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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성경의 완전성: 무오성과 충분성조회수 : 5228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1년 7월 8일 15시 43분 59초
  • 성경의 완전성: 무오성과 충분성
     
    요즘 KeepBible 사이트에서 성경의 완전성(Perfectness) 혹은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논란이 있어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요즘 일어난 특별한 문제가 아니고 킹제임스 성경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 흔히 겪는 일입니다. 이때에 어떤 사상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경관이 평생 고정되므로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슈가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완전성’이라는 말로 인해 혼동 속에 빠진 성도들이 있어 이에 대한 정의도 내리면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우리말 흠정역 성경 그리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오기 전에는 완전한 성경이 어디 있었는가?” 등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KeepBible 사이트의 존재 목적
     
    먼저 글을 전개하기 전에 KeepBible 사이트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KeepBible 사이트는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리는 곳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최종 목표 혹은 궁극적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그 성경을 우리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교정에 참여한 분들은 “나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의 본문을 확정하며 이 성경을 지키고 보급하고 확산시키며 정착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서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확고히 보존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리거나 보존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최종 과업은 아닙니다. 성경 출간도 마찬가집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급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다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민족에게 보급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와 KeepBible 사이트 그리고 번역/교정에 참여한 분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완전성이란?
     
    우리는 다 성경을 최종 권위로 여기므로 ‘완전하다’(perfect)는 말 역시 성경에서 용례를 찾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완전하다’(perfect)는 말은 성경에서 여러 용례로 쓰입니다. 신구약 통틀어 ‘perfect’는 총 99회 나오고 ‘perfection’은 총 11회 나옵니다.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성경에는 ‘첫 번째 언급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나올 때 그 문맥에서 그 단어의 뜻이 곧 그 단어의 정확한 뜻임을 말합니다.
     
    ‘perfect’는 성경에서 창세기 6장 9절에 가장 먼저 언급됩니다.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
     
    여기에 보면 노아가 완전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하나님처럼 무오한 사람이었을까요?
     
    욥기 1장 1절 또한 욥을 가리켜 “그 사람은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더라.”라고 말합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마태복음 5장 48절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절들이 과연 우리 사람이 하나님처럼 무오함을 보여 줍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히브리서 5장 8-9절은 “그분께서 순종하기를 배우사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전에 죄나 허물이 있는 분이었을까요? 그분은 무오한 분이신데 왜 성경은 그분이 완전하게 되셨다고 기록할까요?
     
    성경에서 ‘완전하다’는 말은 ‘모든 것을 구비하여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은 예수님도 구원자가 되기 위해 고난까지 당하심으로 구원자로서의 임무를 다 수행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고난이 없었으면 구원자가 되실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성경 내에서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을 완전하다고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문맥입니다. 그 문맥이 그 사람이 말한 완전성에 대한 정의를 보여 줍니다.
     
    성경의 완전성
     
    이제 성경과 관련된 완전성을 보여 주는 구절을 살펴봅시다. 성경이 최종 권위요, 내장 사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성경의 완전성’에 대해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 분명히 확신을 가지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굳이 영어로 기록하지 않아도 뜻을 알 수 있으므로 영어는 생략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 두 구절이 성경의 완전성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자필원본이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이 완전할까요? 성경의 완전성이 모든 민족의 모든 말로 주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는 절대적인 완전성 즉 무오성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자필원본에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영감이 원어의 단어들에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이어지는 말씀은 자필원본에만 적용될까요? 아닙니다! 그 이후의 말씀은 원어와 영어 및 모든 민족들의 언어로 번역된 ‘바른 성경’에 적용될 수 있는 실제적인 완전성을 말합니다. 즉 그 이후의 구절이 말하는 완전성은 성경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완전성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말로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수 있을까요?
     
    전자의 의미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후자의 의미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불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성경과 관련된 완전성은 최소한 이 두 가지로 나누어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성도들 - 물론 다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 은 번역된 모든 성경 - 물론 다 바른 성경을 뜻합니다 - 에 대해서 ‘infallible’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inerrant’(무오)라는 말은 자필 원본의 단어들에만 적용된다고 믿었습니다. 원어에서 다른 말로 번역이 되면 어떤 번역본이든 그 번역본에 대해 ‘inerrant’라는 말을 붙이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여 무너뜨릴 수 없다’ 혹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넘어질 수 없다’는 뜻을 가진 ‘infallible’이라는 말은 성경과 관련해서 무엇을 뜻합니까? 딤후3:16-17의 앞부분은 ‘inerrant’의 완전성이고 뒷부분은 ‘infallible’의 완전성입니다. 즉 역본에 적용되는 완전성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모든 민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완전한 말씀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어느 분이 “성경이 완전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그분이 그런 말을 하는지 문맥으로 잘 판단해야 합니다. ‘infallible’ 차원의 완전성인가, ‘inerrant’ 차원의 완전성인가가 구분이 안 되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며 극한 논쟁으로 치닫게 됩니다. 또한 극단적인 주장을 펴게 되면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수 있는가?
     
