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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흠정역 성경으로부터 주의 크신 긍휼을 얻은 형제입니다. 흠정역을 읽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11년 정도 되었습니다.   여쭙고 싶은 것은, 흠정역 신약 MP3파일도 메일 출퇴근 길에 듣고 있긴 합니다만,   성경을 읽지 못하는 노약자, 병인, 장애인 등을 위해서도 흠정역 구약 음성 MP3가 제작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앞으로 제작 계획이나 제작 일정이 있으신지 알고 싶습니다.
2015-04-15 13:40:01 | 최형준
오늘은 성경 기록대로 입다의 딸에 관련된 사사기 11장을 읽어 볼까 합니다.   이미 킵바이블에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허락하신 대로 부족하지만 소박한 제 의견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 합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80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94    (삿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떠나 평안히 돌아올 때에 무엇이든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확실히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 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삿 11: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삿 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삿 11: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삿 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위의 성경 기록을 다시 한 번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입다는 무엇이든지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2) 그런데, 그를 맞이한 것은 그의 무남독녀입니다.   (3) 딸은 아버지에게 서원한 것을 자신에게 행하라고 합니다.   (4) 그런데 이때 뜬금없이 입다의 딸은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하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지금 자신의 배를 가르고 각을 떠서 태워 죽이겠다고, 즉 번제 헌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는데 자신이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본인은 시집가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애곡합니다. 대단히 이상하죠? 저 같으면, 그동안 못 먹어 본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는다든가, 여행을 실컷 한다든가, 아니면 정말로 죽기 전에 가서 남자를 안다든가 등등을 하겠습니다.   자~! 성경 기록대로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한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virginity에 즉 ‘처녀로 지내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5) 그녀는 두 달 뒤에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를 알지 아니 하였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삿 11:38) And he said, Go.              And he sent her away for two months:              and she went with her companions,              and bewailed her virginity upon the mountains. (삿 11:39)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And it was a custom in Israel, (삿 11:40) That the daughters of Israel went yearly to lament the daughter of Jephthah the Gileadite four days in a year.   누군가는(?) And는 시간 순서를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모든 것이 And에 맞추어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실제로 38절, 39절에 보면 모든 것이 일의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고, 그 결과 그 딸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뒤에 입다의 딸이 애곡한 것처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이스라엘 딸들이 매년 나흘씩 애곡합니다.   일의 순서를 다시 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1절 첫째로 입다는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34절 그의 딸이 입다를 맞이했습니다. 38절 그의 딸이 산에 올라가 자신의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했습니다. 39절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습니다. 39절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39절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풍습이 되었습니다.   분명 입다는 자신의 서원(번제 헌물로 드리는 것)을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의 딸이 재가 된 것도 아니고, 죽었다는 기록도 성경에 나오지 않고, 단지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입다의 딸이 처녀였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처녀인 것은 단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의 상태를 나타내지만,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행위의 주체가 적극적으로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즉, 이 말은 입다의 딸이 처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음, 즉 남자와 동침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죽은 사람은 처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knew’를(즉 동침을) 할 수는 없습니다. ‘Knew’는 동사입니다. 상태의 ‘was’가 아닙니다.   만약에 입다의 딸이 처녀로서 죽었음을 표시하려면, “그녀는 처녀였다(she was virgin)” 또는 “그녀는 처녀였었다(she had been virgin.)”라고 표현하는 것이 전체 문맥상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형보다 한 단계 앞선 과거완료형을 써서 죽기 전의 입다의 딸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면, 논란의 소지도 없이 입다가 자기 딸을 짐승처럼 불태워 죽였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she knew no man)”고 말합니다.   바로 이 기록이 입다의 딸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명백히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는 위의 성경 기록이 우리의 상식과 모순됨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번제 헌물로 드리면, 당연히 죽여서 태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성경 기록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였음을 우리에게 더없이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성경 기록을 바꾸든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든가 말입니다. 사람을 번제 헌물로(조금 더 정확하게는 ‘번제 헌물을 대신하여’, for burnt offering, ‘as burnt offering’이 아님), 바친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을 죽여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태워 오직 주님께 바치는 번제 헌물처럼 (2) 사람의 전 생애를 주님께 바치는 것이며 (3) 여자인 경우는 남자를 알지 않고 처녀로 주님이 정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사사기 11장을 성경 기록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성경이 읽히나요? 앞 문장인 ‘번제 헌물로’에 너무 집착하시지 말고, 39절 뒤 문장도 같이 읽어 주세요. 37절에서 39절까지 전체문맥이 계속해서 viginity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난해 구절로 분류하는 성경 기록일수록 앞뒤 문맥을 넓게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지식과 지능이 없어도 편견 없이 차분하게 성경을 읽으면 누구라도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능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소박한 나눔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15-04-14 18:28:34 | 홍승대
샬롬..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킵바이블을 통해 큰 유익을 얻고 있는 형제입니다..   다른 주석을 찾아봐도 마땅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에 부득불 아시는 분들이 계실까 하고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다가 불현듯 의문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자들에게 그리할지니라.   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1. 디모데전서는 말그대로 1차적으로는 디모데에게 쓴 서신이고, 2. 디모데가 편지를 수신할 당시에는 아마도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을 것입니다.. 3. 그런데 감독인 디모데에게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에베소 교회에는   감독인 디모데 이외에 다수의 장로들과 특히 이 장로들 중에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장로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현재 장로교 체계 (목사, 다수의 장로, 집사) 가 오히려 성경에 나와있는 교회의 직분체계와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감사합니다..
