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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 조회수 : 1784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년 3월 9일 18시 33분 17초
  • 안녕하세요?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께서 시간을 들여 귀중한 글을 번역해 주셔서 함께 나누기 위해 올립니다.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영미권의 양식 있는 크리스천 지성인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샬롬
     
    패스터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
     
    킹제임스 성경은 현대 구어체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언어를 단지 구식 언어로 일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스타일은 대부분 번역의 대본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히 번역함으로써 생겨났기 때문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God's Secretaries>의 저자 Adam Nicolson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맡았던] 학자들은 성경의 언어를 자기들이 알고 있고, 집에서 사용하던 영어로 끌어내지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들은 외국어가 영어로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가 외국어의 상태에 맞게 밀고 나아가는 형태이다”(211) 라고 말한다. 영어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상태에 맞춰서 번역하는 형태는 원본의 의미와 스타일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글은 킹제임스 성경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단순한 고어가 아닌 단어들과 문법구조 
     
    2인칭 대명사 구별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이 고어를 사용한다고 여기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thee’와 ‘thou’ 때문일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이러한 대명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2인칭 단수 (thou, thee, thy, thine)와 2인칭 복수 (ye, you, your, yours)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이러한 구분을 한다.
     
    성경을 자세하게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에 사용된 대명사를 세심히 살펴보면, 잘못에 빠진 사람을 회복 시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ye" which are spiritual(영적인 ‘너희’))의 의무이지만, 개개인은 자기 자신의 진실성(considering "thyself"(‘네 자신’을 살펴보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명사의 구별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이 구절에서 주는 공동의 의무와 개인의 의무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없다. 대명사의 인칭 구별이 중요한 구절에는 다음이 있다: 출애굽기 4:15, 출애굽기 29:42, 사무엘하 7:23, 마태복음 26:64, 누가복음 22:31-32, 요한복음 3:7, 고린도전서 8:9-12, 디모데후서 4:22, 디도서 3:15, 빌레몬서 1:21-25 등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와 같은 많은 현대 언어들 역시 단수 2인칭 대명사와 복수 2인칭 대명사의 구별을 유지한다. 게다가, “thou”와 “ye”가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이러한 대명사들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찬송(심지어 현대 찬양에서도)을 드리거나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에는 여전히 그 단어들을 사용한다. “Be thou my vision”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찬송의 제목에서,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찬양의 가사인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서 “thou” 와 “ye”를 사용하여 찬양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하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들의 국가인 “오 캐나다”를 부르는데 그 곡의 1절에서 “thy”가 한 번, “thee”가 네 번이나 나온다. 이 곡은 1980년 7월 1일에 캐나다의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에 캐나다 어린이들이 “thy”와 “thee”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thou”와 “ye”가 일상적 대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노래와, 산문, 또는 성경에서 훌륭한 문법적, 운율적, 문체적 이유와 함께 계속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이 구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인용부호의 부재
    킹제임스 성경은 인용부호(" ")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의 고어적 기능으로 여겨지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는 성경에서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왜 유익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주어가 있는 명령문
    명령문은 명령을 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주를 찬양하라”라는 문장은 명령문이다. 요즘에는 명령문에서 주어가 종종 사용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너, 주를 찬양하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만약 킹제임스 성경이 위와 같이 표현을 한다면, "Praise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양하라) 또는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와 같은 문장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현대 독자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현대 문법 책들에서는 명령문의 주어가 항상 “you(너)”이기 때문에 주어를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다. “you(너)”에는 단수인 “너”를 나타내는 “thou”와 복수인 “너희”를 나타내는 “ye”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은 중요할 수 있다. 
     
    시편 104편 35절의 “너는 주를 찬송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자기의 혼)에게 “Bless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송하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thou”가 사용되었으므로 화자의 명령인 “찬송하라”는 화자 자신의 혼에게만 주는 명령이 된다. 하지만, 그 후에 화자는 다른 이들에게도 주는 명령인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라고 이어 말한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명령문이 대상을 가리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ESV에는 “Bless the LORD, O my soul! Praise the LORD!”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 마치 화자가 자신의 혼에게 주를 찬양하라고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역개정도 마찬가지로 같은 구절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라고 번역하였다(이해를 돕기 위해 개역개정 구절을 임의로 추가하였음). 킹제임스 성경의 화자는 명백하게 다른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마무리 짓는 반면, ESV의 화자는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결론짓는 듯 하다. 그러므로, 명령문에서의 인칭대명사 사용은 문법적, 그리고 의미론적인 목적을 행한다.
     