    이제 근본적인 이 문제에 대해 답하려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경의 완전성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자필원본의 완전성
     
    이것은 ‘절대적인 완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내신 ‘말씀들’(words) - 이후로 이것은 항상 단어들을 뜻함 - 은 절대적으로 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최종권위라고 부릅니다. 우리 진영에서 이것을 안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굳이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Inerrancy’가 될 것입니다. 즉 이것은 무오성입니다.
     
    (2) 번역본의 완전성
     
    원어의 말씀들을 번역해서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말씀들을 이해하고 그 말씀들을 통해 구원받는 것이 사람 편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원어와 번역에 사용되는 수용 언어는 형식/구조의 차이가 있어서 원어를 100% 완벽하게 수용하여 ‘일 대 일’로 모든 단어가 일치하게 번역해 낼 수 있는 언어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그리할 수 있는 언어 중 하나가 영어임). 그러므로 바르게 보존된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소수의 아람어 포함)과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수용 언어의 한계 안에서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론상으로 그 번역 성경 역시 완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이것을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Infallibility’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성경의 역할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과연 이것은 자필원본이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만 국한되는 말씀일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어나 영어만 사용하기를 원할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바른 본문에서 바르게 번역된 성경은 한 민족의 언어의 틀 안에서 자필원본의 완전성이 ‘전달된’(transmitted) 완전한 성경입니다(이후로는 이것을 번역본의 완전성이라고 할 것임). 여기에는 추호의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결코 번역본에 대해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본문에서 바른 사상을 가지고 바르게 번역된 성경이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구원을 받고 그 뜻대로 행하는 데 있어서 완전한 도구를 갖게 됩니다. 완전한 성경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완전하게 될 수 있습니까?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 밖에 없다.”고 주장하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번역본의 완전성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번역본의 완전성은 무엇을 뜻할까요?
     
    ‘번역본의 완전성’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원어들이 주는 ‘절대적인 완전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른 본문을 바르게 번역할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충분성(Sufficiency)이요, 온전성(Wholeness)이요, 성실성(Integr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성경 서문에 기록한 ‘독자들에게 주는 글’에서 우리는 아주 좋은 예를 발견하게 됩니다.

    “We never thought from the beginning, that we should need to make a new Translation, nor yet to make of a bad one a good one, … but to make a good one better, or out of many good ones, one principal good one, … ; that hath been our endeavor, that our mark.”

    “처음부터 우리는 새로운 번역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좋은 것을 더 좋게 혹은 여러 개의 좋은 것들 중에서 최고로(혹은 으뜸가는) 좋은 것을 만들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노력한 것이었고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잘 알다시피 영국에서는 1524-1534년에 틴데일의 성경이 나온 이후로 커버데일 성경, 매튜 성경, 크랜머 성경, 제네바 성경 등의 여러 성경이 나왔고 비슷한 시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는 루터 성경, 디오다티 성경, 발레라 성경, 올리베땅 성경 등이 나왔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성경 서두에서 “이 성경전서는 원어에서 번역하였으며 또한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번역 성경에 관하여 우리는 이들의 자세와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영어 성경의 경우 틴데일 이전에는 부패된 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위클리프 성경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에는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 그리스어(원어)에 대한 연구나 문헌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이 만들어진 것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터키에 의해 함락된 이후부터였습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그리스어에 대한 눈이 열리기 시작하여 드디어 에라스무스, 베자, 스테파누스 등이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을 만들었고 위에 언급한 모든 성경들은 이런 바른 본문 - 공인 본문 - 에서 바르게 번역된 성경들이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이런 성경들을 ‘나쁜 것’(bad one)이라고 하지 않고 다 ‘좋은 것’(good one)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만든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좋은 것들’을 ‘더 좋게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혹은 가장 으뜸가는 ‘좋은 성경’을 만드는 것이 자기들의 목표라고 했습니다. 실로 그것이 이루어져서 킹제임스 성경의 출간 이전에는 많은 종류의 영어 역본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지만 출간 이후에는 번역하는 일이 삽시간에 중단되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주목할 만한 성경 번역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번역본의 완전성 - 무오성이 아님 - 을 볼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틴데일 성경을 비롯해서 루터 성경 등 이전에 나온 바른 역본들을 다 ‘좋은 성경’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부지런히 살펴보고 교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번역본의 충분성과 온전성과 성실성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즉 바른 사본에서 바르게 번역된 이 모든 성경들은 한 민족의 언어의 틀 안에서 딤후3:16-17의 말씀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성경’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각 나라의 대부분 성도들은 그 성경을 붙잡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완전한 성경’으로 믿으며 그 빛 가운데 살다가 갔습니다.
     
