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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흠정역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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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편 12편 7절)

  • <근본역의 부실 번역과 과도한 한자어 사용, 노력 부족> 조회수 : 430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3년 4월 17일 12시 52분 45초
  • <근본역의 부실 번역과 한자어 사용, 노력 부족> 


    안녕하세요?


    성경을 번역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집중해서 읽고 읽고 비교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15년에 걸쳐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는 근본역을 이번에 잠시 살펴보니 몇몇 목사들이 그 긴 기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1. 명백한 오역


    호세아서 14장 9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들을 깨닫겠느냐? 누가 분별이 있어 그것들을 알겠느냐


    KJV: Who is wise, and he shall understand these things? prudent, and he shall know them? 


    근본역: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것들을 깨닫겠느냐? 누가 분별이 있어서 그가 그것들을 깨닫겠느냐


    여기에는 앞에 ‘understand’가 나오고 그 뒤에 ‘know’가 나옵니다.


    이런 단어들은 중학생도 다 아는 것들입니다.


    흠정역, 개역, 카톨릭 성경 등 모든 성경이 앞의 ‘understand’는 ‘깨닫다’로 뒤의 ‘know’는 ‘안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15년 이상 번역했다는 근본역은 둘 다를 ‘깨닫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이런 구절에서는 앞의 ‘who’와 그 다음의 ‘he’가 같은 존재이므로 ‘he’를 ‘그가’로 번역하면 오히려 뜻이 이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흠정역처럼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본역은 앞은 흠정역처럼 하고 뒤 역시 동일한 형태의 글인데도 ‘그가’를 넣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역자들이 영어 구문을 전혀 대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 운율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는 ‘있어’, 뒤에는 ‘있어서’로 해서 통일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서 번역한 뒤 제대로 여러 사람들이 여러 차례 돌아가며 읽지도 않고 통일을 하지 않고 그냥 모아서 출간한 것 같습니다.


    2. 수많은 한자어


    근본역에는 수도 없이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한글 옆에 한자어를 병기하였습니다.


    마27:27을 보면 common hall이란 말이 나옵니다.

    흠정역은 ‘공동 집회장’이라고 쉽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본역은 개역과 동일하게 관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 중에 관정을 알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관정의 한자어도 제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개역: 관정(官), 이 官庭은 ‘관가의 뜰’이라는 뜻입니다.

    근본역: 관정(官), 이 官廷은 ‘고을의 수령’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근본역에 따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고을의 수령에게 데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어려운 한자어는 수도 없이 많으며 다음은 몇 가지 예입니다.

      

    행27:19: 배의 삭구

    유다서 7: 응벌

    출25:30 등: 진설 빵

    수20:5, 9: 불식간, 부지 중

    사9:6: 기묘자

    겔4:3:공성퇴

    학1:4: 판벽하여 꾸민 집

    피조물: 국립국어연구원 사전에도 안 나오는 말, 올바른 말은 창조물이다.


    3. 기타 문법에 맞지 않는 것들


    형용사와 동사를 구분하지 못한 사례들: 그들이 잠잠하였다(행11:18). ‘잠잠하다’는 형용사라 이렇게 동사처럼 쓸 수 없음


    크레테가 아니라 크레타가 표준말이다(딛1:5).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가까이 계시느니라’는 돼도 ‘가까우시니라’는 이 경우 우리말이 아니다.

     

    ‘힙입다’ 앞에는 ‘를’이 아니라 ‘에’가 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힙입어...’ 이런 식으로(‘성원을 힘입어’가 아니라)


    막3:22 통치자를 힘입어, 이런 것은 우리말에 맞지 않는다.


    병행 구절인 눅11:19를 가서 보면 ‘말미암아’로 썼다. 이것은 4복음서 대조를 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내가 주께로부터 남자를 얻었다(창4:1). “...께로"부터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이 아니다. 개역성경 부실 공사의 잔재이다. ‘주로부터’, ‘주에게서’로 써야 한다.


    4. 결어


    이제 이 정도로 하고 나중에 다른 분들이 정리해서 올릴 것입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자유지만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알 수 있게, 문법에 맞게 번역해야 합니다. 에라스무스, 틴데일, 루터 등 성경 번역자들의 소원은 아이들도 성경을 읽고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성경을 내기 위해 평민들의 글로 쉽게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다음은 에라스무스의 말입니다.


    나는 매우 연약한 여인이라도 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스스로 읽고 깨닫기를 바라며 … 그런 말씀들이 모든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뿐만 아니라 터키 사람이나 이슬람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하고 바란다. 나는 또한 쟁기질하는 소년이 쟁기질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옷을 짜는 사람이 옷 짜는 기계 소리에 맞추어 이 말씀들을 흥얼거리며, 여행하는 사람이 이 말씀들을 통해 여행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 우리는 다른 공부를 한 것으로 인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올 때 성경 말씀을 읽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이 귀한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으셨다 다시 일어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 주며, 그분이 바로 우리 옆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Famine in the Lord」, Norman Ward, p.38).


    무슨 책이든 번역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번역이 오히려 반역이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서문에서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 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 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하나님의 은혜와 화평이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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