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인가? 삼위일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으로 한국에서도 이로 인해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으며 심지어 복음적인 교단의 목사나 지도자들도 이런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가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요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성도들에게는 목사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이 곧 양태론이다. 또는 “물은 얼음도 되고 액체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는 주장 역시 양태론에 근접한 진술이다. 이렇듯 양태론의 핵심은 한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고 성령님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분명하게 이단 교리라고 말한다. 한국에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이고 성령님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며 그래서 침례를 줄 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으로 준다.”고 한다. 이런 이론이 생기게 된 것은 전적으로 개역성경 때문이다. 이들은 요한복음 17장 11절을 근거로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하는 것이다. 개역: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개역성경에는 분명하게 예수라는 이름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이 성경대로 그렇게 믿는다고 주장해도 도저히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르다. 흠정역: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흠정역 성경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로 되어 있다. 즉 개역성경에는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들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성경이 다르면 교리가 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역성경의 근간이 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이 변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NIV 등도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임을 보여 주며 그 결과 예수 유일주의 같은 이단 교리가 발붙일 틈을 주고 있다. NIV: I will remain in the world no longer, but they are still in the world, and I am coming to you. Holy Father, protect them by the power of your name--the name you gave me--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 이제 성경적 삼위일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서 이 세 인격체 중 하나가 없으면 한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간을 생각해 보자. 시간은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며 각각이 다 시간이고 이 셋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시간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공간을 차지하면서 반드시 길이(x), 너비(y), 높이(z)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물체가 아니다. 아무리 얇은 것도, 작은 것도 반드시 x, y, z 세 방향의 크기를 가지며 이로써 그 물질이(혹은 공간이) 구성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증거들을 우주에 많이 만들어 두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