    (3)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번역본이므로 이런 면에서 볼 때 일차적으로 이 성경의 완전성 역시 번역본으로서의 충분성과 온전성과 성실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이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인쇄술의 도래로 인해 온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공통의 보편적 잣대를 주시기 원했고 바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1611년에 ‘가장 으뜸가는 좋은 성경’으로 온 인류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잘 알다시피 원어를 안다고 해서 성경을 바로 번역하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어와 ‘일 대 일 대응’을 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인 영어로 원어의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명확하게 알려주는 역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자필원본이 갖는 절대적 완전성을 확보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없었다면 지금의 믿음의 교리 및 신학 체계를 세우는 것과 모든 현대 역본들을 번역하는 것이 실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완전성 즉 무오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즉 그것이 자필원본과 동일한 최종권위라고 분명하게 믿습니다.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절대적인 완전성은 어떻게 입증이 될까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다. 역자들이 이 성경을 만들고는 “이것은 절대적인 성경입니다.”라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권력자도 “이것만 옳으니 모든 교회에서 이것을 사용하라”고 압력을 넣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나무는 그것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1611년 발간 이후로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킹제임스 성경, 바로 이 성경이 배출한 열매들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말씀들을 순수하게 보존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아왔습니다.
     
    (4) 우리말 번역본의 완전성
     
    자, 그러면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은 어떨까요?
    바른 본문에서 바르게 번역된 성경들은 모두 ‘좋은 성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불행히 과거에 우리나라에는 그런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흠정역 성경을 번역하였고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바른 성경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확신이 없으면 딤후3:16-17은 공허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한 번도 이 성경이 오류가 없이 완벽하다고 무오성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다만 바른 번역자들이 최선을 다해 바른 본문을 바르게 번역하였으므로 이 흠정역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해 보존해 주신 성경으로서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했다고 믿을 뿐입니다. 즉 흠정역 성경이 딤후3:16-17을 이룰 수 있는 차원의 완전성, 충분성, 온전성 혹은 성실성을 확보했다고 믿습니다. 이런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이 성경을 가지고 바른 구원, 바른 교리, 바른 교회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최종적으로 그 성경의 열매들에 의해 판단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주장한다고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렇다고 믿고 그것에서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할 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경우 2000년도에 초판이 나온 이후로 네 번 교정되었고 2011년 9월경에는 5판으로 ‘400주년 기념판’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지난번의 네 판은 나쁜 성경일까요? 그것들은 번역본이라는 측면에서 완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성경일까요? 아닙니다. 번역본의 측면에서 지난 네 판들은 모두 좋은 성경이며 새로운 판이 나올 때까지는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한 채 여러 성도들에게 빛을 주었던 성경들입니다. 이것은 영어 성경의 변천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판은 틴데일 성경, 2판은 그것을 보완한 커버데일 성경, 3판은 그것을 더 보완한 제네바 성경 등으로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6-17세기에 올바른 역본들이 쏟아져 나오자 천주교회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성경을 자주 교정한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천주교회의 이런 비난을 잠재우면서 성경 교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즉 원본을 주신 하나님 편에서는 완전성의 문제가 영원히 고정되었지만 역본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 편에서는 ‘바르고 좋은 성경’을 ‘계속해서 더 좋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킹제임스 성경이었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성경을 최종권위로 만들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 세상을 위해 할 일을 하고 묵묵히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견지하는 태도입니다. 번역자들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자기 세대를 섬기고 가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면 한 번에 완벽하게 우리말 역본을 낼 수 있다는 담대한 주장을 펴서 순진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참으로 멋있고 맞는 말 같지만 번역 성경의 역사는 이런 주장을 추풍낙엽처럼 세차게 날려버립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나라 말로 바른 성경이 주어진 상태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으뜸가는 역본’이 나오는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역본이 나올 때까지 각 단계에서의 성경은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한 성경들입니다. 번역자들과 교정자들은 겸손한 자세로 어떻게 하든지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좀 더 좋은 역본을 내야 합니다. 성도들 역시 이러한 과정을 기억하고 이해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의 끝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때에 정하십니다.
     