    호격(사람 등을 부를 때 사용하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형태)의 사용  
    호격은 2인칭 대명사인 “you”를 사용하는 대신에 특정 개인을 식별하는 명사를 사용하여 그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마태복음 6장 9절 말씀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 좋은 예이다. 요즘 사람들은 “Our Father, who ARE in heaven”이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Our Father, who IS in heaven”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킹제임스 성경의 이러한 특이성은 호격의 충실한 번역에 근거한다. 이것은 고어가 아니라 호격을 사용하는 그리스어를 충실히 번역한 결과이다. 즉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보다 정확한 동의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사용되는 고어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 현대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현대식 번역보다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6장 73절에 나오는 "bewray”(비밀을 누설하다)라는 단어는 고어처럼 느껴진다. 전체 구절은 "And after a while came unto him they that stood by, and said to Peter, Surely thou also art one of them; for thy speech bewrayeth thee.”(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이다. 현대 역본 ESV에는 이 구절이 "After a little while the bystanders came up and said to Peter, "Certainly you too are one of them, for your accent betrays you."라고 번역되어 있다. "Bewray"라는 단어는 “betray”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Bewray"는 "divulge”(비밀을 알려주다)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조금 더 미묘한 단어이다(메리암 웹스터 사전). 그러므로 "bewray"의 전체적 의미는 “누설함으로써 배신하다”이다. 마태복음 26장 73절은 베드로가 갈릴리에서 했던 말이 그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드러냈고”,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을 “배신한” (연루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 26장 73절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킹제임스 성경과 ESV가 모두 “evident”(분명한)라고 번역한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나오는 단어, δηλον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뜻을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의 “오래된” 단어를 접했을 때, 그 단어를 단순한 고어로 무시해 버리기 전에 그 고어가 더 정확한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법률용어의 사용  
    성경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증언) 혹은 “계약”이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법률문서이다. 성경 안의 몇몇 책들이 문자 그대로 법률문서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법률문서”라는 말은 “러브레터”와 같이 따뜻하고 가벼운 느낌(몇몇 사람들이 성경을 묘사하듯)을 암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 사람과 더 의미 있는 법적 계약의 관계로 들어갈 확률이 크다. 결혼은 법적 계약이다. 가족의 재산 상속도 유언과 신탁을 통해 부여된다. 가벼운 사람은 언제든지 “러브레터”를 쓸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자만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혼인 증명서나 자신의 자산을 수여하는 유언장을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저 “러브레터”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체결된 그분의 언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thereof, thereby, therein, hereby, herein, whereof, whereby, wherein, wherefore(그것의,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안에, 이것에 의하여, 여기에, ~하는, 그 점에서, 그러므로)와 같은 법적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성경이 참으로 두 가지 ”증거”의 집합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부수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정확한 법률 용어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미권의 거의 모든 법적 서류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결코 고어가 아니다. 
     
    영국식 단어와 숙어
    일부 단어들과 숙어는 북미인들에게 고어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영국인들이나 영연방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북미 이외의 국가에도 그러한 영국의 단어들과 숙어를 이해하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3장 3절에 나오는 “plaiting”(땋은 것 혹은 엮은 것)이라는 단어는 북미인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영국인들에게는 친숙하다. 게다가, 일부 영국 단어들은 인기 있는 영국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북미인들에게도 익숙해질 가능성이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25절에 나오는 “schoolmaster”(훈육 선생)를 예로 들어보면, 그 단어는 북미보다는 영국에서 훨씬 더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해리포터 소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기는 하지만)의 성공과 함께 “schoolmaster”는 북미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말하듯이 언어는 항상 유동적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래된” 단어들도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 한 편에서 사용됨으로써 다시 표준어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 단어를 구식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어의 모호함 보존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which”(어떤)를 사용한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용례를 문제로 간주한다. 하지만, 문맥에서 사물이 언급되는 것인지, 사람이 언급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을 경우에는 “who(누구)” 대신에 “which”를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베드로전서 1:23절,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에서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부분은 “the word”(말씀)이나 “God”(하나님) 둘 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뜻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영원히 거하시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리스어 자체에 이러한 모호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도 그것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전문용어로 보존된, 고어라고 추정되는 단어들
    고어로 간주되는 일부 단어들은 실제로 특정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전문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로마서 1장 13절에 나오는 “let”(막혔도다)이 킹제임스 성경(여기에서 사용된 “let”은 “방해를 받은”이라는 뜻임)에 나와있는 고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권 노트에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국경수비대, 변호사,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같이 이민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이러한 사실은 “let”이 고어이기 보다는 “전문용어”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테니스를 할 줄 알거나 경기를 보는 사람은 테니스 공이 네트에 닿거나 스침으로 플레이 진행이 방해되었을 때 “let”이 선언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let”과 같은 단어는 오늘날에는 흔하지 않을지 몰라도 완전히 쓸모가 없는 단어가 결코 아니다.
     
