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즉 일대일 번역의 의미
‘형식적 일치’와 ‘기계적 일치’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오늘 한 분이 전도서 3장 10절의 travail에 대해 질문하셔서 잠시 답을 드립니다.
또한 동시에 성경 번역 시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의 일대일 번역의 의미가 무엇인지 즉 ‘형식적 일치’와 ‘기계적 일치’의 뜻이 무언인지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1. 동일 단어 번역 문제 ---------
저는 얼마 전부터 흠정역과 영어 KJB를 같이 읽고 있습니다. 흠정역 전도서 3장 10절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 안에서 단련 받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KJB 3장 10절 I have seen the travail, which God hath given to the sons of men to be exercised in it. 두 구절을 비교했을 때, 흠정역 성경에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 되었는데 해산이라는 뜻이 KJB의 어디에 해당하는지 궁금해서 문의를 드립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제가 읽은 ‘그리스도예수안에’의 킹제임스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은 뜻이 정확하고 가장 KJB와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했을까 생각하니 감사의 마음이 절로 밀려옵니다.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중요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럽게 질의해 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수고를 인정받으면 최고의 기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좀 더 성경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알아가며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또한 성도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문의하신 분은 아마도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개역성경(개역개정 포함)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사전을 보니 ‘노고’는 ‘힘들여 수고하고 애씀’을 뜻합니다.
일단 제가 주로 아래아 한글을 쓰므로 거기 내장 사전(도구 항목의 사전 모음)에 있는 travail의 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ᛜtrav·ail [trǝvéil, trǽveil] n. 산고(產苦), 진통; 고생, 노고; 곤란; (흔히 pl.) 노작(勞作).
travail에 대해 옥스퍼드 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 육체적 정신적 수고 또는 아픔, 고생되는 일, 이런 것들의 결과
2. 해산의 고통 라이프성경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립니다.
travail: 해산의 고통, 아이를 낳을 때 산모가 겪는 고통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97249&cid=50762&categoryId=51387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travail은 ‘노고’도 되고 ‘해산의 고통’도 됩니다. 그러므로 둘 중 하나로 번역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생의 쓰라린 고통을 이야기하는 전도서의 관점에서 travail이 그냥 ‘힘들여 수고하고 애씀’보다 해산할 때 산모가 겪는 고통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이를 좀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전도서 1장 13-14절을 보겠습니다.
13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에 관하여 찾아보고 탐구하려고 내 마음을 쏟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이 쓰라린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것으로 단련 받게 하셨느니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13절의 ‘쓰라린 해산의 고통’(sore travail)과 14절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서로 매칭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개역성경은 이와는 전혀 문맥이 다릅니다.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3절의 수고와 14절의 바람을 잡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
https://keepbible.com/BQNA21/View/4KR 흠정역은 창38:27, 사23:4, 요16:21 등에서는 travail을 ‘해산의 고통’이라는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앞뒤 문맥이 아기 낳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출18:8, 민20:14 등에서는 고난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떤 단어를 어떤 단어로 번역하느냐는 문맥에 의해 결정되며 그 결과는 위에 보여 드린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의 예처럼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단어라도 번역자가 문맥을 잘 파악하여 번역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2.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단어 대 단어로 즉 형식적 일치를 이루도록 번역한 성경이다.
전도서 1장 13절을 보면 ‘sore travail’(쓰라린 해산의 고통)이 나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ra’(스트롱 번호 7451)와 ‘inyan’(6045)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것이 잘 드러나지 않게 의역하였습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travail’이라는 명사는 전도서에 8번 나옵니다(1:13; 2:23, 26; 3:10; 4:4, 6, 8; 5:14).
흠정역은 이것을 모두 ‘해산의 고통’으로 번역하며 일관성을 유지하였습니다. 반면에 개역성경은 수고, 노고, 재난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같은 책에서 같은 단어를 일관성 있게 번역해야만 원 저자가 의도한 그 책의 뜻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8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누구의 빵이든 거저먹지 아니하였으며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수고와 해산의 고통 속에서 밤낮으로 일하였나니
KJB: Neither did we eat any man's bread for nought; but wrought with labour and travail night and day, that we might not be chargeable to any of you:
개역: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여기에는 ‘labour and travail’이 나옵니다. 흠정역은 이것을 ‘수고와 해산의 고통’으로 번역하였고 개역은 ‘수고하고 애써’로 번역하였습니다. 역시 둘 다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으로 번역하면 사도 바울의 사역이 산고처럼 힘든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뜻과 함께 그가 사람들을 구원시키는 일이 아이를 낳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뜻을 다 포함합니다. 사람을 구원받게 하는 일은 말 그대로 해산의 고통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이를 travail로 표현하였습니다.