    (5) 먼저 믿고 확신을 갖게 된 사람들의 태도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우리말 흠정역 성경의 관계를 이해한 성도들은 이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우리말로 번역된 바른 성경을 가지고 어떻게 강단에서 외쳐야 할까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이 최종 권위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보는 성경은 절대적인 완전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은 참조만 하고 가능하면 늘 영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불완전합니다.”
     
    비록 이렇게 말은 안 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는 이렇게 행하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틈만 나면 우리말 성경을 뜯어고치는 데서 발견됩니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은 “이 번역은 사실 옳지 않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누가 이분의 주장을 입증해 줄까요?
     
    스스럼없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사귀는 사람들의 다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스스로 ‘성경 교정자’가 됩니다. 먼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의 완전성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영어 성경을 다 아는 것처럼 하면서 우리말 성경을 교정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과연 그에게 영어 성경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을까요? 그를 따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바른 신앙의 성장이 일어나며, 그런 자세가 성경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자라게 할까요?
     
    이들은 대개 강단에서 원어를 들먹이며 “원어에서는 뜻이 이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어 참으로 아쉽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장 미워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자기들이 이 시간 이 나라에서 영어를 가지고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우리말 성경이 필요합니다. 사실 상 한국 사람들 중에서 영어에 능통한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킹제임스 성경을 영어판이 아닌 한글 번역본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한글로 번역된 바로 그 성경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교리를 배우고 바르게 자라갑니다. 심지어 영어 성경을 자랑하는 그 소수 역시 영어 성경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본문에서 바르게 번역된 우리말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때 비로소 우리는 바른 본문에서 나온 번역본의 완전성, 충분성, 온전성, 성실성을 믿는 것입니다.
     
    틴데일은 죽기 전에 자기 친구 프리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게 될 그 날에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시기를 바라노니 나는 결코 내 양심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의 단 한 음절도 바꾸지 않았으며,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즉 명예와 쾌락과 재산을 내게 준다 해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틴데일이 자기가 번역한 성경을 들고는 “이것은 불완전합니다. 앞으로 완전한 것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립시다.”라고 외쳤을까요? 마르틴 루터는 어땠을까요? 그는 자기가 번역한 성경이 번역본으로서의 완전성을 갖추었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성경을 들고 “이 성경이 사람을 구원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 결과 그의 믿음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 영어 성경이 아니라 - 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흠정역 성경을 번역/교정하는 일을 주관한 저도 비록 미천한 사람이지만 번역의 정신만큼은 틴데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한 단어라도 사적인 욕구를 위해 왜곡되게 번역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해서 이 일에 동참한 이들은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내려놓고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정확하게 옮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더러 극단적인 이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는 망언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것이 바로 마귀의 교활한 전략임을 모릅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속으로는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들의 극단적인 ‘영어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발언을 통해 우리말 성경에 대한 믿음이 파괴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좋아하실까요?
     
    마귀는 좋은 것으로 좋은 것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봅시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킹제임스 성경을 가로막는 통탄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엉터리 번역, 비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무리들이 자신들의 성경만이 최종권위요, 자신들이 세운 교회만이 한국에서 최초의 신약교회라고 외쳐대니 이성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이단으로 보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최종 권위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비이성적으로 과도하게 이야기하게 되면 말하는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결국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에 대한 확신을 파괴시키는 일이 슬며시 발생합니다. 그것이 자꾸 쌓이면 결국 우리말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붕괴됩니다.
     
    또한 이들은 무조건 원어를 멸시합니다. 이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원어에서 영어 성경이 나왔습니다. 역순이 아닙니다. 영어 이상으로 원어를 공부해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스스로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가 못한다고 하려고 하는 사람까지 멸시하면 안 됩니다. 물론 원어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의 많은 이들이 성경을 뜯어 고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원어의 잘못이 아니고 그 사람이나 그를 교육하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젊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가능하면 원어도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반대편에 속한 자들도 실력으로 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원어 지식을 성경을 교정하는 데 쓰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쓸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해 줘도 귀를 꽉 막고는 들으려 하지 않거나 전혀 못 알아듣고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최종 권위이다. 오류가 없다. 나머지는 다 불완전하다.”고 외치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아직 흠정역을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흠정역을 선택하는 일에 방해를 줍니다. 그 결과 이 중대한 시점에서 성경 번역 및 보급 사역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니 부디 이런 주장을 합리적으로 균형 있게 하기 바랍니다.
     
