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KJB문서

  • 킹제임스성경
  • KJB문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요약조회수 : 20038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4월 29일 18시 6분 14초
  •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여기서는 웨이트(D.A. Waite) 박사의 「킹제임스 성경을 변호하며」(Defending the King James Bible)와 리플링거(G. Riplinger)의 「현대 성서와 뉴에이지」(New Age Bible Versions) 및 다른 자료를 이용하여 「흠정역 성경」의 우수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흠정역 성경」은 다음의 네 가지 면에서 최근에 나온 현대 역본들보다 우수하다.
     
    (1) 본문(Original Language Texts)
    (2) 번역자(Translators)
    (3) 번역 기법(Translation Technique)
    (4) 신학(Theology)
    한 가지씩 사례를 제시하며 우리의 주장을 입증하기에 앞서 위의 네 가지를 다음의 성경 구절과 비교하면 앞으로 전개할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9-11)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건물을 짓는 데 꼭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요소들은 성경 번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음의 요소들과 비교될 수 있다.
     
    (1) 주건축자(Master builder) : 사도 바울 등과 같이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원본을 직접 기록한 사람들
    (2) 다른 사람들(Builders) : 원본을 이용하여 각 나라 말로 번역하는 사람들
    (3) 건물을 어떻게 세우는가?(How to build) : 번역의 방법 및 기술
    (4) 건물을 무엇으로 세우는가?(How to build) : 번역의 재료, 즉 신학
     
    하나님의 건물의 기초나 성경의 기초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번역된 성경의 질이나 그 우수성은 위의 네 가지 요소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되며 심지어 그 안의 내용도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흠정역 성경」과 다른 현대 역본들을 비교해 보면 그 질이나 내용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우수성

    <1.1> KJV의 구약 본문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롬3:1-2)
    이 성경 말씀이 보여 주듯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맡겨졌고 이들 중에서 성경을 맡아 직접 손으로 복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을 서기관(성경기록관, Scribe)이라고 불렀다. 유대인들에게는 성경을 보관하고 복사하는 일이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했으므로 자연히 서기관들이 큰 대접을 받게 되었고 예수님 당시에는 이들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학자 등과 함께 큰 권세를 지닌 그룹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사 과정을 통해 성경 본문에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며 따라서 이런 필사본에 근거한 본문으로 번역한 성경에는 오류가 있게 마련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약성경 보존을 위해 선택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면 많은 인본주의자들의 막연한 생각이 단지 상상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깨닫게 될 것이다.
     
    1960년, 밀러(H.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 에는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 줄에서 60 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 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 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한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흠정역 성경」의 구약 본문은 ‘전통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Traditional Masoretic Hebrew Text)이다. ‘마소라’라는 말은 주후 10세기경에 처음 사용된 말이 아니라 주전 400여 년 전부터 사용된 말로서 ‘전해져 내려오다’라는 뜻의 ‘마사르’(masar)에서 파생된 말이며 현재는 ‘전통적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마소라’라는 말은 명사로 쓰일 때에 ‘히브리어 자음 본문’(Consonantal text)을 보존해 온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히브리어 자음 본문’은 전통적인 히브리어 성경 본문으로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WATER’를 보면 그 안에 ‘a’와 ‘e’라는 모음이 있다. 그런데 만일 이것이 히브리 단어였다면 모음이 없는 ‘WTR’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물론 마소라들은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이 단어에 다른 모음들을 넣으면 그 단어가 전혀 다른 뜻을 갖는 ‘WAITER’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 주고 단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소라들은 모음 표시를 했다. 예를 들어, 자음 밑에 있는 ‘t’는 ‘아’(ah)라는 발음을 갖고, 점이 세 개 있으면 ‘에’(eh), 점이 두 개 있으면 ‘아이’(ay), 그리고 점이 하나 있으면 ‘에에’(ee) 등으로 발음된다.
     