2015-04-14 15:37:55 | 유해용
안녕 하세요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시고 영감 주셨으며 보존해주신 성경이 킹제임스 영어성경임을 믿으며, 또한 우리말로는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읽기 쉽고 바르게 번역한 성경임을 믿는 사람들이 진주지역에서 6가정 8명의 형제자매가 아래와 같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가까운 지역에 살고 계신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 예 배 : 매주 주일 11:00 ○ 주일 오후모임 : 매주 13:30 ○ 성경공부 : 매주 수요일 20시(5월 6일부터) ○ 장소 : 진주시 칠암동 293-2 건물3층(가칭; 진주소망침례교회) ○ 연락처 :               손형오 010 2586 6484,    정구만 010 8972 5878  
2015-04-13 10:10:22 | 정구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 킵바이블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익히는 모든 형제/자매님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세상은 재창조된 것이라고 믿는 분들의 글과 강의를 접하며 그동안 생각했던 몇 가지를 소박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재창조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세상’이 아니고 ‘세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된 것을 두고는 너무나도 단호히 이것들이 ‘멸망 당한 이전 세상’과 ‘재창조된 현 세상’을 가리킨다고 하며, 그 주장의 토대 위에서 계속해서 다른 성경 기록들까지도 자신들의 믿음에 짜 맞추다가 크게 실족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Through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worlds were framed by the word of God,   so that things which are seen were not made of things which do appear.       히브리서 11장 3절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11장 1절과 2절에 나와 있으며, 3절을 포함하여 뒤따르는 11장의 나머지 구절들 전체가 이 두 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확증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것으로 장로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히11:1-2)         이제 이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3. 믿음으로 장로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위의 내용 중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와 연관된 구절입니다.       3절을 읽어 보면, 두 개의 문장이 나란히 세 가지 내용을 대비하면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비된 부분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아래에 도표화해 보았습니다.               이 구절은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에 의해 지어지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믿음을 통해 깨닫는” 것임을 먼저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기억해야 할 원리, 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온 우주의 모든 것이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things which are seen’이라고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말하기 전에 쓴 바로 앞의 문장에서 등장한 ‘세상들이’라는 단어는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세상들이’에 ‘현 세상’ 외에 (재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옛 세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이미 멸망 당해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보이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사도 바울의 의도와는 맞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여기 나오는 ‘세상들’은 지금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며, 결국 재창조를 믿는 분들이 주장하는 허구의 공간인 ‘옛 세상’을 포함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3절에서 ‘세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뜻은 이미 히브리서 1장 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아들 하나님께서 친히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라고 번역된 영어 단어 ‘world’는 1차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세상 외에도 동물, 식물, 물고기, 곤충, 별들이 거하는 세상들도 다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려면 세상(world)을 세계(world)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수많은 세계들이 있음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즉, 크게는 은하계, 태양계, 자연계, 해저 세계 등으로부터, 인간 세계, 동물 세계, 식물 세계, 광물계 등등 얼마든지 총칭적 용어인 ‘세계’를 세부적으로 나누어 구분해 표현하고 있지요.       