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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B사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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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 역시 공인 본문(KJV 계열)의 고대성과 보편성을 증언하고 있다조회수 : 2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년 5월 24일 19시 54분 35초
  •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 역시 공인 본문(KJV 계열)의 고대성과 보편성을 증언하고 있다

     

    교부들의 인용 외에도,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 역시 공인 본문(KJV 계열)의 고대성과 보편성을 증언하고 있다. 다음은 그 주요한 예들이다.


    첫째, 사본 W(Codex W 또는 Washingtonianus)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모두 포함한 복음서 사본으로, 1906년 아랍 상인이자 수집가였던 C. L. Freer에 의해 이집트 카이로 근처에서 구입되었다. 이 사본은 학자들에 의해 4세기 후반 또는 5세기 초반에 필사된 것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후반부에서 순수한 비잔틴 본문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비잔틴 본문이 4세기 안디옥 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편집된 것이라는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고고학자 그렌펠(Grenfell)은 사본 W의 연대를 시내 사본과 비슷하게 주후 350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사본은 바인드레서 수도원(제3 피라미드 부근)에 소장되어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공인 본문이 이미 4세기 이전에 이집트에 존재했음을 입증한다. 다시 말해, 만일 비잔틴 본문이 안디옥에서 4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그 본문이 곧바로 이집트까지 퍼져서 사본 W와 같은 고대 사본으로 남겨졌겠는가? 그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The Washington Manuscript of the Four Gospels』 (H. C. Sanders, pp. 41, 134)에서도 명확히 지적되고 있다.


    둘째, 사본 A로 알려진 알렉산드리누스 사본(Codex Alexandrinus, 02)은 5세기 초, 즉 주후 410년경에 필사된 것으로 평가되며, 한때 가장 오래된 신약 사본으로 간주되었다. 이 사본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던 키릴 루카르(Cyril Lucar)에 의해 영국 국왕에게 헌정되었고, 현재는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복음서 본문은 전반적으로 공인 본문과 일치하며, 이는 KJV 계열 본문의 고대성과 신뢰성을 지지한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이 사본의 필사 장소는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이나 그 인근, 혹은 이집트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레고리(1907년)와 케년(Kenyon, 1937년)의 판단에 따르면 이 사본은 이집트에서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5세기 초에 이미 공인 본문이 이집트에 존재했다는 또 하나의 확증이다.


    셋째, 고트 역본은 주후 341년경에 울필라스(Ulfilas)에 의해 번역되기 시작한 성경이다. 그는 고트족의 사절로 비잔티움 제국을 방문하였고, 니코메디아의 감독 유세비우스에 의해 고트 지역의 감독으로 안수받았다. 울필라스는 사역지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고트어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는 바티칸 사본이 작성된 350년보다 앞선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 고트어 성경은 사복음서와 바울서신을 포함한 아홉 개의 사본으로 현존하며, 그리스어 비잔틴 본문(KJV 계열)을 번역의 기반으로 삼았다. 케년(F. G. Kenyon), 알란드(Kurt Aland) 등 많은 본문학자들에 따르면, 고트 역본은 당시의 비잔틴 전통 본문에서 거의 그대로 번역되었으며, 현대 그리스어 다수 사본과 본문상 차이가 거의 없다. 선교사였던 울필라스는 회심한 이들에게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성경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최고의 본문을 바탕으로 번역했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사실은 『Handbook to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NT』(Kenyon, 1912, p. 240)에 기록되어 있다.


    넷째, 타티안(Tatian)이 작성한 디아테싸론(Diatessaron, 사복음서 조화)은 주후 170년 무렵에 집필되었다. 그는 사복음서의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 흐름으로 통합하면서 복음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재배열하였다. 그런데 타티안이 사용한 복음서 본문은 오늘날의 KJV 본문과 거의 일치하며, 이는 그의 사본이 다수 전통 본문에 속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타티안은 시리아에 거주하였으므로, 복음서의 자필 원본이나 그에 가까운 초기 사본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환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디아테싸론은 코이네 헬라어 전통의 성경 본문이 2세기 중반에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다섯째, 페시타 시리아 역본(Peshitta)은 주후 170년경에 번역되었으며, 현존하는 사본이 350여 개에 이른다. 이 역본은 당시 시리아 지역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용된 표준 성경이었다. 페시타의 본문은 그리스어 다수 사본, 곧 KJV 계열의 공인 본문과 본문상 큰 차이가 없으며, 이는 페시타가 초기 코이네 헬라어 전통에 기반하였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 역본이 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주장하였고, 에데사의 감독 라불라(Rabbula)가 주후 411년에 이 역본을 편찬했다고 상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역사적 증거가 없이 세워진 가설에 불과하다. 오히려 다음 두 가지 이유로 페시타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이 역본은 주후 440년경에 발생한 시리아 교회의 분열 이전에 두 분파 모두에게 수용되었기에, 그 이전에 권위를 확립했음이 분명하다. 둘째, 페시타에는 그보다 훨씬 앞선 ‘구 시리아어 역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역본은 전통 코이네 계열 본문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페시타가 2세기 후반까지 소급될 수 있으며, 이는 KJV 본문이 초기부터 존재했음을 입증한다.


    여섯째, 시내 시리아 사본(Sinaitic Syriac)은 4복음서를 포함하고 있으며,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루이스 여사와 깁슨 여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사본의 연대는 대략 3세기 초로 추정된다. 버키트(Burkitt, 1904)는 이 사본이 알렉산드리아 본문이나 서방 본문과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인 본문과의 일치가 훨씬 많다는 점을 밝혔다. 예컨대 눅 2:14에서 이 사본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라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KJV 본문과 일치하고, 서방 본문 및 알렉산드리아 본문과는 차이를 보인다. 알란드(Kurt Aland)는 『신약 성경 본문』(p. 194)에서 이 사본이 디아테싸론처럼 복음서 내용을 통합하는 특성을 지녔다고 언급하였으며, 디아테싸론이 코이네 본문을 따랐으므로 이 사본 역시 같은 전통을 반영한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고대 사본들과 초기 역본들, 특히 그 지역과 시기를 달리하는 다양한 문헌들조차 공인 본문, 곧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근간 본문과 깊이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공인 본문이 단지 중세 이후에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2세기부터 4세기까지도 널리 사용되었고 보존되어 왔다는 분명한 역사적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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