    이 같은 기호들은 ‘읽는 것을 도와주는 어머니’라는 뜻을 지닌 ‘마트레스렉션스’(matres lections)라 불리며, 이런 기호들을 통해 이방인이나 본문에 익숙하지 않은 유대인들이 히브리 단어를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WATER’와 ‘WAITER’는 이런 기호들에 의해 구분이 된다. 그런데 마소라들은 이처럼 ‘히브리어 자음 본문’을 보존하고 거기에다 모음 부호를 달아준 사람들이다. 특히 유대인이 아닌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이 행한 일이 매우 지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마소라들은 주후 500~1000년경에 매우 많이 존재했으며, 주후 600~700년경에 자음 본문에 모음 부호를 달아 표준화하는 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들이 만든 본문을 ‘마소라 본문’ 즉 ‘전통 본문’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역자들은 이 마소라 본문을 구약성경의 본문으로 채택하였다.
     
    <1.2> NIV, NASB 등 현대 역본들의 구약 본문
    신미국표준역(NASB)의 서문에는 번역자들이 키텔(Rudolph Kittel)의 「Biblia Hebraica」 최신판과 최근의 어휘 사전, 히브리어와 동일한 기원을 지닌 다른 나라의 말들, 그리고 사해사본 등에 기초해서 NASB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NASB의 구약 본문은 ‘전통 마소라 본문’뿐만 아니라 다른 자료들을 이용하여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이미 죽은 키텔의 이름으로 독일 위템베르크 성서공회가 출간한 1937년 판 「Biblia Hebraica」에는 페이지마다 각주에 15~20 군데의 수정 사항이 들어 있으며 따라서 구약성경 전체에 최소한 20,000~30,000 군데의 수정 사항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할진대 과연 이것을 보존된 성경 본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국제역(NIV) 역시 키텔의 「Biblia Hebraica」와 사해사본, 사마리아 모세 오경, 본문을 수정하는 데 사용된 고대 성경 기록관들의 전통, 본문 여백에 있는 여러 종류의 다른 본문들, 70인역,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등을 사용하여 구약 본문을 만들었다고 그 서문에 기록하고 있다.
     
    한편 뉴킹제임스역(NKJV)은 그 서문에서 번역자들이 1967/1977년 판 「Stuttgart Edition of Biblia Hebraica」를 사용했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독일의 슈트트가르트에서 만들어진 본문이므로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라고 불리며 내용 면에서는 키텔의 「Biblia Hebraica」와 거의 비슷하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키텔의 본문은 「Biblia Hebraica Kittel」 즉 「BHK」라고 부르며, NKJV가 사용한 본문은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즉 「BHS」라고 부른다. 이 「BHS」 역시 「BHK」처럼 페이지마다 각주에 수정 사항이 들어 있고 구약성경 전체적으로는 20,000~30,000 군데의 수정 사항이 들어 있다. NKJV의 역자들은 자신들이 종종 KJV의 근간이 된 1525년 판 「봄베르그 마소라 본문」과 비교하였으며, 70인역,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사해사본 등을 참고하고 그것들과도 비교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NKJV 역시 ‘전통 마소라 본문’ 외에 다른 것을 기초로 해서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1.3> 마소라 사본이라면 다 같은가?
    새로 출간되는 성경들에 대한 광고를 보면 NIV, NASB의 역자들도 자신들이 ‘전통 마소라 본문’을 사용하여 구약성경을 번역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쉽사리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순진한 독자들은 이들도 KJV의 ‘전통 마소라 본문’을 사용한 것으로 믿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소라 본문에는 두 종류가 있으며 KJV의 ‘마소라 본문’과 NIV, NASB 등 현대 역본의 ‘마소라 본문’이 매우 다르다. 이들이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자들을 현혹시켜 KJV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KJV의 히브리어 본문과 현대 역본들의 히브리어 본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1516-1517년에 유대인 랍비들이 출간한 구약성경을 「다니엘 봄베르그판」(Daniel Bomberg Edition)이라 부르며 또한 이를 「제1 랍비 성경」(The First Rabbinic Bible)이라고도 부른다. 그 이후에 1524-1525년에 제2판이 출간되었는데 벤 카임(Jacob Ben Chayyim)이 이를 편집하였다 해서 이 본문을 「벤 카임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이라 하며 이 본문은 「제2 대(大) 랍비 성경」(The Second Great Rabbinic Bible)이라고도 불린다.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은 출간된 후 400여 년이 지나도록 표준 마소라 본문으로 인정받아 왔는데 KJV 역자들은 바로 이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을 구약성경의 본문으로 사용했다.
     