그럼 왜 간단히 ‘세상’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을 ‘세상들’이라고 했을까요? 재창조를 믿고 싶은 분들은 “단수를 썼더라면 재창조에 관한 추측이 없었을 텐데 복수를 쓴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또 다른 근거를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세상들’이라는 단어는 그 다음 문장에서 쓸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과 연계(대비)되어 사용된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단어가 총체적이고 개념적인데 반해 ‘세상들’은 구분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므로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다 더 시각화해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은하계’ 하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습니까? 따라서 ‘세상들’이라고 복수형 단어를 사용한 것이 그 문장이 의도한 의미에 더 적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세상들’이란 단어를 하나 보았다고 해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 세상’ 외에도 ‘옛 세상’이 있었는데 멸망 당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 말씀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자기 확신 가운데 주장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주석가들이 있었지만 단 한 사람도 이런 곳에 나오는 ‘세상들’을 재창조와 연관시켜 ’옛 세상’, ‘현 세상’ 등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우주 공간의 모든 것들이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고 그 일을 예수님이 직접 하셨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그 일을 안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편견을 가지고 성경기록자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성경을 왜곡하려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주석은 요한복음 1장: 2-3절에 있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우리 예수님은 재창조를 알지 못하십니다.       사람을 지은 일 자체가 창조가 시작될 때, 우주 공간과 땅이 만들어진 그때, 즉 창세기 1장 1절에서 6일째 되는 날에 이루어진 것이지 재창조 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막10:6)       여기도 시작(beginning)을 창세기처럼 처음으로 바꾸어서 이해하시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처음부터 즉 창조를 시작하시는 그 처음에 사람들을 만드셨습니다.   재창조 같은 것은 우리 주님의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72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87               (*) 다음은, 재창조가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이고 오직 킹제임스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어 거기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기록된 대로 믿는 이들만 알 수 있는 진리라고 주장하는 글에 대한 반박입니다. <관리자>       --------------------------    어떤 재창조론자의 주장   --------------------------       *현 세상이 전부인 줄로 아는 이들에게 주는 보너스       지금 있는 현 세상을 셋으로 나누면 노아의 홍수를 기준으로 옛 세상, 천년 왕국으로 기준으로 오는 세상(마12:32)이 된다. 천년 왕국을 기준으로 이 세상(천년 왕국 전)과 저 세상(천년 왕국)으로 구분한다(눅20:34,35). 옛 세상, 이 세상, 저 세상 이 셋이 현 세상이며 천년 왕국이 끝날 때 "현 세상"은 불로 멸망한다(벧후3:10-12).       -------------------    이에 대한 반박   -------------------       문맥이 이상해서 정확한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지만, 불의 멸망 이후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므로 땅은 영원하다. 노아의 홍수 이전 세상도 물로 멸하셨지만 일정 기간을 거쳐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세상을 여러 개로 나눈다 해서 완전 멸망과 재창조가 아니다. 그것은 재창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속임수다.       홍수 이전과 이후, 천년왕국 이전과 이후는 거주민이 다르고 환경이 다를 뿐 같은 세상이다. 노아에게 “모든 것이 죽으리라.” 하신 말씀도 정말 '모든 것'인가? ‘방주 속 생명들과 코로 숨 쉬지 않는 모든 것’을 제외한 심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세상을 멸하신 것이며(창6:13, 17), 노아가 맞은 세상이 새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명령을 다시 주신다(창9:1, 7). 그러므로 <물의 넘침으로 인한 멸망 = 노아의 홍수>의 공식이 성립된다. 천년왕국에 갈 때도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고 주장되는 재창조 수준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1. 홍수 이전 세상   2. 지금 세상   3. 다가올 세상       굳이 세상을 나눌 필요도 없지만 재창조를 주장하는 모든 구절을 이렇게 보아도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자연스럽다. 근거 없이 지금의 세상은 하나의 세상이고 그때의 세상은 재창조 이전의 세상이라고 우길 아무 근거가 없다.       ━━━━━━━         부디 우리 모두가 편견과 왜곡 없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읽고 해석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성화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new.keepbible.com/Cmn2/View/4CU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2015-04-10 16:56:14 | 최상만