3. 형식적 일치와 기계적 일치의 큰 차이
번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번역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단어를 기계적으로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단어 대 단어’의 일치 번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등을 뜻을 왜곡한 채 인용합니다. 즉 그 서문에서 번역자들이 기계적 일치를 하지 않았다고 기술하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어 대 단어를 번역한 성경이 아니라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이것은 'word for word'라는 영어 말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무지의 결과입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의 모든 단어를 영어로 ‘일대일 대응’이 되게 번역한 성경 즉 형식적 일치를 이룬 성경입니다. 즉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등이 원본과 같습니다. 다만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을 하면 반드시 추가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의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는 형식적 일치를 뜻합니다.
성경 번역 기법: 형식적 일치 vs 동적 일치
https://keepbible.com/KJB2/View/2WH 그런데 이 경우도 히브리어/그리스어의 한 단어가 영어에서는 두 단어로 혹은 히브리어/그리스어의 두 단어가 영어에는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원어와 수용 언어가 다르므로 번역에서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즉 히브리어가 5단어라고 해서 영어로 꼭 5개가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주어, 동사, 목적어, 수동태, 도치 등은 원래대로 유지되며 4개나 6개 혹은 7개 단어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단어 대 단어의 번역 즉 형식적 일치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그리스어의 같은 단어를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단어를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번역하는 것을 영어로는 ‘word for word equivalence’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word for word’ 라는 말도 형식적 일치인지 기계적 일치인지 잘 구분해야만 합니다.
기계적 일치는 구글 번역기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하는 일이고 그것은 심지어 번역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한 단어에는 몇 가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번역자들은 앞뒤 문맥을 보고 같은 단어라도 달리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히브리어/그리스어의 같은 단어를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번역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키 백과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번역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에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명사 travail은 신구약 성경에 총 31회 나옵니다(구약 26회, 신약 5회). 여기서 맨 오른쪽의 숫자는 스트롱 번호입니다. 구약의 경우 3205, 8513, 60045, 5999, 2342, 2470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 다른 원어입니다. 그런데 이 원어들에는 다 해산의 고통, 수고, 노고 등의 뜻이 있으므로 번역자들은 그중에서 문맥을 보고 원어는 달라도 다 travail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킹제임스 성경이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번역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거나 알면서도 마치 약점인 것처럼 부각시키려는 의도입니다. 만일 그런 단어들을 삭제했다면 그것은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번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형식적 일치를 이루지 않는 번역입니다. 하지만 그런 예는 킹제임스 성경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성경 중에서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번역을 가장 많이 이룬 성경입니다.
전도서만 보더라도 travail에 해당하는 원어는 6045와 5999입니다.
전3;10의 6045의 원어 사전 뜻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6045 @y:nÒ[i `inyan {in-yawn'} 6031에서 유래;‘노고’, 즉(일반적으로)‘고용’, 또는(특히)‘용무’:-사무, 고생 전4:4의 5999의 원어 사전 뜻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5999 lm;[; `amal {aw-mawl'} 5998에서 유래;‘수고’, 즉 ‘진저리나는 노력’;따라서(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걱정하다’:-불만, 통한, 사악, 고역, 과실, 불쌍한, 불행, 고통, 아픈, 완고함, 슬픔, 노고, 고생, 싫증나는, 사악함 보시다시피 이 둘은 다 엄청난 수고와 고통을 뜻합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이것을 해산의 고통과 같은 의미로 보고 ‘travail’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대응을 기계적 일치로 보면 번역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번역과 반역 사이에서: 기계적 일치 번역은 안 된다
https://keepbible.com/KJB6/View/2Zh 4. 단어 대 단어를 기계적 일치로 여기면 번역을 망친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루아흐(스트롱 번호 7307)를 봅시다. 이것은 영, 바람 등으로 번역됩니다. 창세기 1:2; 6:3 등의 영(靈)이 바로 루아흐입니다. 출10:13, 19에는 동풍과 서풍이 나옵니다.
모세가 이집트 땅 위로 자기 막대기를 내밀매 {주}께서 그 땅에 동풍(東風)을 가져오사 그 온 낮과 그 온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어 동풍이 메뚜기들을 몰아오매
자 이런 부분을 단어 대 단어의 기계적 일치를 위해 동영(東靈), 서영(西靈)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모든 영어 성경은 물론 개역성경까지도 이를 다 동풍, 서풍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의 기계적 일치를 일대일 대응 번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닙니다.
자 그러면 우리말 성경으로 이런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spirit은 대개 ‘영’으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기 5장 1절의 spirit은 영으로 하면 말이 안 됩니다.