    위템베르크 성서 공회는 1937년 과거에 키텔이 편집한 「BHK」의 제3판에서 KJV의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을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Ben Asher Masoretic Text)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실 1906년과 1912년에 키텔이 출간한 제1판과 제2판에서는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이 사용되었는데 1937년에 출간한 제3판에서는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으로 갑자기 구약성경의 출처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구약성경 전체 중 20,000~30,000 군데의 변개를 시도하였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주후 100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KJV의 기초가 된 ‘전통 마소라 본문’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 이후 1967년과 1977년에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BHK」를 개정한 「BHS」가 출간되었는데 이 마소라 성경 역시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KJV를 제외한 NASB, NIV, 신개역표준역(NRSV), NKJV 등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이 구약성경의 본문으로 사용한 마소라 본문이 유대인들의 ‘전통 마소라 본문’인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이 아니라 바로 유대인들을 증오한 루돌프 키텔의 「BHK」와 자유주의 신학의 온상지인 독일 슈트트가르트의 「BHS」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신학 대학에서 성경 본문에 대해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구약성경의 경우 어떤 본문을 사용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으신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이 아니고 필사본이었지만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 안에 있는 구약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바’(it is written)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말씀’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이 보존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 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은 것임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란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1.4> KJV의 신약 본문
    흠정역 신약성경의 근간이 된 본문은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이다. 「공인본문」은 누가 이것을 공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본문」(公認本文)이 아니고 누구나 이를 공통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본문」(共認本文, Received Text)이며 따라서 이것을 「수용본문」(收容本文)이라고도 부른다.
     
    「공인본문」은 KJV 신약 성경 번역의 토대가 되었으며 특히 1598년에 출간된 베자의 제5판이 사용되었다. 「공인본문」의 특징은 우선 신약 교회가 거의 1900년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며 그 내용이 변화가 없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은 다수 사본에 근거했기에 ‘다수 본문’이라고 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서방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 (혹은 동방) 본문’이라고 하며,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자들이 한결같이 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본문’이라고도 한다.
    「흠정역 성경」 번역에 사용된 그리스어 본문은 상당수의 서로 다른 편집자들에 의해 조합되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는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베자(Theodore Beza),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와 엘제비어 혹은 엘지버 형제(Elzevir Brothers), 아브라함과 보나벤쳐(Abraham and Bonaventure)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에라스무스는 다섯 판에 걸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1516년의 제1판에 이어, 1519년에는 마틴 루터가 그의 역사적이고 매우 중요한 독일어 번역판에 사용했던 제2판이 나왔다. 그 뒤 그의 셋째, 넷째 그리고 다섯째 판은 1522년, 1527년 그리고 1535년에 각각 출간되었다. 에라스무스의 작품은 매우 훌륭했고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모범 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스테파누스는 1546년, 1549년, 1550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1551년에 모두 네 판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베자도 1565년, 1582년, 1588년, 그리고 1598년에 걸쳐 여러 판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KJV의 역자들은 1598년의 베자 성경과 1550년과 1551년의 스테파누스 성경을 주요한 출전으로 사용했다. 1611년에 KJV가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엘제비어 형제가 1624년, 1633년, 그리고 1641년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는데 이들은 에라스무스의 표준을 따랐던 베자의 판을 충실히 따라가며 본문을 편집했다. 한편 이들은 1633년에 출간된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서문에다 지금까지의 본문들을 개선한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문구를 새겨 넣었는데, 그 문구는 라틴어로 “textum ergo habes, nunc ab omnibus receptum…”이며, 그 뜻은 “사람들이 수용한 책으로부터 입수한 본문에 따르면…”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 구절에서 「공인본문」 혹은 「수용본문」(Received Text 혹은 Textus Receptus)이라는 명칭이 탄생하였다.
    <1.5> NIV, NASB 등 현대 역본들의 신약 본문
    사도 시대부터 근 1900년 동안 신약 교회는 「공인본문」만을 사용해 왔으며 특히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이 출간된 이후에는, 비록 여러 가지 영어 성경이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360년 동안 다른 영어 성경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 또한 KJV는 온 세계로 퍼져 나가 말 그대로 전 세계의 보편적 성경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권위를 인정한 성경’이라는 인식 하에 ‘권위역본’(Authorized Version)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불안을 느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소위 본문 비평이라는 도구를 도입하여 성경을 한낱 역사책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권위를 떨어뜨리려 했으며, 이를 위해 허영에 들뜬 신학자들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 같은 시도는 결국 사악한 열매를 맺게 되었고, 1881년에 영국 성공회에 속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라는 두 명의 학자들은 「공인본문」에서 무려 5,604 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수정본문」이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본문」에서 빼거나 변개시키거나 추가한 단어들은 무려 9,970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 전체 본문에 나오는 140,521개 단어의 7%를 차지하는 것이다.
    웨스트코트는 영국 성공회의 주교였으며 호르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다.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은 강신술 등에 심취한 영성주의자들이요, 지옥이나 마귀 등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창세기 기록을 신화로 생각한 인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 변개시킨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인본문과 킹제임스 흠정역 신약성경>
     