킹 제임스 성경에서 동전 몇 개를 찾아서 그것으로 성경을 거부하는데 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할 귀한 시간에 아이들처럼 동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간단히 정리하려고 합니다.   고대 화폐 단위를 어떻게 번역할지는 성경 번역사에서 큰 과제입니다. 물론 무게와 길이와 부피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죠. 이러한 주제는 많은 논쟁과 의혹을 주고 있지만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둘 중의 하나이거든요.   화폐 단위나 무게, 길이, 부피의 단어를 번역할 때 첫 번째 방법으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용어를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두 번째 방법으로 당대의 동일한 가치에 해당하는 용어로 바꿀지는 번역과정에서 선택과 결정의 문제입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위를 모두 그대로 유지하면 대부분의 성경 독자들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게 되고, 동일한 가치를 의미하는 단위를 찾아서 모든 용어를 다 바꾸게 되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가 쉽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화폐 단위와 무게, 길이, 부피의 단어들이 나올 때 어떻게 번역했을까요?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위를 그대로 사용했고 어떤 경우에는 동일한 가치를 가진 당대의 단위로 대체해서 번역했습니다. 나는 화폐 단위 같은 어휘들을 이렇게 두 가지 방법으로 번역한 킹 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선택과 결정을 신뢰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합니다. 화폐 단위를 원어 그대로 가지고 왔든지 가치를 비교해서 수용 언어 단위로 번역했든지 모두 최선 최상의 결과입니다.   구약성경에 들어있는 화폐 관련된 단어들은 대부분 히브리어를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세겔, 게라, 베가, 다릭)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그리스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습니다. (달란트) 또 가치를 따져서 당대 단위에 해당하는 단어로 번역한 예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서 당대 단위로 번역한 가장 대표적인 단어는 “페니(penny)”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데나리온(δηναριον)”입니다. 로마의 데나리온은 주전(主前) 211년경부터 사용되었는데 3.7그램 정도의 무게였다고 합니다. 데나리온은 복음서 시대에 가장 널리 유통된 은전(銀錢)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로마 시대 데나리온을 잉글랜드 페니로 대체하여 번역하였습니다. 8세기부터 사용된 은전(銀錢)인 잉글랜드 페니야 말로 데나리온을 번역하기 위한 가장 정확한 단어였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들도 잉글랜드 페니가 로마의 데나리온에서 유래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1971년까지도 사용되었던 잉글랜드 페니는 “d”라는 화폐단위 약자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페니가 데나리온과 같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서 동전 찾기에 바쁜 사람들은 페니와 더불어서 마이트(mite), 파딩(farthing), 펜스(pence), 파운드(pound) 같은 화폐 단위를 가지고 나와서 성경이 틀렸다고 광고하느라 그 동전을 다 써버립니다. 오류 있는 여러 단어들를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1611년 당대의 잉글랜드의 화폐 체계에서 페니가 기본단위입니다. 페니보다 커지면 펜스, 파운드가 되고 페니보다 작아지면 마이트, 파딩이 됩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동전에서 데나리온이 기본 단위이고 가치의 크기에 따라서 렙돈, 앗사리온, 데나리온, 므나 등으로 바뀐다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한국은 동전을 10원, 50원, 100원, 500원으로만 구분하지만 고대 로마나 잉글랜드는 우리와 다릅니다. 현재 미국 달러도 하나의 화폐 체제이지만 동전의 가치로 보자면 페니(1센트), 니켈(5센트), 다임(10센트), 쿼터(25센트), 하프달러(50센트)와 같이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동전 몇 개 찾아서 기껏해야 참고서적 하나쯤 비교하며 킹 제임스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류에게 완전한 성경을 주시기 위해서 수고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누군가 그리스어 성경의 화폐 단위와 킹 제임스 성경의 화폐 단위가 다른 것을 몇 개 지적하며 성경이 틀렸다고 말한다면 화폐 단위를 번역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적용되었음을 잘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둘 중 어느 방법으로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를 성령님께서 온전히 도와주셨습니다.