흠정역: 요르단 서쪽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모든 왕과 바닷가의 가나안 족속의 모든 왕이 우리가 건널 때까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요르단의 물들을 마르게 하신 것을 들었을 때에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더 이상 정신이 없었더라.
KJB: And it came to pass, when all the kings of the Amorites, which were on the side of Jordan westward, and all the kings of the Canaanites, which were by the sea, heard that the Lord had dried up the waters of Jordan from before the children of Israel, until we were passed over, that their heart melted, neither was there spirit in them any more, because of the children of Israel.
흠정역 맨 끝의 “정신이 없었더라”의 정신은 영어로 spirit(스트롱 번호 7307, 루아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이 없었더라”라고 번역하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영어에서는 spirit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으므로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면 되지만 우리말에서는 spirit의 또 다른 뜻인 정신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개역성경 역시 이것을 정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5.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형식적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한 성경이다. 흠정역과 개역은 뜻이 비슷하지만 흠정역은 단어 대 단어의 형식적 일치를 이루었고 개역은 단어를 삭제하였습니다. 영어의 끝 부분은 ‘neither was there spirit in them any more’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any more’를 보기 바랍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오데(스트롱 번호 5750)이며 뜻은 앞의 neither와 합쳐지면서 말 그대로 ‘더 이상’입니다. 이런 단어는 이미 중학교 영어 시간에 다 배우는 말입니다.
단어 대 단어의 형식적 일치를 이루려면 반드시 any more를 표현해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세심하게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우리말 흠정역도 같습니다. 그러나 개역은 그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형식적 일치를 벗어났습니다. 흠정역의 표현은 ‘여리고 사람들이 그 이후로 계속 정신이 없었다’는 뜻(다 죽었으니까요)이고 개역은 ‘그 당시만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단어 대 단어를 일대일 대응이 되게 번역한 성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한 구절만 그런 것이 아니라 100% 모든 구절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로 완벽히 보존된 성경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흠정역 성경은 이 성경을 우리말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로 신실하게 번역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원어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성도들은 영어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저처럼 번역을 하거나 목사로서 설교를 하거나 성경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다른 용례를 살펴보기 위해 원어나 영어를 참조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이미 컴퓨터로 누구나 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도구는 슈퍼바이블입니다. 이것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딜럭스바이블도 있습니다(아마도 이것은 슈퍼바이블에서 나온 것으로 보임, 형태가 거의 같음). 다만 이것은 몇 년 전에 업데이트를 하면서 소수 본문 원어를 사용하므로 킹제임스 성경과 다른 데가 많습니다. 즉 개역성경이나 NIV와 비슷합니다. 그래도 위에서 제가 보여 드린 것들은 동일함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어를 과도하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원어 소프트웨어)
https://keepbible.com/KJB2/View/2Vx 그래서 심지어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더라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다면 우리말 흠정역 성경을 성실히 연구하고 성경 소프트웨어 등을 잘 활용하여 뛰어난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글도 참조해 주십시오.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요?
6. “이렇게 원전분해가 다 되어 있는데 왜 번역을 해야 할까요?”
원전 분해와 원어 사전은 말 그대로 원어의 뜻을 나열한 것입니다. 이것을 번역자가 앞뒤 문맥을 보고 신학적으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여 문장으로 만들어야 성경이 나옵니다. 이 일을 이루려면 시적인 감각, 수용 언어(자국어) 실력, 문법, 맞춤법 등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클리프 이후로 완벽한 영어 성경이 1611년에 나오기까지 무려 230여 년이 걸린 것입니다(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짐).
알렉산더 스커비가 낭독하는 영어 성경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말 그대로 웅장함과 시적 아름다움의 극치가 드러나 있습니다.
Alexander Scourby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낭독
https://keepbible.com/KJB2/View/2Vz 그래서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반포 이후에는 괄목할 만한 다른 역본이 나오지 않았고 1970년까지 약 360년 동안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으로 구원받고 신학을 정립하고 경건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천주교 소수 본문에 근거를 둔 여러 가지 현대 역본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영국,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 중동, 인도 등 영어권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독보적 성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우리는 번역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나 한두 사람이 망상 속에서 그런 유언비어들을 모아서 기록한 허접한 책의 부정확한 주장 – 심지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드리는 글’ 등을 자기들 편의대로 곡해한 말 - 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독보적 아름다움을 손상시키려는 사람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망상이란 말 그대로 ‘1.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 즉 망념(妄念)이며 2. 근거가 없는 주관적인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의하여 정정되지 아니한 믿음으로, 몽상 망상ㆍ체계화 망상ㆍ피해망상ㆍ과대망상 따위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존귀하게 보존해주신 말씀을 100% 담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의 놀라운 영광을 폄훼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400년이 넘는 검증을 거친 킹제임스 성경의 위용은 그러한 산들바람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