    1988년에 무어만 박사는 「공인본문」의 단어와 현대 역본들의 근간이 된 「네슬레/알란드판」(Nestle/Aland Edition)의 그리스어 본문의 단어 수를 비교하였는데, 그 결과 「네슬레/알란드판」의 본문이 「공인본문」에 비해 무려 2,886 단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본문」이 1,952 군데를 삭제한 데 비해 네슬레와 알란드의 본문은 그보다 934 단어를 더 삭제하였다. 이만큼 단어가 삭제되면 결과적으로 신약성경에서 베드로전후서에 상당하는 분량이 없어지게 되며 따라서 현대 역본을 읽게 되면 그만큼 짧은 성경을 읽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한편 이들은 단순히 단어만 변개시킨 것이 아니라 성경의 내용 자체를 변개시켜 뉴에이지 신학을 수용하고 있다. 우리는 수학에서 평면이나 입체를 배울 때 두 개의 사물이 같은가 다른가를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공리를 이용한다.
    주어진 어떤 것과 동일한 두 개의 사물은 서로 동일하다.
     
    이 규칙을 성경 번역에 적용해 보면 NIV든 NASB든 그 역본들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어 본문이 「공인본문」과 5,600 군데나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지난 1900년 동안 보존해 온 「공인본문」에 근거를 둔 KJV와 절대로 동일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NIV나 NASB를 손에 들고 이것이 영어로 보존된 ‘100%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음 장의 표는 신약성경의 각 책에서 200여 구절을 발췌하여 여러 역본의 순수성을 비교한 것이다. 이 표의 매 오른쪽 열은 비교대상인 200 구절 중에서 변개된 구절 수를 나타내는데 「공인본문」에 기초한 「루터 성경」과 「흠정역 성경」을 빼고는 모든 현대 역본들의 부패 정도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독자는 「박사성경」(정동수 저,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 출간)을 참조하기 바란다.
    <1.6> 역사적 증거들
    「공인본문」(TR)이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본문이라는 것은 다음의 사실들이 증명한다.

    A. 주후 33-100년 사이의 사도 교회 시대
    (1) 초기의 사도교회들이 다 TR을 사용했다.
    (2) 팔레스타인에 있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
    (3) 안디옥의 시리아 교회가 TR을 사용했다.