2015-03-30 22:16:46 | 김재근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고있습니다. 창세기 2장 1절에서  " ~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 all the host of them.)" 로 해석되어 있는데요.. 고어체로 번역되어서 그런건지 창조되는 모든 것을 군대로 표현하는 건지..왜 군대인지 알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3-30 15:18:52 | 양용백
    영어 원서로 처음 읽어보려 하는데 많이 어렵고 더디네요 ㅜㅜ 아예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를 단어장처럼 만들어 놓고 외워가면서 매일 조금씩 읽으려 하는데 영어 사전 좀 추천해 주세요~   '노아 웹스터의 'The 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라는 사전이 추천되어 있던데 영영 사전이더라구요..ㅜㅜ...   단어로 인해서 읽는 시간이 많이 더딘 편인데. 혹시 그나마 영한사전 중에서 가장 추천하시는 사전은 무엇인가요?     -  
2015-03-27 14:10:30 | 장은지
안녕하세요?   호주 멜번에 거주하고 있으며 항상 진리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흠정역 성경을 알게 되어 말씀을 읽게 된지 3년이 되었는데요, 미국이나 다른 나라는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호주에는 아직 없는 것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혹시 호주 지역에는 다른 사역 계획이 없으신지 궁금하구요, 추천하실만한 계획이나 현지 독립침례교회 정보가 있으면 알고 싶습니다.   특히 멜번의 현지 교회들은 거의 장로교가 90%이상이고, 대부분 연합교회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즘 많이 혼동스럽고 어느 교회를 나가서 어떻게 섬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어서 여쭈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은혜 가득한 하루 되세요.   호주 멜번에서...
2015-03-25 06:43:15 | 성정훈
안녕하세요? 한국은 이제 완연한 봄인가 봅니다. 봄이 되면 꽃 소식과 함께 황사소식을 접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호흡기가 약하신 분들에게 참으로 힘든 시기일 것 같습니다. 지혜롭게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는 생각지 않았었는데 하와이 힐로에 사시는 형제님께서 일부러 전화를 해주셔서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니   많이 놀라기도 하고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사랑침례교회와 KeepBible을 통하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바른 진리를 알게 되고 스스럼없이 전화 통화를 하게 되고 서로 말이 통하니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요? 가끔은 신앙적인 문제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지만 그 때마다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진리의 말씀을 찾고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Bible Believer 의 만남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오늘 밤입니다. 미디어 사역을 통해 국내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이런 귀한 만남들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뉴질랜드 20차 모임을 <아래>와 같이 안내합니다. 지난 2015년 2월까지는 토요일 저녁 7시에 모임을 했었는데, 이번 3월부터 주일 저녁 6시로 시간과 요일을 변경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1.  모임 일자와 시간 : 2015년 3월 29일(주일) 저녁 6시    2.  장      소  : ** Awa Road. Kumeu. Auckland    3.  내       용 : 다니엘서 70 이레    4.  휴 대 전 화 : 027-779-8877(최 문 선)    
2015-03-23 18:05:01 | 최문선
  안녕하세요. 베다니 침례교회가 지난 3월 1일 새로운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장소로 인도해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공급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 동안 사랑 침례교회를 비롯해서 여러 지역교회들과 성도님들께서 기도해주시고 물질로 후원해주심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교회였기에 오히려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손길을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베다니 침례교회가 신약 교회로서 주어진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얻게 된 예배당은 우리가 사용하기 이전부터 교회로 사용했던 곳이었기에 큰 공사 없이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예배실과 교육관 유아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베다니 침례교회는 주일날 11시에 예배를 드리고, 1시 30분부터 다음 세대 어린 아이들을 위해 제가 따로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2시부터는 교육관에서 성경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소식을 대신하겠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예배당 이전하기 전에 모였던 장소입니다. 샬롬      베다니 침례교회: http://cafe.naver.com/realchristians 주소: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107-7번지 아시아 프라자 4층(13층 건물 동탄 복합문화센터 근처)     문의 전화: 010-7549-1691
2015-03-13 15:48:06 | 라영석
안녕하세요. 3월 새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라서 가정마다 분주한 시간을 보내시겠군요.   공유하고 싶은 소식이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오는 4월 20일부터 5월 1일까지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몇몇 목사들이 종교개혁 투어를 갖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여서 마틴 루터의 행적을 따라서 움직이며 베를린까지 갑니다. 거기서 프라하와 짤스부르크를 거쳐서 스위스 상트갈렌으로 이동합니다. 역사 공부도 하고, 구경도 하고, 성도들도 둘러볼 계획입니다. 거의 60년 전에 읽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감동을 여전히 간직한 노목사님의 요청에 따라 알프스도 잠시 올라보려고 합니다. 중간에 잠시 밀라노도 찍고서, 에라스무스의 흔적도 따라보다가 하이델베르크와 보름스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평균 연령으로 보자면 '꽃보다 목사들'이 될 가망성이 많지만,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 애쓰신 킹제임스목사들에게 큰 격려가 되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들의 여정 가운데 믿음의 공감이 있는 성도들이 있다면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여정을 보시고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개인적으로 연락하시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종교개혁 투어를 마치고는 5월 1일부터 3일까지는 프랑크푸르트 근교 바트홈부르크 유스호스텔에서 현지 성도들과 함께 성경강연회를 갖습니다. 작년에 독일의 몇몇 성도가 모여서 시작한 일인데 지속적으로 좋은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강연회에 참석을 원하시거나 추천하실 분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세요. 감사합니다.   카톡 : jack1611