    시적 특징
    구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부 문장구조는 사실 시적 효과를 위해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사무엘상 30장 31절의 "...all the places where David himself and his men were wont to haunt”(또 다윗 자신과 그의 사람들이 자주 가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구문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wont to haunt"는 운이 맞기 때문에 NASB의 “accustomed to go” 구문보다 더 시적이다. 또한, 유다서 1장 8절, "despise dominion”(통치권을 멸시하며)도 “최신식”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구문이다. ESV에는 "reject authority"라고 나와있지만, "despise dominion”은 두운법을 사용한 구문이다. 사실상 1장 8절의 전체 구절, "...these filthy dreamers defile the flesh, despise dominion, and speak evil of dignities”(이 추악한 꿈꾸는 자들도 육체를 더럽히고 통치권을 멸시하며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는도다)는 초성 알파벳 D가 5번 반복되는 두운법을 사용한 구절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보여 주는 최상의 시적 표현이다. 알파벳 D는 입 안에서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터뜨려 소리를 내는 자음인 파열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비난의 말을 기관총처럼 내뱉는 유다서 1장 8절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자음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운율과 두운이 성경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시적 표현은 말씀을 암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고어인 것들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
    킹제임스 성경에는 “spake”와 “shew”같이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를 가진 단어들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특별히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현대에 사용되는 같은 의미의 단어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문맥에서 누구라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친숙한 고어들
    일부 단어들은 고어적인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단어들이다. 그러한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thou”는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뜻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고 나면, 이 고어가 다른 현대 단어들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thou” (단수 2인칭 대명사)와 “ye” (복수 2인칭 대명사)와 같은 단어들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들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친밀감을 준다. 기독교인이 현대 역본 대신에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우지 않고서도 단수와 복수의 2인칭 대명사의 문법적 구분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생소하지만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는 고어들
    킹제임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고어들은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다. 사사기 3장 21절에서 22절이 좋은 예이다. “And Ehud put forth his left hand, and took the dagger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his belly: And the haft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upon the blade, so that he could not draw the dagger out of his belly;”(에훗이 자기의 왼손을 내밀어 자기의 오른쪽 넓적다리에서 칼을 빼서 그의 배를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갔고 기름이 칼날에 엉기므로 그가 칼을 그의 배에서 빼지 못하였으며…) 이 구절에서 “haft”는 고어이다. 하지만, 문맥을 통해 그 단어가 칼날의 반대편에 있는 검의 한 부분임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고어들은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구절들에 자주 등장한다.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없는 생소한 고어들
    이제 문맥에 의해서 식별될 수 없는 고어들만 남아있다. 그러한 고어들은 이해를 하는 데에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은 생각하는 것만큼 킹제임스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 쓰인 낯선 고어들은 “listeth”(마음대로)(요3:8)과 “wist”(알지)(요5:13)이다. “Lust”와 연관된 “to list”는 “to desire”(열망하다)라는 뜻이며, “wise”와 연관된 “to wist”는 “to know”(알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이 두 단어들보다 더 많은 고어들을 담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문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생소한 고어들도 다시 친숙한 단어가 될 수 있다. 돼지 독감이 발발하기 전에는 북미의 많은 어린이들이 “swine”(돼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NIV와 ESV는 “swine” 대신에 “pigs”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돼지 독감에 대한 과대 광고들로 인해 “swine”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맥에서 의미를 찾기 힘든 낯선 고어들도 다른 단어들로 대체하기 보다는 뜻을 학습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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