    B. 주후 100-312년 사이의 초대 교회 시대
    (4) 페시타 역본이 TR을 사용했다.
    (5) 파피루스 66번이 TR을 사용했다.
    (6) 북이탈리아의 교회가 TR을 사용했다.
    (7) 남프랑스 골 지방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
    (8) 영국의 켈트 교회가 TR을 사용했다.
    (9)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교회가 TR을 사용했다.
    (10) 왈덴시아파 사람들의 교회 이전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
    (11) 왈덴시아파 사람들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
    (12) 4세기의 「고딕역」이 TR을 사용했다.
    (13) 4, 5세기의 ‘W 코덱스 사본’이 TR을 사용했다.
    (14) 5세기의 ‘A 코덱스 사본’이 TR을 사용했다.
    (15) 5,255 개의 사본 중 5,210 개의 사본이 TR을 사용했다.
    (16) 그리스 정교회가 TR을 사용했다.
    (17) 현 시대의 그리스 정교회 역시 오직 TR만을 사용한다.

    D. 주후 1453-1831년 사이의 초기 현대 시대
    (18) 종교개혁 시대의 모든 교회가 TR을 사용했다.
    (19) 1516년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0) 1522년의 「컴플루텐시안 폴리글롯」이 TR을 사용했다.
    (21)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2) 1525년의 「틴데일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3) 1535년의 프랑스의 「올리베땅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4) 1535년의 「커버데일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5) 1537년의 「매튜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6) 1539년의 「태버너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7) 1539-1541년의 「그레이트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8) 1546-1551년의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TR을 사용했다.
    (29) 1557-1560년의 「제네바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30) 1568년의 「비숍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31) 1569년의 「스페인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32) 1598년의 「베자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33) 1602년의 「체코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34) 1607년의 디오다티의 「이탈리아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35)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이 TR을 사용했다.
    (36) 1624년의 엘제비어(혹은 엘지버) 형제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TR을 사용했다.
     

    <1.7> 사본들의 증거
    1967년도까지 존재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본의 수는 모두 5,255 개이다. 이런 사본들에는 81 개의 파피루스 사본과 267 개의 대문자 사본, 2,764 개의 소문자 사본, 2,143 개의 기도문(혹은 교독문) 등이 있다. 다음의 표는 이런 사본들이 어떤 본문을 지지하는지 잘 보여 준다. 이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현존하는 사본들의 99%가 「공인본문」을 지지하며 이 사실은 초대교회로부터 하나님의 교회가 오직 「공인본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필사하여 각 지역에서 사용했음을 잘 보여 준다.

    지금까지 수정된 적이 없는 「공인본문」과는 달리 1898년에 처음 만들어진 「네슬레판」은 1992년까지 무려 26번이나 판을 개정하여 평균 3.1년마다 새로운 판이 개정되어 나왔다. 이 사실은 여러 신학자들이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성경을 뜯어고치려 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고정되어 더 이상 가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배도한 무리들이다. 
     
    특히 알란드(Kurt Aland)는 배도한 독일인으로 독일의 뮨스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공인본문」을 믿지 않으며 「네슬레/알란드판」 편집위원회의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의 90% 정도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하여 보관하고 있다. 그는  「공인본문」과 일치하는 사본을 발견할 때면 무조건 그것을 무시하고 그 사본이 과거의 어떤 사본을 베낀 형편없는 사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 하며 사본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TR을 지지하는 사본들은 모두 한 덩어리로 묶어 그 개수에 상관없이 단 하나의 증거로만 사용하려 한다.
    이들이 이 같은 철학을 수용한 데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주후 250~350년 사이에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들의 회의가 열려 자기들이 선호하는 사본들을 모두 없애고 「공인본문」을 지지하는 사본들만을 간직하게 되었다는 엉뚱한 이론을 폈는데 알란드와 그의 동료들은 바로 이같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상상 속에서 꾸며 낸 헛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으며 날조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로마 카톨릭 주의에 심취되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영성주의자들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지금은 로마 카톨릭 소수 사본에 근거를 둔, 즉 전체 사본 중 1%에 해당하는 사본에 근거를 둔 NIV, NASB 등의 현대 역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성도들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있다.
     