2015-03-02 15:47:44 | 김재근
 안녕하세요?   긴 구정 연휴를 지내시고 직장인들은 첫 출근하느라 피곤하셨을 월요일 입니다. 가족들과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자녀 분들과 조카들 또 손자 손녀들의 세배로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을 모습들을 상상해 봅니다. 윷놀이로 시끌벅적했을 거실의 모습도 그려보구요. 운전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피곤해도 그런 행복이 있기에 다 감수하고 길을 떠나셨겠죠?   해외에 있는 교포들도 한국 만큼 많은 음식은 아니지만 떡만두국과 잡채 녹두부침도 해먹고 옷에 잘 맞지않는 한복을 입혀서 자녀들로부터 세배도 받고 합니다.   이곳은 한여름을 조금 지나고 여기저기서 매미소리가 물소리처럼 가득합니다.   이번 달에도 이곳저곳에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알게 된 분들과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여러가지 통로를 통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아는 분들의 수가 더해지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 2015년 2월 모임을 아래와 같이 안내합니다. 이 안내문을 보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   아      래   >    1.  모임 일자와 시간 : 2015년 2월 28일(토) 저녁 7시  2.  장      소  : ** Awa Road. Kumeu. Auckland  3.  내       용 : 대언자들이 예언한 왕국  4.  휴 대 전 화 : 027-779-8877(최 문 선)    
2015-02-23 13:23:19 | 최문선
컴퓨터 모니터가 커지고 와이드 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LED full HD 화면(1920 X1080픽셀)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는데요...   혹 필요한 분들을 위해 1920 X1080 해상도의 바탕화면을 올립니다. 청색, 진회색, 녹색의 3가지 컬러입니다.   아래 그림을 오른 마우스로 다운로드 받아 제어판에서 바탕화면으로 활용하시면 됩니다. 띄워만 놓아도 가족이나 보는 분들에게 성경지킴이를 홍보할 수 있습니다~.        
2015-02-22 11:30:37 | 관리자
날마다 하나님아버지의 은혜가 사랑침례교회위에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문안드립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조직신학 39번째 강의 '창조'에서 다윈을 왜 '현대 동성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인가요?   제가 아무리 인터넷과 자료를 찾아봐도 알길이 없어서 염치불구하고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2015-02-10 18:57:10 | 김건
  베다니 침례교회 예배당 이전 소식     안녕하세요. 킵 바이블 사이트에는 처음으로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저는 베다니   침례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나영석 형제입니다.     저희 교회가 동탄에 예배당을 얻어서 3월 1일부터 새로운 장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년 5개월 동안 수원의 미용학원에서 좋은 지체들과 모임을 형성하게 되면   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제 지역 교회로서 신약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그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새로운 예배당 장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2월의 남은 기간 동안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잘 준비해서 3월 1일부터 새   로운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베다니 침례교회가 신약 교회로서 잘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베다니 침례교회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realchristians   베다니 침례교회 새 주소: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107-7번지 아시아 프라자 4층(동탄 복합문화 센터 근처)   문의: 나영석 010-7549-1691 (kjvbb@hanmail.net )  
2015-02-10 00:38:16 | 라영석
주 안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평안을 빕니다. 요즘 제가 레위기를 읽고 있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요구하시는지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다가 26장 11절에 "내가 내 성막을 너희 가운데 세우며 내 혼이 너희를 몹시 싫어하지 아니하리니" 라는 말씀에서 주님께서 '내 혼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여 글을 올려봅니다.        늘 성실히 답변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2015-02-09 14:40:27 | 박혜영
Q : 할렐루야! 성경에 보면 어떻게 기도하라는 말씀들은 많은 데 반해 언제까지 기도하라는 말씀은 거의 없는듯합니다. 제가 말씀을 잘 모르는 이유로 인해 기도할 때 응답이 내려올 때까지 계속 기도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지킴이를 찾아보아도 기도에 대해서만 나오지 언제까지 하라는 것은 안 나오네요. 전에 순복음교회 조 목사님이 설교에서는 기도할 때 기도 응답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마음에 평안함이 오고 확신이 오고 믿음이 오면 그걸로 응답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 일화를 하나 들겠습니다. 양해 바라겠습니다. 제 마음에 열의에 의해서 신학을 하다가 어떠한 사유로 인해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에 열의는 식지도 않고 그러던 중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보는 게 수많은 목사들 그중에서도 젊은 목사들을 보면 저분들은 벌써 목사가 되어서 저렇게 목회를 하고 있는데 난 나이도 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데 아직 신학교도 안 나왔고 참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처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나이는 계속 들어가고 있고 여건도 안 좋아서 신학은 할 수도 없고 제 마음의 소원은 간절한데 주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는지 알게 해 달라고요. 