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편 12편 7절)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함에 대한 균형 잡힌 사고와 바른 이해가 없으면 성경 신자라는 우리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극단적 주장을 펼 수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 주장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엉뚱하게 믿는 것도 개인의 자유지만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거나 정죄하는 지경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일로 성경 신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이들의 오해를 사는 요소이며, 결과적으로 킹제임스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되는 일입니다.
1611년에 반포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 성경을 손에 들면 원어의 여러 뜻을 두고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뜻이 많이 달라진 원어의 의도를 잘 알기 어려운 이 시대의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 보존에 대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다음의 예를 살펴봅시다.
아모스 4장 4절에는 십일조를 드리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법을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KJB: Come to Bethel, and transgress; at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s; and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and your tithes after three years.
개역: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 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NASB: Enter Bethel and transgress; in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your tithes every three days
킹제임스 성경은 ‘3년’이라고 하고 개역성경은 ‘3일’이라고 합니다. 물론 현대역본 지지자들은 KJB가 히브리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지 않고 ‘3일’을 ‘3년’으로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히브리 단어를 살펴보면 ‘욤’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스트롱 번호가 3117이고 구약성경에 2,300회 이상 나옵니다. 욤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거의 대부분 ‘날’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역본 지지자들은 암4:4에서도 욤은 ‘3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 지지자들은 두 입장을 취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어가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장의 지지자들은 비록 욤이 날을 가리키는 것이 맞지만 이런 경우는 신명기 등의 예를 볼 때 3일이 아니라 3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면서 영어가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고 우기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독보적 우수성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3일이 아니라 3년이 맞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영어가 원어보다 정확하거나 우수해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아무 근거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욤이라는 단어를 ‘년’으로 번역한 셈이 됩니다. 이런 식의 주장을 펴면, 킹제임스 성경 반대자들이 우리를 어리석다고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3일이 아니라 3년이 맞는다고 주장할까요? 그 이유는 욤이라는 히브리 단어에 ‘년’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장 29절에 가보니 이 단어가 ‘년’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흠정역: 어떤 사람이 성벽을 두른 도시 안에 있는 거주하는 집을 팔았으면 그 집을 판 지 한 해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만 한 해 안에 그것을 무르려니와
KJB: And if a man sell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e may redeem it within a whole year after it is sold; within a full year may he redeem it.
여기에도 분명히 동일한 히브리어 ‘욤’이 쓰였지만 그 단어를 ‘날’로 하면 안 되기에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현대역본들은 어떠할까요?
개역: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NIV: If a man sells a house in a walled city, he retains the right of redemption a full year after its sale. During that time he may redeem it.
NASB: Likewise, if a man sells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is redemption right remains valid until a full year from its sale; his right of redemption lasts a full year.
모든 현대 역본들도 여기만큼은 동일한 히브리어를 ‘년’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여기서 자의적인 번역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히브리어 욤의 뜻 가운데 ‘년’이 있음을 알았기에 여기서 정확하게 ‘년’이라 번역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히브리어 욤에는 극히 드물게 사용되긴 하지만 ‘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이런 용례를 알기에 이 구절들의 욤을 정확하게 ‘년’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성경이든, 히브리 문학 작품이든 본래 욤에 ‘년’이라는 의미가 전혀 없는데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욤을 ‘년’으로 번역했다면 그것은 번역자들이 실수를 범하였거나 심한 경우 독자들을 기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성경과 히브리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욤의 용례들을 폭넓게 연구한 뒤 대개 날을 의미하는 욤을 이런 경우에는 ‘년’으로 바르게 번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할 수 있다는 점은 영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도 적용되는 번역의 보편적 원리입니다.
성경에는 용례가 단 한 번 나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다음이 그런 예의 하나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이 구절의 vexation은 오직 전도서에만 10차례 나옵니다(전1:14; 17; 2:11, 17, 22, 26; 4:4, 6, 16; 6:9). 성경에 이 단어의 다른 용례가 없으므로 우리는 vexation에 상응하는 히브리어(스트롱 번호 7469, 7475)가 어떤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개역/NIV 등의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vexation of spirit’을 ‘바람을 잡는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자, 이 경우에도 영어 성경 번역자들이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해서 아무도 뜻을 알 수 없는 그 히브리어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번역했을까요?
아닙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들은 원어뿐만 아니라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과 그 이전 역본들의 역자들은 어떻게 이리 번역하였을까요?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그분들은 히브리 사람들의 작품(대개는 성경 관련 작품)을 읽고 그런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문맥에 의거하여 바르게 성경에 도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영어 성경을 번역하는 누군가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다른 데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은 단어의 정의를 스스로 내려 성경을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 번역된 것은 원어 자체가 그런 뜻을 품고 있고 히브리 사람들의 저작에서 그리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히브리어는 오직 ‘괴롭게 하는 것’으로 번역해야만 정확한 번역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성경들 가운데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만 그렇게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심지어 뉴킹제임스 성경도 ‘바람을 잡는 것’으로 번역하여 불교 사상을 반영하였습니다.
중요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절대로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난센스이며 오류 없이 완전하게 보존된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혹시 주위에 누군가가 이런 주장을 펴거든 속히 그에게서 멀리 도망가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성경과 히브리어/그리스어 용례를 샅샅이 살핀 뒤 모든 원어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손에 들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단어들)이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되어 보존되어 있는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당시 번역 과정을 통해 성경과 히브리어/그리스어 용례를 폭넓게 샅샅이 살핀 뒤 모든 원어를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이 킹제임스 성경 위에 모든 건전하고 바른 신학이 정립되었고 이 성경으로 오대양 육대주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성경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 성경이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는 극단적 주장을 펴는 것은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의 보급과 확산에 방해가 됩니다. 제아무리 동기가 좋더라도 사실을 왜곡한 비뚤어진 그릇에는 진리를 담을 수 없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을 그것이 있을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두고 정직한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바르게 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 숭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극히 바르고 당연한 것도 그것을 주장하고 알리는 사람이 바른 논리와 상식을 가지고 주장해야 상대방에게 바르게 들립니다. 단순히 영한사전에서 뽑아낸 지식으로 영어만을 가지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만약 성경 번역/해석 등이 그리 쉽게 기계적으로 다 될 것 같으면 구글 번역기로 전체 영어 성경을 하루 만에 번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보물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행로가 과격하거나 비상식적이며 비논리적인 주장에 의해 가로 막히지 않도록 우리 모두 맑은 정신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해야겠습니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고전14:20).
샬롬
패스터 정동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