    2.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우수성

    <2.1> KJV 번역자들의 우수성
    KJV 번역에 참가한 사람들은 약 57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학문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고 관료나 학자가 되려면 반드시 이 두 개의 언어에 정통해야만 했다. 이들의 원어 실력은 다음과 같이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15, 16세기경 조선 왕조에서 출세를 하려면 한문 실력이 뛰어나야만 했는데 따라서 가문 있는 집안에서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의 중국 고전을 읽고 외우고 공부하게 했다. 자, 이렇게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을 읽어 술술 외는 사람과 성장한 뒤 대학에 가서 중국 고전을 공부한 20세기의 중국 고전 학자와 과연 누가 더 중국 고전에 정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영어 성경 번역자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려서부터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경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고,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읽고 술술 외우는 사람과 장성하여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를 배운 현대 학자와 과연 누가 더 원어에 정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오락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20세기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15, 16세기에 학식 있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오락이 그리스어 놀이였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과연 현대 원어학자들을 KJV가 출간되던 시대의 학자들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자그마치 그 당시 최고의 석학 57명이 모여서 번역 작업을 했다면 과연 누구를 신뢰해야만 할 것인가?
     
    KJV 번역자들이 기술한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드리는 글」(The Translators To the Reader)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단순히 학자가 아니라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1) 이들은 성경을 읽는 것이 사람의 본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진리가 없는 경건함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경 기록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경 기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자들은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거나 그것에 능숙하지 못한 자들은 책망을 받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
     
    (2) 이들은 성경이 무엇이며,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성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영적 싸움을 위한 무기 창고로서 거기에는 방어용 무기도 있고 공격용 무기도 있다. 바로 이 말씀으로 우리는 구원받고 대적과 싸워 이길 수 있다. 이것은 채소가 아니라 나무이며 또한 매달 새로운 열매를 내는 생명의 나무이다. 그 열매는 음식이 되며 그 잎은 약이 된다. 성경은 단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혹은 한두 번 먹으면 없어지는 만나 단지나 기름병이 아니며 누구나 배부르게 할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양식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 성경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은 행복한 자요, 더욱이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는 자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3) 이들은 성경을 올바르게 번역해야만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4) 이들은 성경을 읽고 그 안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서 비늘을 제거해 주시는 분이다. 또한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셔서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고, 우리의 욕구를 자제하게 하사 우리로 하여금 금이나 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부디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을 경멸하지 말라. 돼지처럼 귀한 보물을 밟지 말라. 또한 개처럼 거룩한 것을 물어뜯지 말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분께서 손을 내미사 당신을 부를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 하나님, 우리가 주의 뜻을 행하기 원하나이다.’ 라고 대답하라.
    <2.2> NIV, NASB 등 현대 역본 번역자들의 열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책을 저술하는 작가든,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든, 혹은 도자기를 만드는 예술가든 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성경은 열매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말씀이 구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확신하고 번역에 임한 KJV의 역자들의 작품과 성경을 단지 하나의 고대 작품으로 혹은 신화 정도로 이해하고 구원의 확신이 없이 자기 뜻대로 성경을 번역한 NIV 등 현대 역본들 편집자들의 작품이 어떨지 금방 판단해 볼 수 있다. 이제 현대 역본 편집자들과 이들에게 본문을 제공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사상 및 생애를 간단히 살펴보자.

    • 「그리스어 신약성경 수정본문」의 저자인 호르트의 창세기관, 진화론관, 연옥관, 속죄관, 세례관 등을 살펴보자.

    나는 에덴동산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또한 아담의 타락도 영국의 시인 코울릿지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그의 후손들의 타락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윈에 대해 읽어 봤소? 그 이론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소. 어찌 됐든 그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오…그러나 나의 주의를 가장 많이 끈 책은 다윈의 것이요. 비록 그것에 대해 남들이 무어라 할지는 몰라도 그 책은 우리가 동시대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 책이오. 만일 그렇다면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오.

