickering과 “Defender's Study Bible"을 만든 Henry M. Morris 박사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Morris 박사는 미국 창조과학회를 창설한 사람이다. 그가 쓴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주석은 매우 우수하다. 그는 NKJV의 모세5경을 번역하는 데 감독자로 요청되었지만 거절했다.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 www.icr.org에 가서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그 팜플렛을 요청해 보라.

    ****************

    성서침례친교회 안의 목사님들은 구령과 교회를 강건케 하는 일에 바쁘실 줄 압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틈을 내어서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책이나 자료들을 조금씩 연구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15년이나 걸려 지금의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