그리고 며칠 후에 말씀을 읽다가 사도행전 9장 10절 “보소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말씀으로 강하게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말씀을 받은 적이 없어서 30분 동안 울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듯이 매번 말씀으로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기도 응답이 될 때까지 계속 울부짖어 기도 할 수도 없고 해서 말씀에 대해 잘 아시는 성도님께서 언제까지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여쭐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보려고 해도 그것이 흠정역에 있는 교리랑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아니면 성경적인 것인지, 흠정역 성경 말씀에 대해서 잘 아시는 성도님이 계시면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형제님 반갑습니다. 한겨울에 감기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우선 아랫글과 설교 영상을 읽고 시청해 보십시요. 특히 ‘그리스도인의 기도’ 설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어보시면 큰 도움을 받으실 겁니다.  1.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을 수 있는가?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 2. 그리스도인의 기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83 소위 '기도 응답'에 관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기에 형제님과 다른 분들을 위해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 ‘그리스도인의 기도’ 후반부의 주요 내용에 제가 몇 가지를 부연해서 아래에 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사야 38장에 있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성경 기록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침 받고 수명이 15년이나 연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명이 연장된 히스기야는 유다 왕국을 방문한 바빌론 사신들에게 나라 전체를 샅샅이 공개함으로 말미암아 바빌론에 의한 멸망이 유다 땅에 더 신속히 임하는 비극을 불러왔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람의 뜻대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한대의 영역에 거하시는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먼지에 불과한 사람의 뜻과 다를 때가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8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같지 아니하며 내 길들은 너희 길들과 같지 아니하니라. 주가 말하노라. 9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들은 너희 길들보다 높으며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보다 높으니라.(사55:8~9) 그러므로 우리 안에 간절한 소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과 어긋날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신약 시대 성도들은 마음에 품은 간절한 소원을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리석은 자들처럼 기도의 성취를 감히 하나님께 강요하는 태도를 깨끗이 청산하고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성벽을 다 재건한 후 하나님께 드린 느헤미야의 기도가 좋은 예가 되듯이 구약식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눈에 보이는 세상일에서 내가 형통하게 해 주십시요.”라고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31 또 정한 때에 나무 헌물과 첫 열매를 드리게 하였사오니, 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느13:31) 이런 구약식 기도는 다르게 표현하면 ‘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이 시킨 일을 다 하고 주인에게 그에 해당하는 만큼만의 대가를 구하는 것이 바로 종의 태도이고 종의 입장에서 구하는 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기도의 모범적인 예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사도 바울의 기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의 이 절절한 고백을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7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내가 이 일로 인하여 그것이 내게서 떠나가도록 주께 세 번 간청하였더니 9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약한 것들과 치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노니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니라.(고후12:7~8) 그럼 고린도후서 12장의 이 말씀을 주해해 보겠습니다.   당시 바울이 가지고 있던 “육체 안에 가시”에 대해 어떤 성경 주석가는 갈라디아서 4장 13~14절과 함께 비교해 볼 때 그것은 분명히 육신의 질병이며 아마도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에게 돌아 맞아 죽다 살아난 후(행14:19~20) 뇌를 다친 바울이 얻게 된 ‘간질병’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도로 선택받아 신약 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의 기록자가 되었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지역교회를 세운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열정적으로 강단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에 순간적으로 몸의 통제력 상실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부르르 떨며 청중들 앞에서 쓰러진다고 생각해 봅시다. 설교하던 바울 자신에게는 그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이었을까요. 물론 바울이 말한 “육체 안의 가시”가 간질이었는지 안질이었는지 아니면 질병이 아닌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에게 대단히 치명적인 고통과 고민을 안겼던 무엇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것에도 큰 장애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치명적 고통에 대해 다른 사람도 아닌 바울 자신이 세 번이나 간절하게 떠나가기를 하나님께 구했음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답변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고후12:9) 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당혹스러울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분량 이상으로 주어진 은혜와 사역의 성과를 통해 자칫 교만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고 따뜻한 배려라는 것을 바울은 정확하게 간파합니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육체 안의 가시”는 더 이상 가시가 아니요, 마치 진주조개가 아픔을 참고 품은 모래가 보석이 되듯이 고난이 주는 믿음의 훈장이며 영적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키는 무기임을 깨닫고 고린도후서 12장 8절의 저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약한 것들과 치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노니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니라. 