    나는 모리스가 말로써 연옥을 부인했다는 것에 대해 당신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의 세 가지 주요한 논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확고부동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1) 영원이 기간과는 상관없다; (2) 회개의 힘은 현생에만 제한되어있지 않다; (3)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회개하든 회개하지 않든 영원은 드러나지 않는다. 현 시대 사람들이 이 중 둘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즉 연옥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신학을 영적이 아닌 것으로 즉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기까지 고통 당하셨다는 것보다 더 성경적이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그것은 거의 보편적 이단 교리의 한 측면이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영아 세례를 통한 중생’을 가장 중요한 교리로 지킨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관점이 복음주의자들의 관점보다 더욱더 나를 진리로 가깝게 인도하는 것 같다…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와 그의 몸의 일원으로서 하늘나라의 상속인임을 보장해 준다.
     
    • 「그리스어 신약성경 수정본문」의 또 다른 저자인 웨스트코트의 창세기관, 기적관, 기도관 등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창세기의 첫 세 장이 문자 그대로의 역사를 제공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눈을 뜨고 그것을 읽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누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세 장의 말씀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여 주고 있음을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인간적으로 말해서, ‘태양의 떠오름’에 대해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당신이 느낀다면, 모세와 다윗 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사용했던 것처럼 분명히 그분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셨어야만 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사실 나는 시(詩)가 역사보다 수 천 배나 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적 이야기 같은 것은 읽어 본 적이 없으나 직관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서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발견했다.
    나는 많은 학식과 경험을 가진 몇몇 다른 감독들과 의논했고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에 관하여 우리 교회가 취할 태도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공식예배에서 교회 전체와는 별개로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금지해야만 한다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러나 개인기도 때에는 그러한 제약을 두지 않았다.
    • NIV의 주 편집자 팔머(Edwin Palmer)는 자신이 편집한 NIV가 가르치는 이단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랑한다.
    NIV는 현재 몇몇 정통 기독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큰 오류, 즉 ‘거듭남이 오직 믿음에 달려 있으며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잘못된 개념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분명한 구절은 사실상 성경에 거의 없다.
    • 자신의 동료들에 의해 ‘서방 세계와 동방 세계의 중보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NASB의 창시자는 「동서양 저널」(East-West Journal)이 ‘새 시대 운동과 동서양의 합성을 위한 시작’이라고 칭했던 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 새 역본의 편집자는 자신이 변개시킨 믿음의 신조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변화들 - 즉 자신이 변개시킨 것들 - 은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것들은 반드시 새로운 신학의 보물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 ‘새’ 역본 편집자들이 그리스어 어원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한 참고 사전은 히틀러의 추종자(루돌프 키텔)가 집필한 것으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전쟁에 관련된 소송에 회부되어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인 것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 NIV 편집위원회의 몰렌코트 박사(Dr. Virginia Mollencott)는 “동성연애(Lesbianism)는 항상 나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왔다.”고 자랑스레 말한다(1991년 6월호 성공회 「위트니스」지). 그녀가 동성연애를 찬성하기 위해 저술한 「동성연애는 내 이웃인가?」라는 책은 성경이 ‘매춘’, ‘폭력에 의한 갱들의 강간’ 등과 같은 형사상의 범죄 행위들만을 책망하며, ‘동성끼리의 진실한 동성연애’는 책망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으며 사실 그녀의 이 같은 사상이 그대로 NIV에 반영되어 있다.
    결국 ‘의’(義)를 ‘부’(副)로, ‘십자가’를 ‘왕관’으로, ‘새로운 창조’를 ‘모방’으로 대치시킨 ‘새로운’ 역본들로부터 ‘새로운’ 기독교가 태동되어 나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성경 역본들의 사악한 열매이다.
    더 자세한 것은 같이 올린 PDF 파일을 보기 바랍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