    결 론
     
    어떤 사람이 성경의 완전성을 이야기할 때 그분의 말이나 글의 앞뒤를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것은 단지 성경의 완전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려면 문맥에서 바르게 읽고 보아야 합니다. 이 훈련이 되어야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면 그것을 우리말로 바르게/신실하게 번역한 성경을 들고 “이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영어 성경을 들고 다니며 영어 구절을 읽고 그것으로 설교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일 것입니다.
     
    이것은 영감에도 적용이 됩니다. 영감은 분명히 원어들에만 주어졌습니다(딤후3:16).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그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원본에서 ‘전달된 영감’이 100% 들어 있습니다. 영감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죽은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 역시 이것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역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초하여 그것으로부터 바르게 번역되어 번역본으로서의 완전성을 확보했기에 원본에 주어진 하나님의 영감이 전달되어 살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딤후3:16-17은 허구가 되고 맙니다. 물론 이것이 최종권위로서의 ‘완전성’(Inerrancy)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오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성경의 완전성이나 무오성 혹은 영감 등을 이야기할 때 문맥을 잘 살펴보고 판단하기 바랍니다. 진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번역본의 완전성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전에 나온 바른 성경들 즉 크리스천 믿음의 선조들이 사용했던 바른 역본들 역시 모두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바른 본문을 들고 바른 믿음과 올바른 방법으로 바르게 번역하면 그 성경은 그 민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번역의 차원에서 충분성과 온전성과 성실성과 확실성을 모두 겸비한 완전한 성경입니다. 어떻게 불완전하다고 믿는 성경을 들고 목회를 하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우리는 어떤 번역본을 통해 유익을 얻은 사람들의 인격의 열매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잘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접한 후에 믿음에서 어떤 영적 진보와 유익을 얻었는지는 KeepBible 사이트나 그 외의 다른 유익한 사이트의 간증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디 이 글의 취지를 잘 이해하여 형제들 간에 불필요한 오해를 하거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 글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영어킹제임스 성경의 가치와 권위를 훼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절대적인 완전성(Inerrancy) 즉 무오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완전하고 순수하게 보존되어 있고,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그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부터 충실하게 번역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취지를 바로 이해했으면 2010년 5월에 흠정역 성경과 관련해서 여러 형제들이 동의한 ‘우리의 결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KJB 1611, 이하 킹제임스 성경)이 믿음과 실행의 최종 권위임을 믿는다.
    2. 나는 킹제임스 성경이 시제, 단복수, 능동태, 수동태, 주어, 목적어, 전치사, 관사, 대소문자 표기, 문장 어순, 이탤릭체 심지어 콤마와 물음표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3. 나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한글 성경 번역 시 유일한 기준이며 최종 잣대임을 믿는다.
    4. 나는 하나님의 말씀들(words)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완벽하게 보존되었음을 믿는다.
    5. 나는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들(words)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단어에 대한 유일하고도 올바르며 최종적인 정의임을 믿는다.
    6. 나는 우리말과 번역자들의 한계로 인해 우리말로 완벽한 성경을 낸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가 우리말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7. 나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를 통해 지난 10년간 한국어를 사용하는 개인과 교회에 큰 은혜를 베푸셨고 앞으로도 그리하실 줄로 믿는다.
     
    부디 자필원본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절대적 완전성과 수용 언어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 번역 성경의 완전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의문점들이 해소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믿음의 지체들 간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이 널리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부 언
     
    글을 맺고 나서 여전히 우려 사항이 있어 추가하려고 합니다.
     
    (1) 이 글을 읽고 “출판사 그리스도 예수안에 사람들도 결국 타락해서 무슨 학회 사람들처럼 스스로 최종권위를 주장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까 우려됩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처럼 과격하게 극단적인 주장을 편 적도 없습니다. 이 사이트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우리는 자필원본 및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절대적 완전성과 번역본의 완전성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2) 영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는가, 세우는가?” 이것을 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는 발언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KeepBible 사이트에서도 성경 번역에 의견이나 이견이 있으면 가능한 한 사이트에 올리지 말고 webmaster@KeepBible.com으로 문의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는 논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남을 세우는 사람이 주님의 사람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한 지체를 세우는 사람이 하나님의 큰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말 성경의 확신과 관련된 논쟁의 소지가 있는 글은 회원들의 오해를 줄이고 본 사이트 운영 목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임의로 삭제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글을 써 주기 바라며 우리의 취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정동수 형제의 개인적인 글로서 번역의 철학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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