우리는 연약하므로 때때로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되고 장애가 되는 어떤 것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와 별개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십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우리는 바로 이런 명확한 말씀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초연하게 하나님께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감사함으로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구약식 기도의 자세, 즉 종의 기도를 청산하고 신약 시대 성도의 기도,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도를 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소위 ‘기도 응답을 받았다.’라는 말은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별히 한국에서 ‘기도 응답’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각종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는 은사주의 시스템과 이미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원래 의미가 왜곡되어 전달될 가능성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일부로라도 이런 표현은 쓰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라고 하거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일이 해결되었다.’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간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도에 있어서 절대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원리를 적용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그에 따른 기도의 핵심은 그 믿음과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분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존중하고 존귀하게 여겨드리며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에 경외감을 느끼며 떨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일을 하는 것, 밥 먹는 것, 길을 걷는 것, 숨 쉬는 것, 잠자는 것 등 온종일 생활하면서 행하는 모든 것이 기도와 예배가 됩니다. 다시 한 번 로마서 8장 28절을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여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도외시하고 종일 불안과 초조함에 떨며 사람의 무릎이 낙타의 무릎이 될 정도로 오랜 시간 기도에 열을 올려 하나님을 감동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는 얼마나 많이, 오랫동안 기도했느냐 하는 양(量)의 요소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 마음에 합한 기도를 했는가 하는 질(質)의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사람이 자기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조차 가증한 것이 되리로다.(잠28:9) 사람이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이 무어라 가르쳐 주는지와 그 안에 담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저 자신의 소원을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혹은 온종일 무릎이 낙타의 무릎이 되고 목에서 무쇠솥을 긁어내는 소리가 날 때까지 기도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열정적인 기도는 도리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됩니다. 다시 한 번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대한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빌립보서 4장 6~7절을 통해 살펴봅시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대해서 간절한 기도로 우리의 소원하는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하나님께 알려드려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구약 시대 성도들의 자세와 별로 다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제 7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졌습니까? 그 기도에 대한 100%의 분명한 응답이 약속되어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기도를 통해 자신의 욕구 채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사람에게 7절의 답은 마치 동문서답처럼 여겨질 겁니다. 그러나 바로 이 말씀이 신약 시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간절한 기도에 대해 분명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만사형통이나 소위 조지 뭘러식의 반드시 문제를 해결 받는 특급 기도 비결을 통한 바로바로식 응답이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는 문제가 해결되든 아니든, 내가 간절히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혹은 해결 받는 것이 연기가 되었든 그런 모든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통해 나의 영과 혼을 충만하게 채우고 나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로만 고정하도록 견고하게 지켜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기도 생활을 통해 맛 볼 수 있는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탁월한 설교를 매우 모자란 실력을 통해 글로 풀어 놓은 부족한 답변이나마 부디 필요한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형제님께서 물어오신 기도에 답변은 이것으로 갈무리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한 답변은 형제님의 글을 통해 제가 느끼고 알려드리고 싶은 몇 가지와 함께 정리해 다음에 다시 별도의 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답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 안에서 항상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 질문하신 분은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해 익명으로 하였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요.
2015-01-27 18:05:02 | 김대용
베드로후서  2장 5절   ---  여덟번째 사람인 의의 전파자 노아는 구원하시고 ...여덟번째 사람이 이해가 안갑니다 가르쳐주십시요 그리고 마태복음 17장  12절에서 엘리야가 이미왔으나  ... 13절에서  침례인 요한에 관하여 하신것이라  ..엘리야가 침례요한이란 이야기인가요,,배움이 모자라니 가르쳐주시길 바랍니다
2015-01-18 19:48:16 | 권장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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